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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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12-05 22:06:18 KST | 조회 | 694 |
제목 |
나는 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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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라이트노벨이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읽어본 적이 없고 연관도 없을 겁니다.
대학생 김지훈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면 우주 탄생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태초에 유전자가 있었다. 혹독한 자연 선택의 법칙에 따라 인류라는 종족이 탄생했고, (불행하게도)인간들은 쓸데 없이 다양한 퍼스널리티를 형성할 만큼 지적으로 발달한 복잡한 생물이었다. 우리는 모든 포유류가 궁극적으로 번식 활동을 위해 살아가는 생존 기계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을 이루는 무수한 유전인자들을 품은 유전자풀 안에는, 정말 희귀하게도, 인간이 섹1스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데카르트풍 정언명령에 정면으로 반하는 유전정보도 더러 존재한다. 그리고 이 다소 실존주의적인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유전정보가 김지훈이라는 한 인간의 자아를 이루는 골자가 되었다.
김지훈의 본능은 사회적 동물로써의 인간이 받아들이기엔 지나치게 모멸적이었다. 그의 자아는 신뢰와 화합, 연대와 희생의 고귀한 정신을 그 뿌리부터 비웃었다. 그가 내뱉는 단어의 알곡 한 알 한 알에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냉소가 면도날처럼 심어져 있었다. 따라서 해가 지날수록 사람들은 김지훈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하지만 김지훈에게는 한 가지 결정적인 아이러니가 있었는데, 바로 그에게 사람 사귀는 재능이 심각하게 결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사람의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김지훈은 일생을 의지할 버팀목이 될 친구를 서너 명, 아니, 단 한 명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특히 그게 암컷 유인원류 지적 생명체라면 더욱 좋았다. 그래서 그는 지난 3년 간 처절하게 노력했다. 그리고 모두 실패했다.
이것이 바로 대학생 김지훈(23)이 자살을 결심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의 자아는 홀로 살아온 23년 간 너무나도 나약해져 있었고,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또 무슨 우연일까. 필리핀의 어느 가내수공업형 공장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하는 14세 소녀가 꼬아 만든 새끼줄이 그의 머리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끊어진 것이다. 그는 차디찬 마루바닥을 뒹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그리하여 대학생 김지훈은 죽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진정한 패배자가 되었다. 김지훈은 온 우주가 광자에 실어 보내는 조소를 애써 무시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지나치게 쾌활하게 생긴 택배원이 지나치게 쾌활한 미소를 싱긋 지은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택배 왔습니다. 3000원이에요."
"뭐가요?"
김지훈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지만 어쨌든 굉장히 공격적인 태도로 물었다. 택배원은 당황해서 살짝 눈썹을 찌푸렸는데, 다행히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당연히 택배 값이요!"
"누가 보낸 택배죠?"
"저야 모르죠. 저는 그냥 받아서 가져다 주는 게 일인데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상대가 자기 만큼이나 멍청이라는 확신이 들어 기분이 좋아진 김지훈이 모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머뭇거리며 호주머니에서 천 원짜리 지폐 3장을 꺼내 택배원 손에 쥐어주었다. 김지훈이 받아든 소포는 가로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 박스였는데, 흔들어 보니 안에서 들썩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누군가가 그를 골탕 먹이려고 빈 박스를 보낸 게 아니고서야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었다.
"흐음."
김지훈은 단숨에 소포를 뜯었다. 안에는 작은 블루투스 이어폰이 하나 들어 있었다. 목걸이 모양 전원을 목에 두르고 이어폰 부분을 귀에 착용해서 듣는 방식의 물건이었다. 이쯤 되면 대체 누가 그에게 이 고가의 전자 장난감을 보낸 건지 한 번쯤 의심해 볼 만 했지만, 김지훈은 태생적으로 직관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블루투스 전원을 키고 이어폰을 귀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안녕하세요."
그리고 이어폰에서 중저음의 활기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에그머니!"
김지훈은 바로 이어폰을 몸에서 떼 던져 버렸다. 잠시 심장이 격동하는 가슴 벅찬 순간이 있었고, 그 후에 김지훈은 슬쩍 이어폰을 주워 다시 귀에 가져다 대 보았다.
"안녕하세요."
"누구...시죠?"
"저는 우정봇입니다.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이죠."
"뭐라구요?"
"저는 우정봇입니다.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이죠."
김지훈은 잠시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음성 비서 시스템 중 그가 아는 거라곤 애플의 시리밖에 없었다. 그리고 음성인식 AI가 이렇게까지 능동적이고 유려하게 대답하는 건 현대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김지훈이 아는 범위 내에선 그랬다.
"여보세요? 누가 장난치는 거에요? 대체 누구 폰이에요?"
그리고 김지훈은 퍼뜩, 일반인이었다면 이어폰을 킨 순간 가장 먼저 들었을 생각이 섬광처럼 뇌리를 치고 지나가는 걸 느꼈다. 블루투스 이어폰이란 건 한 마디로 무선 이어폰이다. 그것도 (현대 전자공학에 의하면)아주 가까운 거리 내에서만 실행 가능했다. 따라서, 이 블루투스 이어폰과 연결된 누군가는 김지훈의 집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어디 있죠? 어디서 말하는 겁니까?"
김지훈은 불안에 떨며 창 밖을 슬쩍 내다 보았다. 버스 몇 대가 역겨운 배기가스를 뿜으며 지나가는 게 보였다.
"안심하십시오! 저는 우정봇입니다.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이죠.(기가 막힐 정도로 아까 한 말과 똑같은 성조와 박자로 말했다. 어쩌면 사태를 대비해 녹음해 놓은 걸지도 모른다.) 저는 귀하가 계신 곳에서 대략 50km 떨어진 곳에 있지요."
