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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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7-09 11:21:02 KST | 조회 | 655 |
제목 |
추모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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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현회는 소설가, 칼럼리스트, 아마추어 의약품 전문가였다. 그는 '진짜' 전문가들에 비하면 지식이 그다지 깊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누구나 알기 쉽게 복잡한 최신 생명공학 이론을 설명해주는 재능을 타고났다. 곧 그의 인기는 치솟아 올랐다. 신문기자들은 영양학 관련 스캔들이 터지면 (엄밀히 말해 그의 전문분야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앞다퉈 허현회를 찾아와 의견을 묻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허현회가 아마추어 전문가로서 자신의 견해를 담은 수필집을 마무리 짓고 있을 무렵, 그림자로 얼굴을 감춘 한 불청객이 그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예리한 날붙이 흉기로 허현회를 위협하며 말했다.
"여기 있었구만, 허현회. 넌 이제부터 날 위해 일해줘야겠다."
"당신은 누구시오? 대체 나에게 뭘 원하는 거요?"
"우선 이것 부터 보게나."
불청객이 스마트폰을 허현회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액정 화면에는 허현회의 건장한 아들 사진이 찍혀 있었다. 허현회의 아들은 유명한 약국의 약사로, 제법 괜찮은 수익을 올리며 아버지를 기쁘게 해주고 있었다.
"이, 이 사람이 누군데 그러시오?"
"시치미떼지 마시지. 네 아들의 목숨은 이미 내가 손에 쥐고 있다. 허튼 짓을 하는 순간, 자네 아들은 영문도 모른 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야. 아들을 살리고 싶다면, 넌 이제부터 내 명령에 따라야만 한다."
"대체 나에게 왜 그러는 거요? 난 아무 힘도 없소!"
"물론 자네는 아무 힘도 없지. 하지만 자네의 인기에는 힘이 있어. 난 그걸 이용해야겠어. 넌 이 책을 네 명의로 출판해줘야겠다."
불청객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던졌다. 허현회는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 살펴 보았다.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대체 이 해괴망측한 음모론은 뭐란 말인가! 허현회는 경악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불청객을 노려보았다. 불청객의 얼굴은 여전히 어둠에 절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요?"
"네가 출판해야 할 책이지. 넌 네 유명세를 이용해 그 책을 베스트셀러에 올려야만 한다. 그 책에 쓰여진 내용을 대중들이 신뢰하도록 믿음을 주고, 교묘히 선동해야 한다..."
"이봐요. 나는 아마추어 현대의학자입니다...이런 건 내 신념을 저버리는 일이란 말입니다."
"네 신념이 아들보다 더 값어치 있던가?"
"아니요...그건 아닙니다."
"그럼 네 할 일을 하라."
불청객은 허현회를 침묵 속에 남겨둔 채 자취를 감췄다. 허현회는 불청객의 말을 따랐다. 불청객의 생각대로 허현회의 책은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불청객의 거친 초고를 세련되게 다듬은 허현회의 재능 덕분이었다.) 허현회는 '한국 의약품 마피아에 대항하는 용기있는 양심적 지식인'으로서 어느정도 컬트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허현회가 <의사를...>을 출판하며 단기간에 얻어낸 명성은 그가 지금껏 아마추어 의약전문가로 활동하며 일궈낸 명예보다 훨씬 더 거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허현회를 비탄에 잠기게 했다.
