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기억 안나는 숱한 한미연합훈련 중 하나였는데 완전군장 야간행군이 있었다
전방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와 우리 주변 일반 보병부대들은 이런 행군이 있을때 이른바 가라 군장(군장 안에 박스 등을 넣어 부풀려 보이는 것)을 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약속되어 있었다. 이게 40km 걷는 게 생각보다 정말 힘들어서 빈 가방을 들고 가도 지친다...정말이에요
근데 이 연합사 훈련때는...대대장이 어떤 퍼포먼스를 했냐면...
연대장 할아버지가 보는 앞에 저울을 가져와서는 모든 병사들이 출발하기 전에 군장 무게를 재고 가게 했던 것이다...당연히 전 중대가 난리가 났고, 나는 그때 상병이 저물어가던 무렵이었는데 인연에도 없던 완전 군장을 준비하게 됐다. 한국군 완전군장 기준은 공격군장 15kg(맞나?) 완전군장 20kg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무게를 재보니까 19.2kg 나왔는데 간부가 친한 사람이라 다행이 봐줌;
어쨌든 우리는 XX연대 아자아자 파이팅이란 엿같은 구호를 외고 출발했다...그리고 처음 50분을 걷자마자 나는 이게 미친 짓이고 이걸 마치고 나면 내 몸이 완전히 녹아내릴 거란 걸 직감했다
가장 악몽이었던 건 부대 복귀 30분을 남기고 유도병(선도병? 척후병? 이 용어가 맞던가?)이 길을 잘못 트는 바람에 부대 전체가 25분 남짓한 시간을 더 걸었던 거다. 아니 똑같은 길 수십 번씩 걸어다니는데 대체 어떻게 모든 부대 모든 사람들이...아니다 난 당신들 지겨운 관료주의자들을 용서합니다...
군 생활하면서 울고 싶었던 적이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때만큼은 정말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하지 불현듯 연대장 할아버지의 씹어먹어버리고 싶은 가증스러운 얼굴이 떠올랐다
그 빌어먹을 늙은이의 안락한 연금을 보장하기 위해 내 몸을 썩이고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되나? 20-30대의 젊은 간부와 용사들이 국가 복지자금 빨아먹는 기생충한테 여남은 생 동안 재규어 올 뉴 XF 살 자금 더 보태줄려고 척추와 다리를 분질러야 한다는 게??(농담입니다)
하지만 이 지옥같은 과정을 거치고 난 우리의 소녀들은 분명 강하고 위대한 철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