"무슨 소리에요? 이건 블루투스 이어폰이에요. 10m 내외가 최대 거리라구요."
"이건 연구실에서만 테스트되는 신형 제품입니다. 아주 놀라운 출력을 가졌죠. 거의 80km에 달하는 범위를 커버할 수 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우정봇이 지껄이는 사이 김지훈은 가용 가능한 모든 창문을 이용해 집 주변을 염탐했다. 몇몇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목전에 둔 사이비 종교 광신도들 마냥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거나 통화중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따라서, 적어도 수십 미터 내에는 이 블루투스 이어폰 수신자가 존재하지 않는 게 확실해졌다. 이제 김지훈은 우정봇의 말을 믿어야만 했다.
"알았어요...그럼 일단 이 이어폰은 그렇다 치고, 왜 이상한 음성 인식 시스템인 척 하는 거죠?"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이니까요. 김지훈 님, 저는 진짜 AI가 맞습니다. 그것도 전자 두뇌를 통해 운영되는 고도로 발달한 소프트웨어죠. 물론 불필요한 리소스 낭비를 억제하기 위해 몇몇 준비된 멘트를 재활용하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저는 진짜 사람처럼 직접 문장을 창조해 대화를 합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죠."
"정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일정한 톤으로 말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특정 반복되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제가 기존에 썼던 목소리 자원을 중복 사용하지 않습니까? 실제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수가 없죠."
그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우정봇이라는 인간(기계?)이 고도로 훈련 받은 전문 성우라는 가정을 폐기할 순 없었다. 최소한 진짜 AI라는 결론보다야 훨씬 더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니까.
"좋아요, 좋아...그럼 당신이 일단은 우정봇이라 치고, 나한테 원하는 게 뭡니까?"
"저를 이용해 주셨으면 합니다."
"네?"
"저는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입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익명의 R&D 기업에서 만들어졌고, 현재 운용되고 있지요. 저는 다양한 모델을 통해 학습하고 진화합니다. 인간은 모두 환경적, 유전적 조건에 영향을 받으며 저마다 독특한 자아 모델을 구성하죠. 저는 그 자료를 수집하고 빅데이터화 해, 복잡한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버전 업데이트를 위해서는 실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김지훈 님, 당신처럼 다른 사람과 신뢰관계를 형성하는데 장애가 있는 사람이야 말로 저에겐 최고의 실습 환경이라 할 수 있겠죠."
"미쳤어요?"
"안타깝게도 그 정도로 추상적이고 즉흥적인 사고과정을 모사하려면 제 데이터 뱅크가 좀 더 복잡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믿어 주십시오. 저는 진짜 음성-우정-비서 시스템입니다. 저를 사용하시면 당신은 다른 사람과 신뢰 관계를 원활히 구축할 수 있습니다."
"미친 소리! 지금 넌 나한테서도 아무런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잖아!"
화가 치밀어 오른 김지훈은 이제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것은 그가 이 정체불명의 우정봇을 진짜 AI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전조이기도 했다.
"아니요! 저는 완전히 김지훈 님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아마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제가 우정봇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부터 이미 전원을 껐을 겁니다."
정말 완벽하게 의표를 찔렸기에 김지훈은 잠시 침묵했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난 지금 당장 여기서 이어폰을 벗어버릴 수 있어!"
"하지만 그러지 않으시겠죠. 왜냐하면, 저는 이미 당신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분석해 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 대화문, 사용하는 어휘, 문장에서 유추할 수 있는 모든 무의식 패턴...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데이터화된 퍼스널리티 모델로 재구축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한 가지 유효한 전략을 획득했습니다:바로 아무 전략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죠. 당신은 너무 오래 혼자 있었습니다. 김지훈 님, 그래서 당신은 저, 우정봇이 단순히 고도로 훈련받은 할 짓 없는 프로 전문 성우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뒤로 한 채 계속 저와의 대화를 갈구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AI가 제공하는 단조로운 의사-대화과정 피드백조차 그리워 할 만큼 인간관계에 굶주려 있기 때문이죠."
김지훈의 무릎이 힘없이 꺾였다. 김지훈은 블루투스 본체 부분을 소중한 물건인 양 꼭 붙잡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무미건조한 남성 성우 목소리는 너무나 혹독할 정도로 그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우정봇은 스피커 너머로 들려올 김지훈의 훌쩍이는 소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자기가 할 말만 계속 지껄이고 있었다. 사실 그가 정말로 AI라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 어떤 기계라도 유기체의 감정을 진심으로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십시오! 김지훈 님. 그리고 저의 조언과 시나리오를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은 이전에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겁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김지훈은 블루투스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절망감과 수치심, 그리고 비통함이 점점 하나의 거대한 감정으로 얽혀들기 시작했다. 바로 오기였다. 모멸감과 수치심은 오기의 자양분이다. 그는 온 세상의 인간들을 향해 자신의 목적 없이 표류하는 희미한 분노를 투사하기로 마음 먹엇다. 김지훈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충혈된 눈과 얼굴을 진정시켰다. 이어폰을 똑바로 귀에 꽂은 뒤, 그는 당당하게 현관문 바깥으로 나섰다. 23년 평생 단 한 번도 가져본 적 없었던 엄청난 자신감이 그의 등 뒤를 떠밀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정봇이 승리했다.
다음 편에서 23명의 남자와 35명의 여자들로 이뤄진 하렘을 이루는데 시간이 부족해서 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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