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담론 시대의 메시아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월가 시위를 지지했고, 이제는 트럼프도 지지한다.(혹은, 적어도 트럼프가 최악의 선택은 아니라고 단언한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그의 공포는 월가 시위를 촉발한 대중의 공포와 그 맥을 같이 한다. LGBT+, 페미니스트, 센트럴 리버럴리스트 등을 포함하여 각자의 지평을 가진 모든 진보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연합이 좌파의 복합기업화를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내무 정책은 전통적인 중도 리버럴 성향을 띄고 있으며, 전임자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갈수록 급진화되는 GOP와 어쩐 일인지 그에 부합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오늘날 미국 민중들의 커먼 센스에 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제크는 말한다.
"오늘날 미국의 센트럴 자유주의자들이 하는 말은 모두 똑같다. 오바마의 캐치 프레이즈였던 'YES WE CAN' 은 이제 이렇게 들린다. 그래, 당신들(진보주의자)이 원하는 모든 문화적 진보를 추구할 수 있어. 다만 미국과 국제 경제에 손상을 끼치지만 말라고."
그리고 이 현실주의적 합의는 이제 힐러리에게서도 드러난다. 지제크는 이것을 Hillary consensus라 지칭한다. 트럼프라는 Ideal evil에 대항하는 모든 좌파 진영의 연합이 궁극적으로는 힐러리 컨센서스에 힘을 실어주어 좌파의 가장 주요한 원동력 - 분열을 통한 진보 운동의 급진화 - 을 해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지제크의 입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민주주의의 연약한 신생아를 해칠 오염된 물"이 아닌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충격을 전달할 궂은 질병"에 가까우며, 새로운 사회 혁명을 촉발할 기회이다.
대중의 분노는 샌더스와 트럼프를 낳았다. 이 두 후보는 모두 중우주의의 기류를 타고 갑작스럽게 솟아오른 '우발적 사고'에 가까운 사람들이며, 지금 시대의 미국인들이 염원하는 두 가치를 대변한다. 하나는 궁극적인 이민자 사회의 조화를 포섭할 신세대의 생태주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과거의 영광(그런 게 존재한다면 말이다)을 다시 쟁취해 줄 잊혀진 구세대의 컬럼비아 신화다.
당연히 지제크는 샌더스를 우호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민주당의 거대한 중도 기류에 흡수당하는 걸 보며, 미국의 혁명 원동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는 틀렸다. 지제크를 포함한 현대의 사변 철학자들이 범하고 있는 잘못은, 그들이 불을 가지고 놀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급진적 변화를 위해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피폐하게 만들 위험한 충격을 불러들이고자 한다. 사회의 진보가 사회의 후퇴로부터 촉발될 수 있다는 생각은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며,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할지라도(예를 들어 포스트 트럼프 후 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민중이 다시 좌파 엘리트를 연모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라) 결코 그것이 '건강한 사회적 합의' 하에 이루어진 진보라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너무나 쉽게 다시 전복될 것이다.
필연적으로 나는 지제크의 강의를 보면서 지난 몇 년간 컬트적인 인기를 끈(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등지를 필두로 꾸준히 재생산되고 있는) 헬조선 담론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몇 진보주의자들이 헬조선 브랜드에 편승했던 때를 상기했다.
헬조선을 월가 시위와 완전히 동일 선상에 둘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맥락적인 측면에서는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헬조선 서사의 주인공은 고통 받는 흙수저(무산계급)다. 그들은 부의 상속과 가족경영형 복합기업 체제를 통해 기득권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재벌들을 혐오하며, 오직 죽창(급진적 사회 변혁)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지점에선 헬조선 담론은 그간 한국 좌파들이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급진적 사고의 단초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좌파는 실제로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대중의 분노는 거칠게 타오르고 급히 휘발된다. 거기에는 어떤 정치적 방향성도 없다. 좌파는 우연히 헬조선 담론에서 얻어걸린 몇몇 진보적인 지점들을 확대해석하여 대중의 표를 얻을 수 있겠지만, 그들의 분노를 충족시켜 줄만한 충분한 연료를 공급하지 못하면 금새 자기들이 타들어가고 말 것이다.
헬조선 서사의 가장 거대한 핵심인 '무산계급의 고통'에서 무산계급 여성이 의도적으로 배제되고, 재벌 복합기업에 대한 적의가 반세계화와 (조선족 등 특정 집단에 대한)반이민 정서로 흐르고, 흙수저 계급론이 궁극적으로는 자신들의 성분 층위를 나누는 새로운 감별법이 되었을 때 좌파 기수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건 우리가 원했던 방향이 아냐!" 하지만 잘 생각해 보라. 애초부터 헬조선에는 방향이 없었다.
그래서, 지제크는 틀렸다. 나도 틀렸고 한국의 그 모든 멍청한 좌파 언론지와 불쌍한 시사인도 다 틀렸다. 트럼프 현상은 '대중의 뜻'이긴 하겠지만, 그것이 정치공학적으로 어떤 새로운 국면을 불러들일 수 있는 신선한 충격으로 치환될 순 없다. 마찬가지로 힐러리의 당선이 미국 진보주의의 절대적으로 옳은 방향이라 단언할 순 없어도, 최소한 궁극적인 위기는 아니다. 우리는 국제주의, LGBT+, 여성인권의 진보에 대한 가장 확고하고도 물질적인 반발을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설령 힐러리 컨센서스가 이러한 운동들에 대한 '다소간의 정체'를 불러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전체를 판에 놓고 갬블을 하자는 주장에 동의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