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다보면 고구마를 목구녕으로 쑤셔박다못해 그 상태로 입에 청테이프 발라놓은 듯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대한민국의 현대사 부분이 절정을 찍고 그 다음이 조선말 대한제국 시기 그 다음이 양란 대충 그정도로 순위를 매길 수 있다. 그런데 보통 인터넷에서 접하는 상당수 프-로 호사가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답답한 부분의 원인을 조선으로 꼽고있다. 그들이 조선을 폄하하는 이유를 간략하게 들자면 1. 조선 정치 참여자들의 무능함 2. 유교 사상의 교조화 3. 적절한 때의 근대국가로의 변화 실패 등이 있다. 참으로, 조선은 이 이유대로라면 마땅히 까일 수 밖에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중요한 사실을 하나 잊고 있다. 인생은 역사책을 보듯이 전지적 시점으로 진행되지 않으며, 역사 속의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정치가들은 무능력하지만은 않았다. 성리학은 사회를 다스리는 통치 방법을 합리적으로 실현시키려는 시도였고, 조선 기득권층이었던 양반층은 이를 바탕으로 인(仁)과 덕(德)을 실현하려했다. 동시에 그들이 이끄는 조직, 즉 국가와 붕당은 효율적인 중앙국가권력의 구축을 노렸고, 곧 18세기까지는 세계 어떤곳에도 뒤지지 않고, 아니 오히려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 통제력을 구축했다.(물론 사회 구성원들 입장으로서는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조선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현상과 물질'의 원리인 이(理)와 구조인 기(氣)를 국가시스템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이(理)는 명분이었고, 기(氣)는 사회 현상이었다. 적어도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임술민란 이후 까지도, 그 시스템은 강렬한 도전을 받았을지언정 무너지지않았다.
그러나 조선의 위정자들은 변화에 어두웠다. 어쩌면 그들의 만들어놓은 시스템이 그들 자신의 눈을 어둡게 만들었다. 사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에 속해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19세기 말은 전세계적으로 음모와 계략이 판치던 더러운 제국주의 시절이었고, 일본은 미국의 남북전쟁이란 시혜를 입고 간신히 식민지 상태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 국가 시스템 붕괴의 위기를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던 외부로부터 받았고, 절치부심하여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잡으려 노력했다. 조선은 그 방법 중 하나였고,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점차 병합의 길로 들어섰다. 반면 조선은 그렇지 않았다. 운요호 사건과 두차례의 양요는 위정자들에게 있어 외국인들의 소란이었고, 실제로 외국인들은 개항 이후 조선에 있는 경제적 이권을 가져가는데 힘쓸 뿐 조선의 시스템을 무너뜨리려하지 않았다. 다만 문제가 계속 쌓일 뿐이었다.
조선의 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백성들이 가져온 꼴이 되었다. 갑오농민전쟁, 즉 동학농민운동은 사실 국가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돌리라는 조선 사회 대다수의 목소리였다. 농민군은 생각보다 전력이 강했고, 조정의 중앙군을 깨버렸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당황했다. 이와 기로 이루어지던 국가 시스템이 오히려 자기들을 얽매게 된 것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결국 외국군의 개입을 통한 국가 시스템, 엄밀히 말하자면 기의 회복을 노린 것이었다. 사실 조선 위정자들에게도 명분은 있었다. 농민군의 목소리는 꽤 컸지만 조선 사회 전반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아니었고, '의병'들과 농민군과의 교전도 있었다. 결국 조선 위정자의 결정은 청군을 불러왔고, 갑자기 일본군도 딸려왔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국내 문제에 집중한 나머지 청과 일본의 텐진조약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었다.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은 조선에 자신의 영향력을 어느정도 심는데 성공했다. 그때서야 조선은 외교의 중요성을 알아차렸지만, 그들이 쏘아올린 화살의 빠르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조선을 살아남게 하기위해서는 그동안 누적된 국가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한편, 적절한 외교를 통한 줄타기를 해야했다. 그 작업들을 동시에 하기엔 시간과 운이 많이 필요했지만, 결국 운명의 여신은 조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듯, 조선은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려는데 많은 노력을 쏟았고, 장장 약 450년간에 걸쳐 그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조선은 망해버렸다. 조선의 위정자들의 잘못은 아이러니하게도 국가 시스템 유지에 집착한 것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눈이 먼 나머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예전에 아무리 유능하다한들 살아남지 못한다. 문득 람보의 애처로운 울부짖음이 떠오른다. '난 베트남에 있었을 땐 뭐든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선 빌어먹을 주차장 관리요원도 안된단 말입니다!' 어쩌면 조선은 양란과 수차례의 외침으로, 그리고 사회의 혼란때문에 PTSD에 걸린 불쌍한 국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람보가 저지른 사회적 혼란은 용서받기 힘들듯이, 조선의 단점과 그로 인한 망국의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용서하되 잊지는 말하야한다. 아니 용서도 필요없다. 다만 다른 시각으로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갑자기 조선 얘기가 나오길래 쓰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