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이 계속 여성 참정권에 반대하다가 1차대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는 생각은 실제와 매우 큰 차이가 있읍니다.
영국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19세기 중후반부터 이미 여성은 지방 선거에 투표할 수 있었음. 문제가 되는 건 총선. 1910년부터 여성에게 총선에서의 참정권을 주는 법안은 여러 번 올라왔었고 의회 내에서 이미 큰 지지를 얻었음. 총선 때문에 무산되거나, 아일랜드 문제 때문에 엎어졌을 뿐 이미 여성 참정권은 당시 집권당인 자유당은 물론 하원 내에서도 주류였다고 할 수 있음.
한편 1차대전 동안 강경 참정권 단체들도 얌전히 전쟁 수행에 동참했고, 그 와중에 온건 단체가 연립 정부의 협조를 받았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 18년에 바로 또 법안이 올라올 수 있었음. 여기서도 다시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하원에서는 쉽게 통과했지만 상원에는 여성참정권 반대 단체 회장이 있었다는 것. 하지만 '하원에서 통과된 걸 반대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소극적이었고, 덕택에 상원에서도 통과됨.
1차대전을 이유로 들려 한다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의 여러 주나 일부 유럽 국가 같이 1차대전 전에 여성 참정권을 부여한 많은 예외는 물론 영국과 같은 총력전 양상을 겪지 않은 나라도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설명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