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A-27크롬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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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07-08 16:19:40 KST | 조회 | 245 |
제목 |
체후의 성, 가라 너희 흩어진 몸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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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네
리뷰는 alternative sf에서 퍼옴
[최후의 성]은 외계에서 온 생명체들을 하인과 노예로 부리던 인류의 후예들이 궁극적인 반란을 맞아 그때까지 지켜온 고고한 품위를 그대로 고수하다 깨끗이 죽는 것과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리고 성 밖의 거칠고 품위 없는 삶을 지지부진하게 이어 사는 것 사이의 대립이 중심 갈등인데, 중심 갈등의 고조와 해소 과정보다는 ”여섯 별들의 전쟁’ 이후, 지구는 대재앙 속에서 용케 살아남아 이후 야만 상태의 유목민이 된 한줌의 불쌍한 인간들 외에는 3천 년 동안이나 사람이 살지 않은 채 내버려져 있었다. 그 이후 약 700년 전에 견우성에 살던 몇몇의 부유한 귀족들이 약간의 정치적인 불만과 변덕심에 기인해 지구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었다'(p.26) 같은 배경이나 ‘멕’, ‘괴조’, ‘노예’와 ‘페인’, ‘짐승차량’ 같은 소도구로 구성된 ‘성 안’의 탐미적이고 공허하며 덧없고 양식화된 지루한 삶의 묘사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이건 두 번째 수록작 [드래곤 마스터]도 마찬가지인데, 내부의 대립과 외부의 침공 앞에서 인류의 마지막 후예들이 살아남는 과정 자체보다는, 한 해 뒤에 나오는 {듄}을 예언이라도 하는 듯한 중세 유럽 판타지 풍의 사회에 SF의 우주를 결합한 맛이 일품입니다. (전투 전의 영지 관리나 드래곤 풍종 개량, 사육이나 전투에서 유닛 간의 상성과 지형 효과를 이용하는 요소들이 RTS 게임을 연상시키는 부분은 {듄}이 그 분야 시발점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습니다) 인류가 외계 생명체를 길들이고 개조해서 부리는 거야 SF에서 진부한 소재입니다만, 그 외계 생명체들이 또 반대로 인류를 길들이고 개조해서 침공해온다는 부분도 재치있고요.
두 편 합쳐 216쪽에 2만원은 요즘 물가를 감안해도 비싸기는 합니다만, 우린 이미 154쪽에 번역도 편집도 훨씬 극악한 {빅 타임}을 13400원에 산 전력이 있지 않습니까. (이 문장을 쓰느라 다시 {빅 타임}을 들춰봤는데, 정말 이 조악함, 가독성과 심미성을 모두 포기한 이 절망적인 편집은 정말 구제불능으로 목불하견이군요) 불새 출판사에서나 낼 만한 고색창연하면서도 이색적인 SF를 즐기는 데는 치러 볼 만한 가격이라고 생각됩니다.
고장원 씨가 유토피아물(특히 ‘컬처’ 시리즈) 까기 주재료로 밀며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다른 데서도 언급된 적 있었던가요?) “리버월드” 시리즈의 첫권입니다.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이 작품을 예로 들어 ‘물질적 풍요에 기반한 유토피아’를 비현실적이라고 까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죽음의 트라우마를 품은 사람들을 원시 정글 속에 각설이처럼 깡통 하나만 주고 발가벗겨서 던져놓은 것을, 아득히 먼 미래에 그때까지 물질적인 토대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와 사상이 발달한 결과물로서의 ‘컬처’나 몰록들의 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습니다)
“천일야화”의 리처드 버턴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조 앨리스 플레전스 리들(!), 헤르만 괴링(!!), 네안데르탈인과 21세기초에 인류를 멸종시킨 외계인이 파티를 이루어 대나무로 집을 짓고 사람가죽 끈으로 죽창에 돌촉을 고정시킨 아이템을 휘두르며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이들을 향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나서는, 목적했던 장소에 부활할 때까지 계속 자살해대는 정신나간 마인크래프트RPG를 보고 싶으십니까? 불새 최신간을 사세요. 두 권 사세요. 단언하건대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SF들 중에서 가장 정신 나간 SF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헤르만 괴링이 나온다 이기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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