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따라서 일종의 헤겔식의 '부정의 부정', 일국 자본주의와 국제주의적, 식민주의적 단계가 지난 후 다다른 세 번째 단계의 자본주의의 등장을 의미한다. 처음에 (물론, 이상적으로) 자본주의는 국제무역(주권적 국민국가들 간의 무역)을 수행하며 민족국가 경계 내에 존재했다. 이어 식민국화된 나라가 피식민국화된 나라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복속시키고 착취하는 식민주의가 출연한다. 마지막 단계인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차별화된 특징은 식민국은 사라지고 피식민국만 남게된다는 역설이다. 식민 권력은 더 이상 국민국가가 아니라 초국가적 기업이다. 이러한 전지구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이상적 발현이 바로 다문화주의이다. 다문화주의는, 식민인들이 피식민인들과 그들의 그 풍습을 면밀히 '연구'하고 '존중'해야 할 원주민들로 취급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개별 국지 문화를 취급한다. 즉, 전통적인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와 전지구적 자본주의 간의 관계는 서구의 문화 제국주의와 다문화주의 간의 관계와 정확히 닮아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식민국이라는 중심축이 소멸된 식민화라는 역설을 수반한다면, 다문화주의는 자신의 특수한 문화에 뿌리를 두지 않은 채 국지 문화를 존중하고 또는 유럽 중심주의적 거리두기를 장려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문화주의는 기존의 인종주의가 부인되고 전도된, 즉 '거리감을 유지하는 인종주의'이다. 그것은 타자를 자기 완결적인 실제적 공동체로 이해하면서 타자의 정체성을 '존중한다'. 다 문화주의자는 해당 공동체에 대해 그의 특권적, 보편적 입장에 의해 가능해진 거리를 유지한다. 다문화주의는 자신의 입장에서 모든 특수성을 소거시킨 초월적 차원에서의 인종주의이다. (다문화주의자는 직설적인 인종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그 자신의 문화의 특수한 가치를 타자와 대립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입장을 보편성의 특권적인 공백 지점에 위치시킨다. 이 지점에서 그는 다른 특수한 문화들을 평가하고 평가절하 할 수 있다. 타자의 고유성에 대한 다문화주의자의 존중은 바로 그 자신의 우월성을 역설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신박하면서도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차는 지문을 만날 수 있어서 재밌는 겁니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게 얼마나 재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