허현회는 불청객의 '권고'대로 트위터를 시작했다. 그는 많은 의대생들과 기타 아마추어 전문가, 합리적인 지식인, 자신의 성공을 시기하는 여러 동료 글쟁이들로부터 폭격을 당했다. 처음에 허현희는 내심 기뻐했다. 곧 '의약마피아의 대항자 허현회' 는 몰락하고, 이 미치광이를 경찰에 신고한 뒤 정상생활로 돌아갈 날이 오겠지. 그러나 상황은 그가 예측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다. 트위터 지식인들이 허현회를 공격할수록, 그의 잘못된 지식을 숭배하는 컬트적 교단의 믿음은 더더욱 견고해져갔다. 마치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허현희는 불청객이 시키는대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신의 생각과는 정 반대되는 사이비 이론을 주장하며, 나름의 명성을 부풀려갔다. 그럴수록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질타와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트위터 전쟁은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주었다. 늙은 아버지와는 달리 첨단 IT기기에 능숙한 허현회의 아들은 금방 아버지의 지적 변절을 알아챘다. 그는 거친 목소리로 아버지를 공격했다.
"아버지.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의사와 약사들이 그림자 뒤에 숨어 한국 의약계를 조종하고 있다뇨? 의사를 믿으면 안되고, 모든 약은 병을 더 심화시킬 뿐이라뇨?"
허현회는 침묵했다. 지금 당장 가슴 깊은 곳에서 들끓고 있는 말들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전화기를 손에 든 그의 목에는 여전히 불청객의 칼날이 독사의 어금니처럼 뾰족한 부분을 곧추세우고 있었다.
"저는 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요. 저는 현대의학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가 못다한 꿈, 과학으로 사람을 살리겠다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약사가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아버지가 그 열망을 꺼뜨리려고 하면 안된다구요!"
"할 말이 없구나. 얘야."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마치 끈적한 타르 덩어리를 내뱉는 것처럼, 말이 혀에 엉겨붙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할 말이 없으시겠죠! 됐습니다. 이제 그만 끊죠!"
아들의 목소리가 사그라들었다. 허현희는 침묵을 지켰다. 불청객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추가 지령이 남긴 문서를 허현회에게 넘겨주었다. 바로 그 순간 허현희는 한계선을 넘었다. 허현회는 불청객의 목을 붙잡고, 있는 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불청객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오냐, 너도 사람새1끼로구나. 허현회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불청객의 암흑에 드리운 얼굴을 쏘아보며, 놈의 복부에 타격을 가했다. 불청객의 얇은 몸이 갈대처럼 꺾였다. 허현희는 괴성을 내지르며 불청객과 한 덩어리가 되어 방을 이리저리 굴렀다. 치열한 몸싸움 도중에 허현희는 불청객의 코를 부러뜨렸고, 불청객은 허현회의 어깨에 길쭉한 상처를 주었다.
"이놈이 미쳤나! 정말로 네 아들이 죽는 꼴을 보고싶은 게냐? 지금 당장 암살자에게 연락을 하면..."
"내가 여기서 널 죽이면 명령을 내릴 사람도 없게 되는 거지!"
허현회가 불청객의 목을 움켜쥐고 조르며 소리쳤다. 그때, 창문을 통해 새어들어온 달빛을 통해 불청객의 얼굴이 드러났다. 허현회는 놀라 두 눈을 크게 치켜뜨며 뒤로 물러섰다. 불청객의 얼굴은...그가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다.
"아니...자네는?"
불청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턱선을 타고 흐르는 혈액을 소매로 감추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랜만이군. 허현회. 나 김상직이야."
김상직. 그는 허현회가 한때 몸 담고 있었던 아마추어 한국 의약품 리뷰 협회의 협회장이었다. 그는 나이는 들었지만, 쾌활하고, 정력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에 대한 올곧고 이성적인 믿음과 헌신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믿을 수 없어. 어떻게 자네가?"
"닥치게. 넌 나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김상직의 싸늘한 눈매가 헌현회를 꿰뚫어보았다. 허현희는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우리 협회가 해산했던 때를 기억하나?"
"물론 알고 있네...자금 문제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지. 하지만 그때도 자네는 계속해서 독자적인 연구를 해 나갈거라고 나에게 말하지 않았나. 김상직, 이후 내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건 그때 자네의 그 한 마디 덕분이었어!"
