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그러니까 지난 25년간 소득이 없으셨다... 이 말씀이시죠?" 소녀가 물었다.
드래곤은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이었다. 그는 지난 25년간 동굴 속에서 잠을 자거나, 명상을 하거나, 혹은 오래된 고서를 읽으며 지냈다. 딱히 나갈 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다.
"그렇다면 소득세는 면제가 되네요. 그런데 부동산세와 재산세는 내셔야 되요. 지난 40년간 단 한 푼도 내지 않으셨더군요? 솔직히 자산 압류가 들어갈 금액이긴 한데 법이 바뀌신 걸 모르셨다 하셔서 제가 최대한 사정을 봐드리는 거에요. 특히 금이랑 은이 자산의 대부분인데 이건 국가전략금속으로 분류되서 0.2%의 연간..."
"...그러니까 내 금과 은을 가져가겠다는 말인가?" 용은 약간 짜증나기 시작했다.
소녀는 마음대로 동굴에 들어왔다. 그리고 달콤한 잠을 자고 있는 용을 깨웠다. 용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사이, 당돌하게도 어디선가 낡은 탁자와 의자를 끌고 와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 아닌가?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소녀의 당돌함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손님을 받은 지 몇십년은 되었다.
"일부만요. 일부만. 이 나라에 사시면 나라의 법을 따라야죠. 그리고 세금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어요." 소녀는 마치 훈계하는 듯이 말하였다. "그리고 지난 19년간 매년 독촉장을 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받아보신 적 없으신가요?
"음 글세다. 내가 배달부를 먹어치운 게 아닐까?" 용은 수많은 이를 살짝 드려내며 말했다.
"하하하. 참으로 웃기시네요." 소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참고로 저는 공무원이에요. 공무원을 협박할 생각은 마세요. 당신처럼 세금을 안 내겠다는 부자는 세상에 널렸는데, 죄다 세금을 내거나 자산을 압류당했죠."
용은 이제 서서히 화가 났다. 용들에게 있어 금은보화는 생명과도 같다. 그들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자꾸 압류이니 뭐니 하면서 자신이 정정 당당하게 약탈한 금과 은을 가져가겠다니,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됬다! 나를 당장 인간 황제에게 인도해라. 그에게 그의 종속들에 대해 이야기좀 해야겠다."
"이보세요 아저씨. 황제는 없어요. 50년 전에 국민 혁명으로 폐위당했어요. 우리나라는 이제 민주 공화국이고, 국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요!"
"이 꼬맹아, 나는 너보다 족히 500년은 더 살았고-"
"나이 많이 드신게 자랑은 아닌거 같은데요?" 소녀는 비웃었다 "그나저나 왜 금은을 현물로 몇십년이나 가지고 있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돈을 잃는 것이나 마찮가지인데?"
"뭐라고! 너를 당장- 잠깐, 뭐라고? 내가 내 돈을 왜 잃어?" 용은 소녀의 당돌함보다 돈을 잃는다는 말에 더 충격을 받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소녀는 금화 하나를 땅에서 주웠다. 그리고 용에게 들어 보였다.
"이거 보이시죠? 이거 제국 시절 금화잖아요. 이건 지금 화폐가치가 없어요. 뿐만 아니라 금값 자체가 떨어지는데 당연히 가지고만 있으면 돈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죠. 경제 성장에 따른 물가 상승도 감안해야죠."
소녀는 그녀의 공책에 뭐라 끄적이기 시작했다.
"음.. 지난 50년간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고... 금값 하락도 생각하면...... 아마 65~75% 자산을 잃으신 거와 다름이 없네요."
용은 잠자코 있었다.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재산의 3분의 4를 잃다니.
"지금 대충 보았을때 금과 은으로만 800억 되네츠가 있는데, 이거 한 20년 전에는 1천 3백억정도 가치였을 꺼에요."
"아니, 그렇다면 밖에서 계속 약탈을 해야 하는 것인가? 끊임없이?" 용은 소녀에게 물었다.
"아니죠." 소녀가 한심하다는 듯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약탈을 하면 물가가 폭발할거요? 그러면 약탈한것보다 오히려 더 잃을지도요.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은 투자에요."
"투자?" 용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네. 투자요. 단기채권과 회사 주식을 사 놓으면 돈이 불어나는 거죠."
"음... 나에게 이 투자라는 것을 알려다오."
"부동산세랑 금은세부터 내시면요." 소녀는 미소를 지었다. "현대 경제의 위대함을 알려드리죠."
후일담 :
용은 밀린 세금인 178억 되네츠를 내었다. 이는 아르타니아 민주 공화국 출범 이후 최대의 수익이었다. 국세청장과 소녀는 용과 함께 행사까지 하였다.
용은 남은 600억 되네츠 중 200억을 국채와 회사채에 투자하였으며, 나머지는 여러 주식에 분산 투자하였다. 덕분에 지역 사회의 경제는 크게 성장하였으며, 인근 도시 시장은 매해 4월 22일을 용의 날로 선정해, 용은 매년마다 행사에 참석해 만찬을 즐기며 연설을 하였다. 그는 자산이 대부분 은행에서 관리해 주어, 금은을 약탈당할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그가 좋아하는 고서를 수집하며 살고 있다.
소녀는 국세청에서 청장보까지 고속 승진하였으며, 용으로부터 10억 되네츠를 수고비로 받았다. 그녀는 현재 아르타니아 수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거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