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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작성일 2016-09-11 00:12:55 KST 조회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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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주의) 조선은 사실 그렇게 무능력한 나라는 아니었다

역사를 보다보면 고구마를 목구녕으로 쑤셔박다못해 그 상태로 입에 청테이프 발라놓은 듯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 부분이 절정을 찍고 그 다음이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 그 다음이 양란 대충 그정도로 순위를 매길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인터넷에서 접하는 상당수 프-로 호사가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답답한 부분의 원인을 조선으로 꼽고있다. 그들이 조선을 폄하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들자면 1. 조선 정치 참여자들의 무능함 2. 유교 사상의 교조화 3. 적절한 때의 근대국가로의 변화 실패 등이 있다. 참으로, 조선은 이 이유대로라면 마땅히 까일 수 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다. 인생은 역사책을 보듯이 전지적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역사 속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정치가들은 무능력하지만은 않았다. 성리학은 사회를 다스리는 통치 방법을 합리적으로 실현시키려는 시도였고, 조선 기득권층이었던 양반층은 이를 바탕으로 인(仁)과 덕(德)을 실현하려했다. 동시에 그들이 이끄는 조직, 즉 국가와 붕당은 효율적인 중앙국가권력의 구축을 노렸고, 곧 18세기까지는 세계 어떤곳에도 뒤지지 않고, 아니 오히려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 통제력을 구축했다.(물론 사회 구성원들 입장으로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조선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현상과 물질'의 원리인 이(理)와  구조인 기(氣)를 국가시스템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이(理)는 명분이었고, 기(氣)는 사회 현상이었다. 적어도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임술민란 이후 까지도, 그 시스템은 강렬한 도전을 받았을지언정 무너지지않았다.

 

 그러나 조선의 위정자들은 변화에 어두웠다. 어쩌면 그들의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그들 자신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사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에 속해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19세기 말은 전세계적으로 음모와 계략이 판치던 더러운 제국주의 시절이었고, 일본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란 시혜를 입고 간신히 식민지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 국가 시스템 붕괴의 위기를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던 외부로부터 받았고, 절치부심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했다. 조선은 그 방법 중 하나였고,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점차 병합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 운요호 사건과 두차례의 양요는 위정자들에게 있어 외국인들의 소란이었고, 실제로 외국인들은 개항 이후 조선에 있는 경제적 이권을 가져가는데 힘쓸 뿐 조선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계속 쌓일 뿐이었다.

 