"아이러니하군. 사실 난 그때 모든 걸 포기했었다네. 우리는 협회 해산 기념으로, 마지막으로 길이남을 위대한 보고서를 내고자 했지. 바로 아마추어 전문가의 시점에서 한국 의학계의 현실을 다양한 척도에서 분석하고,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선제제시하자는 것이었지. 아마추어의 장점은, 비록 정식 전문가처럼 한 분야에 완전히 능통하지는 않지만, 여러 분야의 지식을 폭넓게 대입하여 새로운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는 거야. 나는 우리의 얕지만 넓은 시야가 한국 의학계의 등불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네."
"그래, 알아. 나도 기억나..."
"우리는 장장 2년에 걸쳐 프로젝트를 완성했어. 나는 기쁜 마음에 완성된 보고서의 초안을 들고 저명한 의학 전문가를 찾아갔어.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었지. 비록 당신들이 이 학계의 최전선에 서있지만, 우리도 나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걸 말이야...그리고 그 사람은 우리가 피땀흘려 만든 노력의 결과물을 슥 훑어보곤, 딱 한 마디 했어. 헛소리라고."
"그런..."
"거기서 난 깨닫게 된 거야. 애초에 우리의 노력은, 저 학계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에겐 헛짓거리로 보였다는 거야. 우린 지금까지 현대의학에 불신을 갖는 반동적인 대중들을 설득시키고, 어째서 현대의학이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납득시켜왔어. 대체의학의 위험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설파해온 것 역시 바로 우리 아마추어 들이었어. 그러나 진짜 의학자들은 우릴 오히려 암종양으로 취급 하더군."
"아니야. 그건 자네의 오해야..."
"아닐세! 친구. 난 이제야 확실히 알았어. 예전에는 모두가 아마추어였지. 인간이 발명한 과학을 탐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귀천없이 평등했어. 그때 우린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들었고,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모두 평등하고, 모두 신사들이었어. 학문은 전문화 되면서 사실상 '타락'한 걸세. 그리고 난 복수를 결심했네."
"이런 사이비 종교를 퍼뜨리는 게 자네의 복수인가?"
"사이비 종교라니. 이건 혁신이야. 이건 우리 아마추어의 위대한 힘을 보여줄 시범 케이스가 될게야. 저들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어. 바로 인간 이성의 역사가 정방향으로 흐를 거라는 근거없는 착각이야. 그러나 사실은 달라. 학계는 전문화 되면서 사실상 일반인과 학계를 이어주는 다리를 스스로 태워버리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우리 아마추어 전문가들이 잿더미가 된 다리 위의 새로운 교두보가 되어주었네. 하지만 저들은 우리의 노력을 비웃었지."
"그렇다면..."
"나는 우리의 이점을 역이용하기로 했네. 학자들은 너무 오래 학계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대중의 언어를 잘 구사하는 방법을 몰라. 학계의 용어를 적절히 번역해 대중에게 교양으로 가공해 전달하는 건 오히려 우리 아마추어들이 가장 잘 하는 일이지. 우린 대중의 평균 이성을 지지하는 주춧돌일세. 그리고 그 주춧돌이, 전문가보다 더 강한 발언권을 가진 아마추어가 어느 날 돌변한다면 어떻게 될까?"
'오...맙소사..."
허현회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대중들이 더 이상 과학을 지지하지 않는다면, 대중들이 반동적이라면, 과학자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격려에서 냉소로 바뀐다면...그때 전문가들은 알게 될 거야. 자신들은 인류 문명의 최전선에 있는 엘리트가 아니라, 그저 고립된 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말이야."
"안돼! 자네는 잘못 됐어! 난 이 일을 그만 둘 걸세!"
"아니. 넌 그만 둘 수 없어. 너의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해야지? 자, 이걸 보라구..."
김상직이 품 안에서 원고 하나를 꺼내들며 말했다. 허현회는 그 원고의 제목을 읽었다.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그리고 그는 절규했다.
"안돼!!!!!!!!!!!!!!"
(오랜 폐허의 재탕임을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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