자살 권하는 사회
굉장히 윤리적으로 꺼림칙한 이야기이지만, 자살 또한 진화심리학적으로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기작 중 하나이다.
예를 들면 비슷한 유전형질을 공유하는 가족 집단이 있다고 치자. 이 집단에서 만약 어느 정도 이상의 심각한 병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부양에 노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아무 노동력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노동력을 잡아먹기만 하는 마이너스적 존재가 될 것이고, 그 사람이 사라져 준다면 그 가족 집단의 유지에 도움이 되고, 결국 그 가족 집단이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주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럼 그 음수 인간이 사라져 주는 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자살이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게 유도하는 유전자 혹은 밈(사회 유전인자)이 있다면, 그 인자는 전파되는 데에 더 유리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Post Hoc적인 설명이다. 이 가설은 굉장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의 불쾌감을 주지만서도 괜찮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괜찮은 방법론을 고안해내고 연구했다.
그것은 여러 명의 연구자가 자살자의 유서를 읽고 그 유서에서 어떤 형태의 감정이 제일 많이 드러나는지 점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놀랍게도, 자살에 성공한 자들의 유서는 Burdensomeness, 즉 근처 사람들에게 느끼는 부담감과 압박감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우울함 등의 감정 요인은 그렇게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그리고 자살에 실패한 자들의 유서는 그렇지 않았다.
또한, 자살에 좀더 치명적인 방법을 쓴 사람들일 수록 그 유서에서 부담감과 압박감이 더 중요하게 나타나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치명적인 방법이란, 권총자살이나 목을 메는 등 좀더 죽을 확률이 높은 방법을 의미한다. 비치명적인 방법은 약물을 다량으로 먹거나 손목을 긋는 등의 별로 죽을 확률이 높지 않은 방법을 의미한다.
결국, 어쩌면 우리 유전자 혹은 밈에는 자기파괴가 프로그래밍되어 있을 지도 모르고, 그럴 가능성은 꽤 높은 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