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느낀 한국적인 이야기는 '갈등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집중하는 이야기'인 듯하다.
사실 어딜가나 이야기에서는 갈등이 빠져서는 안되지만, 음 최소한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이야기 매체는 대체로 그런 듯 하다.
일례로, 한국 드라마나 소설, 영화 할 것 없이 '감동'이라는 코드가 빠지지 않지 않은가? 감동이 이야기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감동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고, 개인적으로 최고의 감동은 주제와 소재, 갈등의 결과가 하나의 교훈을 줄 때 일어나는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감동을 그려낼 때 빠져서는 안되는 게 갈등이고, 한국의 이야기매체는 대체로 연애나 삶 속의 정치질을 통해 이야기를 끌고 간다.문제는 이런 갈등 과정을 묘사하면서 사람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흐름을 너무도 중시한 나머지, 종종 주제와 소재의 설득력을 까먹어버린다는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태양의 후예가 군인들과 의사들을 다룬 드라마였지만, 그들이 보여준 활약상에서 의사와 군인의 새롭거나 어썸한 무언가를 본 적이 있는가? 태양의 후예가 방영되면서 남았던 것 중 하나가 군인 묘사에 대한 숱한 논란이었다.
부산행을 보고 나오면서 느꼈던 분노를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초중반 나름 어-썸하게 흘러갔던 이야기를 보기 좋게 걷어차버린 후반부의 억지 감동 신파적 스토리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는, 부산행 전체의 아쉬움과 배신감으로 남았다. 그리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최근 한국이야기 매체의 대다수가 감동을 유도하고 있었다. 어쩌면 난 그 감동 코드를 제대로 못살린 영화 하나만을 보고 한국적인 이야기가 이렇다고 단정짓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적인 이야기가 이런 갈등에서 파생되는 결과를 중시하는 성격으로 대표된다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지나가자, 이런저런 걱정이 들었다. 과연 한국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어-썸하게 주고 있는가? 다시말해, 한국적인 이야기는 갈등 속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설득력있게, 그리고 새롭게 그려내고 있는가? 그런 질문과 함께, 한국적인 이야기가 갈등의 묘사와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를 강조하기 위해 소재와 주제를 희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떠올랐다. 갑자기 연개소문의 합판과 기타 대한민국 사극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도채체 사극의 목적이란 무엇이었단 말인가? 한국적인 이야기의 바탕은 역사와 신화에서 찾을수도 있으련마는, 대한민국 사극이 요모양 요꼴인 이상에야 아! 한국적 이야기의 미래는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