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검돌격은 생명을 구한다.
이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명제이다. 착검 돌격의 목적은 상대방을 찔러 죽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둘러 보면, 착검돌격으로 종결되는 전투는 더 적은 사상자를 낸 것을 볼 수 있다. 착검돌격의 대상이 되는 전열은 주로 붕괴하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전쟁 시절까지의 전투 양상은 주로 전열 보병이 서로 총을 쏜 후, 우세한 쪽이 착검돌격을 하는 것으로 전투가 흘러갔다. 그러나 대검은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았다. 전열 보병 시절까지만 해도 전체 사상자의 2%만이 대검으로 인한 사상자였다.[1] 착검돌격을 당하는 쪽은 주로 상대가 도달하기 전에 도주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은 긴 꼬챙이에 찔리는 것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때 당시 전투들은 주로 회전이었다. 상대에게 사상자를 내는 것은 주로 사격이었으나, 상대를 전투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은 총검이었다. 특히, (영국의 레드코트들을 제외한) 머스킷 전열보병들의 심각한 사격 솜씨는 돌격 감행자에게 큰 손실을 주지 못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 시대의 러시아 장군 알렉산더 수프로프는 "총탄은 멍청하나 대검은 현명하다" 라는 말까지 남겼다.[2]
반면 미 남북전쟁 때에는 새 전장식/후장식 라이플로 무장한 전열보병이 서로를 마주보고 계속 쏘기만 했다. 착검 돌격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 사격전은 부대들을 괴멸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참관했던 영국 군사고문들은 이 양상을 보고 경악했다.[4]
물론 남북전쟁에 유명한 총검 돌격들은 많이 있다. 특히 유명한 게티즈버그 전투의 리틀 라운드 탑에 대한 북군의 착검돌격은 이 전투의 하이라이트 였다.[3]
하지만 착검 돌격은 흔하지 않았다. 착검 돌격을 감행하기 위해서는 적의 사격으로 돌격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도와 군기가 상당히 중요하다. 대개의 경우, 남군과 북군 둘다 훈련과 군기가 상당히 부족하였다.[4] 심지어는 어느 북군 연대가 착검 돌격 명령을 두번이나 거부하였다는 사례도 존재한다. 아마 멀쩡한 총이 있는데 굳이 적을 찌르러 달려갈 필요성을 못 느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사망자를 더 발생 시키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소총이 더욱 정확해지고, 기관총이 발명되자 돌격 감행은 상당한 사상자를 내기 시작하였다. 또한 전투 양상이 뭉친 전열이 아니라 병력들이 흐트러지고 산개되자 착검 돌격은 사장되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은 모든 전투는 야포가 시작하고 총검이 종결시켜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엘랑 비탈! 록타르 오가르!
레퍼런스:
1. Lynn, John A. Giant of the Grand Siècle: The French Army, 1610-1715. Cambridge: Cambridge UP, 1997.
2. Isinger, Russell (October 1996). "Aleksandr Suvorov: Count of Rymniksky and Prince of Italy". Military History.
3. Desjardin, Thomas A. Stand Firm Ye Boys from Maine: The 20th Maine and the Gettysburg Campaign. Gettysburg, PA: Thomas Publications, 1995.
4. GFR Henderson(1912), The Science of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