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노숙 | ||
---|---|---|---|
작성일 | 2016-08-12 20:34:44 KST | 조회 | 1,618 |
제목 |
로그라이크 갤러리에서 인상깊게 본 명소설
|
읽기 전의 지식
던전 크롤의 수정판인 Stone Soup는 현대 로그라이크에서 가장 '원형'인 로그와 가까우면서도 인기가 있는 게임인데, 게임의 목적은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조트의 오브를 들고 던전 밖으로 나오는 것임. 조트의 오브에 대한 설정은 단 하나도 없으며 그 아티팩트를 회수하는 것이 목적임.
대체 조트의 오브는 무엇일까? 그것을 회수하는 목적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나온 소설
마침내 끔찍한 화염의 구체들과 벼락 거인, 셀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 고대의 리치와 삐에로, 죽음의 옥수수들, 마지막으로 오브 근처를 지키고 있던 뒤틀린 몸의 수호자들까지 모두 처리했다. 앞쪽으로 뻗어내는,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강한 힘을 지닌 손아귀 너머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조트의 오브가 놓여있었다. 이걸 위해 얼마나 많은 죽을 위험을 넘겼던가. 이것을 손에 넣으려 몇 명의 유망한 모험가들이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는가. 이 오브 하나를 얻기 위해 몇 명의 소중한 동료가 희생되었던가. 그는 마치 만지자마자 먼지로 변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조심스럽게 오브를 집어 들어올렸다.
먼 옛날, 조트라는 노움 마법사가 살았다. 그는 학생 시절부터 온갖 어려운 마법 이론들을 섭렵하였다. 교수들마저 그의 대담한 이론에는 손을 내저었다. 모두가 그를 입을 모아 칭송했다. 그가 무언가 전 세계에 큰 도움이 될 마법을 개발하리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가 마법 학교를 졸업하고 연구를 시작했을 때, 수많은 부호들이 그의 연구를 지원하려 달려들었다. 그 중에서는 그가 발명할 어마어마한 마법들을 미리 접하고 그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자도, 정말로 그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이 전 세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참을 수 없는 호기심으로 마법 발전의 미래를 보고자 하는 자도, 그리고 그저 남들을 따라 그에게 돈을 보내는 자도 있었다. 어찌됐든, 그에게는 막대한 자금이 모였고, 그는 과거의 어떤 마법사보다 편안한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렀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그 막대한 자본과 시간, 다시없을 뛰어난 두뇌가 만들어낸 것은 작은 구슬 하나였다. 이 구슬에는 특별한 기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수프를 끓일 때 이 구슬을 넣으면 그 수프가 아주 맛있어진다는 것이었다.
이제 몰락해버린 천재는 사람들 앞에 나서서 자랑스럽게 오브를 흔들어대었다. 그는 이 오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전까지의 마법으로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물건인지 연설하였다. 수프에 넣으면 물의 양이 얼마던 상관없이 곧바로 간을 맞춰준다. 어디에서 소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브에서 직접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브는 영구적으로 작동되며, 파괴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그저 '간 맞추는 도구'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떠났다. 돈도 되지 않는 싸구려 발명품. 그냥 소금을 뿌려 먹으면 되는데 하나를 만드는 데 고자그조차 눈을 동그랗게 뜰 금액이 들어가는 오브를 쓰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법이 가져올, 지금까지와 다른 미래를 기대하던 사람들은 실망하여 돌아섰다. 다른 사람들을 따라 돈을 보내던 사람들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도망쳤다. 모든 사람들이 그를 떠났고, 천재는 순식간에 혼자가 되었다.
그 다음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이다. 조트는 그의 모든 노력과 지식이 들어간 오브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조트의 오브를 들고 해 지는 서쪽으로 떠나갔다. 자신의 발명품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이 물건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물건을 사용할 자격이 없다면서 던전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충격에 미쳐버린 것일까? 그는 그의 남은 여생을 던전을 구축하고 그곳을 방어할 몬스터들을 키우며, 조트의 오브를 아무도 찾아가지 못할 곳에 숨기는 데에 사용하였다.