 조선의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백성들이 가져온 꼴이 되었다. 갑오농민전쟁, 즉 동학농민운동은 사실 국가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돌리라는 조선 사회 대다수의 목소리였다. 농민군은 생각보다 전력이 강했고, 조정의 중앙군을 깨버렸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당황했다. 이와 기로 이루어지던 국가 시스템이 오히려 자기들을 얽매게 된 것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결국 외국군의 개입을 통한 국가 시스템, 엄밀히 말하자면 기의 회복을 노린 것이었다. 사실 조선 위정자들에게도 명분은 있었다. 농민군의 목소리는 꽤 컸지만 조선 사회 전반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의병'들과 농민군과의 교전도 있었다. 결국 조선 위정자의 결정은 청군을 불러왔고, 갑자기 일본군도 딸려왔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국내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청과 일본의 텐진조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은 조선에 자신의 영향력을 어느정도 심는데 성공했다. 그때서야 조선은 외교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지만, 그들이 쏘아올린 화살의 빠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조선을 살아남게 하기위해서는 그동안 누적된 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한편, 적절한 외교를 통한 줄타기를 해야했다. 그 작업들을 동시에 하기엔 시간과 운이 많이 필요했지만, 결국 운명의 여신은 조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조선은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려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고, 장장 약 450년간에 걸쳐 그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조선은 망해버렸다. 조선의 위정자들의 잘못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시스템 유지에 집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눈이 먼 나머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예전에 아무리 유능하다한들 살아남지 못한다. 문득 람보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이 떠오른다. '난 베트남에 있었을 땐 뭐든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선 빌어먹을 주차장 관리요원도 안된단 말입니다!' 어쩌면 조선은 양란과 수차례의 외침으로, 그리고 사회의 혼란때문에 PTSD에 걸린 불쌍한 국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람보가 저지른 사회적 혼란은 용서받기 힘들듯이, 조선의 단점과 그로 인한 망국의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하야한다. 아니 용서도 필요없다. 다만 다른 시각으로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갑자기 조선 얘기가 나오길래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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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콘 zhuderkov (2016-09-11 00:21:07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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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틀리면 국가 시스템을 개혁할 필요성도 있다가 교훈인가...
수비니우스 (2016-09-11 00:39:18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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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군을 부르자고 주장한 위정자는 고종 혼자고 조정대신들은 다 반대했다는게 함정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2016-09-11 00:43:31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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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군 파병 요청은 민씨 일가의 고위관료(이름이 잘 기억안남)가 먼저 운을 띄우고 고종이 그러는게 어떨까 하다 관리들이 조선군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는데 털리니까 급물살타게된거라 고종 단독책임이라 보기도 애매함
수비니우스 (2016-09-11 01:07:29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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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군 불러오는거 부분 찾아봤는데 인터넷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실록에서는 안보이고(고종실록이야 실록으로 안쳐주긴 하지만) 일성록(왕 일기)에 있다고 하네요 http://blog.naver.com/jkim0815/30021157788 "고종, 보은집회 당시 외국군 파병요청 검토했나?" 기사 스크랩인데 고종 30년(1893년) 3월 25일자 일성록 부분 인용한 부분 괜찮은것 같아요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2016-09-11 01:11:5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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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과관계가 잘못됨
먼저 1893년에 동학교도들이 보은집회를 열자 고종이 회의를 주관하고 여기서 고종이 청의 원병에 대한 의지를 보임. 그리고 비밀리에 박제순을 보내 컨택까지 함. 근데 보은집회는 평화적으로 끝났고 고종도 더이상 진행시키지 않았음. 근데 1894년 알다시피 전투가 일어나고 경군이 깨지자 경군의 지휘관인 홍계훈이 청의 원병 파견이 불가피하다 상소올리고 고종은 섣부르게 움직이지 말자해서 다시 대신들 불러모아서 의견을 묻고 청의 원병은 안되는 걸로 결론남. 근데 농민군이 전주까지 점령하자 중론이 다시 청군 파견으로 기울게되고 결국 청★군★파★견
추가로 조선 조정이 텐진조약을 모르고 있진 않았네요, 충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반대한 사람들도 있고. 다만 주둔 명분을 없애면 다들 돌아갈거라 생각한듯함
수비니우스 (2016-09-11 01:16:4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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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성의 본적인 전주가 함락된 상황에서 반대하면 역적으로 몰려서 잣될 수 있으니 대신들이 버로우탄듯...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2016-09-11 01:16:5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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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엄찬호/[淸日戰爭에 대한 조선의 대응]/한일관계사연구 25집을 참고했습니다
수비니우스 (2016-09-11 01:20:23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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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읽어봐야겠네요 일단 찾아본 집근처 도서관에는 없네요... ㅜㅜ 어디서 보셨나요?? 대학도서관에 있으려나...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2016-09-11 01:22:02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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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거기에 대한 언급은 안나와있으니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지만 아까 제가 참고한 논문에 실린 당시 조정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1. 조선은 지금 자체적으로 농민군을 소멸시킬 수 없다. 2. 청군은 임오군란/ 갑신정변의 소란도 잠재워준 적이있다. 3. 따라서 청군의 파병을 요청한다 이거임
아이콘 플토지만허접 (2016-09-11 01:23:2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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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PIA에 찾아보시면 나올 듯
대학 다니시면 앵간한 대학 도서관은 DBPIA랑 연계되어있으니 대학사이트에 로그인 하셔서 DBPIA 타고 들어가시면 될거에요
수비니우스 (2016-09-11 01:27:44 K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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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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