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향상되었습니다: 고고학 (1)

어제 할머니 삼우제 지내러 홍천에 다녀왔습니다.

 

납골당 갔다오고 나서 생전에 사시던 아파트에 있는 물건들을 친척들이랑 같이 대충 정리했는데, 큰아버지께서 갑자기 부르시길래 가보니 방 한켠에 책이 트렁크째로 쌓여있는 게 있습니다. 뭔고 하니 할아버지 쓰시던 책입니다.

큰아버지랑 고모들께서 "네가 한자를 잘 아니까 네가 가져가서 잘 보관해라. 집안에 너 말곤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하셔서 할아버지 소유의 책들을 제가 전부 물려받게 됐습니다ㅁㄴㅇㄹ 

할아버지도 올해로 연세가 98세이시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집이 아니라 요양원에 계신데다 이제는 자식들도 잘 못알아보실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셔서 할머니 물건들 정리하는 김에 할아버지 물건도 같이 처분하게 된 겁니다.

 

점심 먹고나서 할아버지 계신 요양원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뵈었는데 언제나 기억하던 모습이랑 전혀 다르게 많이 야위셨더군요. 3년 전에 뵈었을 때는 농삿일도 직접 하시고 활동적이셨는데 기운 없이 앉아계신 걸 보니 마음이 참 뭐라 하기 힘들었습니다. 제가 뵈러 갔을 때면 항상 반가워하셨는데 저 역시도 더이상 알아보시지 못하셨습니다.

 

책은 할아버지는 더이상 보지 않으신다고는 해도 그냥 가져가는 것도 그래서 "할아버지, 제가 할아버지 책들좀 가져가서 보면서 공부할게요." 하니 "응 그래라." 하셔서 그렇게라도 허락을 받고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언젯적 건지 알 수 없는 상당히 오래 된 책도 좀 있고 비교적 최근에 산 책들(80년대)도 있습니다.

이거 외에 족보도 따로 한 박스 더 있음..

 

오래되어 보이는 책만 골라내면 이 정도

아직 제대로 파악은 못했는데 뭐 맹자도 있고 불경도 있고 할아버지가 직접 쓰신 것도 섞여있습니다.

 

꽤 간지나는데 뭐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음

할아버지는 그냥 산골짜기 농부셨지만 혼자서(아빠 표현으로는 야매로..) 풍수지리랑 부적 쓰기, 날짜 점치는 법 등 이것저것 공부하셨는데 아마도 그런 거 관련된 것이지 싶네요.

 

송재공파 밀양박씨세계 단권

펼쳐보면 이렇습니다.

이건 그림만 보고 박씨들 사는 동네를 그린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묫자리임(송재공삼대묘도)

왼쪽 페이지에는 '송재공휘윤경이하행렬도' 하고 써있는데 諱允卿의 뜻을 알 수가 없네요.

내가 한자를 안다 해봐야 읽을 줄이나 알고 일어, 중국어나 배우는 수준이지 한문 문법같은 건 뭐 당연히 1도 모름.. 이런 게 나한테 있어봤자 별 소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일본어 자습서

소화 18년(1943년) 7월 28일에 쓰임

할아버지께서 21년생이셔서 20대 젊으실 적에도 아직 일제시대(할아버지 표현대로는 왜정시대)였으니까요. 그 시절에 손에 넣으신 물건이겠지요.

표지는 없는데 있던 게 소실된 것인지 아님 원래부터 이런 책자식으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단어에서 그 시절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듯 함

 

중국어 자습서

이건 연도가 쓰여있지 않은데 위의 일본어 책자랑 같은 시절의 물건이 아닐까 싶음

간체가 아니라 전부 정자로 쓰여있으니 최소 1956년 이전의 물건이겠네요.

 

 

쭉 훑어보고 나니 아무래도 가장 흥미가 생기는 건 일본어랑 중국어 책인데 지금이랑 철자라든가 표기법도 달라서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キウ、チウ、シウ를 큐-, 츄-, 슈- ケウ、セウ、テウ、ヘウ를 쿄-, 쇼-, 쵸-, 효-로 읽는다든가, 한글도 모음 표기할 때ㅏㅣ발음을 ㅐ로 표기한다든가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좋네요.

책들이 오래되기도 했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거라 상태가 좋지 않은데 관리 잘 해야겠습니다.​ 

오우 이건 자게에 있을 글이 아닌 거 같은데

와 쥑이네;

박물관 관련 업체에다 이야기 해봐야...

요즘도 진품명품 하나 모르겠네

諱允卿 은 휘 윤경 이라고 읽습니다 휘는 돌아가신 분들 이름 앞에 붙히는거구요.
송재공휘윤경 이라 하셨는데 본관이 윤경, 호가 송재공 아닌가 싶음 확실한건아님

아 아니네요 송재공 파의 박씨인 윤경 인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