이건 더 옛날의 이야기이다. 먼 옛날, 조트로부터도 훨씬 예전에, 딮엘프와 하이엘프가 엘프라는 하나의 종족이던 시절, 인간들은 씨앗을 땅에 뿌리면 곡식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건 아마도 후대의 사람들이 조트같은 천재에게 기대할법한 기적적이고 혁신적인 발견이었다. 곡식을 거둬서, 땅에 뿌리고, 키우면 식량이 생긴다. 목숨을 걸고 코끼리 같은 동물들과 싸우지 않아도, 희망도 거의 가지지 못한 채 드래곤같은 맹수들과 먹이 경쟁을 하지 않아도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니!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니, 어쩌면 그제서야 열광할만큼 체력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방법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인간의 번영은 약속되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생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사냥한 고기를 먹지 않고 곡식만 먹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로해져 제대로 활동도 할 수 없었으며, 체중 역시 급격히 감소했다. 그들은 그렇게 급격히 체력이 악화되어 결국에는 음식을 먹을 수 조차 없어져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리고 말았다. 고대의 사람들은 두려워 떨었다. 그들은 이 병을 '트로그 병'이라고 이름붙였으며, 싸움과 쟁취가 아닌 평화로운 방식으로 음식을 얻어내려 했기 때문에 트로그가 분노하여 사람들을 병에 걸리게 한 것이라고 믿었다. 일부 사람들은 농사는 포기하고 사냥과 채집으로만 먹고 사는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농사라는 새로운 방식은 사라져 버리는 듯 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새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어떤 마을의 사람들은 한 명도 트로그 병에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의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던 샤먼들이 이 마을을 방문하여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 마을 사람들은 특정한 돌맹이를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산에 가면 하얀 색의 그리 단단하지 않은 광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 광물을 부숴 곡식과 함께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알겠지만, 트로그 병은 나트륨 부족의 증상이고 하얀 광물은 암염, 즉 소금이었다.
그렇게 트로그 병을 해결한 인간들은 번성해나갔다. 인간들이 가장 먼저 농사짓는 법을 발견했기 때문에 오크나 하플링, 드워프나 노움 같은 종족에 비해 훨씬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번성에 암염에 발견이 거의 농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한다.
조트가 '간을 맞추는' 마법 도구를 발명했을 때 즈음, 사람들은 그들이 파내던 암염 광맥 중 하나가 완전히 고갈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극단적인 비관주의자를 제외하면 이 일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륙 곳곳에 퍼져 사는 사람들은 수많은 암염 광맥들을 개발하였으니까. 그 중 하나 정도가 없어진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기야 하겠는가.
하지만 100년 정도가 지나자 사람들은 그저 웃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알려진 암염 광맥 중 절반 정도가 완전히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소금값은 매년 두배가 될 정도로 미친듯이 치솟기 시작했고,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층민들은 그들이 죽지 않을 정도의 소금을 구하는 것만 해도 벅차했다. 암염을 가공해서 만드는 소금을 대체하기 위해 동물의 피를 그대로 마시는 야만적인 풍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피를 매개로 감염되는 질병들과 기생충들이 점차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세상은 점차 혼란에 빠지고, 여기저기서 작은 분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람은 이럴수록 종교에 의존하게 되는 법. 기존 강세였던 삼대 선신 이외에도 콰즈랄 같은 중립신이나, 심지어 마크래브 등의 악신과 좀 같은 혼돈의 신의 신도 역시 급격하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제들은 대륙 곳곳에서 충돌하고, 종교와 경제적 문제, 국가나 종족간의 갈등까지 점점 심화되었다. 마침내 지금까지 일어난 전쟁 중 가장 큰 규모의 전쟁이 일어나려고 했을 때, 누군가가 100년 전의 한 노움 마법사를 기억해냈다.
그의 발명품인 조트의 오브. 그는 분명히 그 오브가 아무리 많은 양의 물이라도 순식간에 소금물로 바꿔 버릴 수 있으며,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하고, 소금을 어디선가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이 오브가 지금의 소금부족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륙 전체에서 들끓던 폭발 직전의 에너지가 조트의 던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세계의 존치를 위해, 누군가는 오브를 이용해 막대한 돈을 벌기 위해, 혹은 국가나 종교의 위상을 드높히기 위해 수많은 모험가들이 던전으로 행했다.
그렇지만 조트가 누구인가? 학교를 졸업학기 전부터 세계의 관심을 모으던, 1000년에 한번에야 등장할까 말까 하는 희대의 천재가 아니었는가? 그런 그가 거의 광기에 휩싸여 인생의 절반을 넘게 투자하여 만든 던전이 쉽게 뚫릴 리 없었다. 던전 안으로 향한 모험가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고, 사람들의 희망은 실망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다시 그런 실망이 조금씩 분노로 바뀌기 시작할 때, 한 명의 용사가 드디어 오브를 손에 넣은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긴 여정 끝에 오브를 손에 넣은 모험가는 뒤돌아 지상을 향해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계속해서 끔찍한 고위 악마들과 지옥의 거인들이 나타나 뒤를 쫓아왔다. 이게 정말로 노움 마법사 한 명의 집착의 결과란 말인가? 모험가는 가방 바닥에 남아있던 가속 물약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들이켜 가며 던전을 올랐다. 조트의 렐름, 심지, 던전을 거쳐 그는 드디어 던전 밖으로 돌아나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막대한 돈을 약속하며 오브를 넘겨줄 것을 요구했다.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소금을 조금이라도 얻어볼 수 없을까 하고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고, 한 곳으로 걸어갔다. 그의 목적지에는 바다가 있었다. 그는 단련된 팔 힘으로, 오브를 뒤로 당기고는, 바다 멀리 힘껏 던져넣었다.
이로 인해 누구나 바다에 가면 소금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갔으며, 평화는 지켜졌다. 아, 빼먹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조트는 음식을 매우 짜게 먹었다고 한다.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