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다. 기억나는 것은 개똥과 소매치기, 노숙자, 지린내다. 나는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국의 수도, 서울이 그리워졌다. 물론 파리에도 멋진 것들이 많았다. 루브르 박물관 같은 문화시설, 과거를 걷는 듯한 거리의 전경 등. 하지만 그것들은 현대의 프랑스가 아닌, 과거의 프랑스가 만든 유산들이다. 현대의 프랑스는 그저 다 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혀 놨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울이 전례없는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가 되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헬조선식 노동제도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서구 어떤 도시에서 24시간 물건을 팔고, 배달을 하며, 법으로 보장된 휴가를 못 쓰게 강제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동양적 가치에 경도된 헬조선만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런 생각이 들고서야 파리의 똥오줌내는 여기가 천국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나는 파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7시간의 시차. 이런 머나먼 길을 떠나서야 헬조선에 경도된 나를 돌아볼 수 있었고, 헬조선의 진실을 접할 수 있었다. 여행 말미에는 지옥불 반도로 돌아가는 내 자신이 정말 싫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실제로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10도 이상 높은 기온을 느끼며 지옥에 돌아왔음을 체감했다.
오늘은 을지훈련이랍시고 1시간 일찍 출근했다. 심지어 나는 을지훈련 소집대상자도 아닌데 말이다. 지옥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