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산백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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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04-06 07:54:05 KST | 조회 | 681 |
제목 |
이번 사태에 대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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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의 기적을 만든 아홉 가지 사실들
이번 고성-속초 산불을 어젯밤 늦게부터 지켜보며 눈 앞에 떠올랐던 장면은 2005년 양양 대화재로 천년 고찰 낙산사가 한 순간에 순식간에 무너지던 모습이었다. 당시 17명이 숨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로부터 14년 뒤인 2019년 다시 화마가 영동 지방을 덮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화재는 신속하게 진화되었고 상대적으로 피해는 경미했다. 2000년 동해안 대화재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음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일궈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실들이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일까?
1. 보다 더욱 신속해진 2017년 출동지침 개정
이번 고성 속초 산불 진압의 가장 큰 원동력은 전국의 모든 소방, 방재 장비가 신속하게 강원도로 집결하여 단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소방력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 집권 후 2017년 하반기 소방청이 전면적으로 개편되며 선제적으로 이뤄진 출동지침 개정 때문이었다. 2017년 7월 대형재난에 대해 소방청이 관할 지역 구분 없이 국가적으로 총력 대응이 가능하게끔 지침이 개정되었고, 이것이 이번 산불에서 800대가 넘는 소방차가 순식간에 재해지역으로 집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2. 인프라는 힘이다 : 서울양양고속도로
아마 서울양양고속도로를 줄지어 내달리는 소방차들의 모습에 많은 분들께서 감동을 받으셨을 것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소방차들이 영동고속도로를 지나 강릉에서 북상 후 동해고속도로를 일부 지난 뒤 상대적으로 시설이 낙후된 7번 국도를 거쳐 고성 및 속초까지 도달해야 했을 것이다. 당연히 시간 역시 지연되었을 것이고 2000년 동해안 대화재 때보다 화재 확산 속도도 빨랐던 이번 산불의 특성상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고속도로가 재해 지역 주민들을 살려낸 것이다.
3. 사람은 예산으로 살린다 : 특수 소방차의 투입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드물지 않게 안타까운 소식을 듣는다. 바로 화재를 진화하는 소방인력의 순직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대형 산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소방공무원 인명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정부의 현장 통제력 자체가 뛰어났기도 하겠지만, 신형 장비의 투입도 한몫 했다. 화학소방차계의 끝판왕인 ‘로젠바우어 판터’ 의 활약이 바로 그 예시다. 중앙119구조본에 급파한 로젠바우어 판터는 그 위용에 걸맞게 주유소 등에 배치되어 진화에 도움이 되었고 소방인력의 귀중한 생명도 지켜낼 수 있었다.
4. 중앙정부와 유기적으로 협력한 군의 신속 전개
군은 4월 5일 일출 시점부터 신속하게 병력을 전개시켜 장병 1만 6천 5백명, 군 헬기 32대 및 군 보유 소방차 26대를 투입하고 재해지역 주민들에게 전투식량 등을 동원하는 활약을 펼쳤다. 정경구 국방장관이 관계부처 대책회의 이후 빠르게 일선 부대에 지시를 내린 때문이다. 특히 진화 작업에 투입될 장병들에게 지급된 마스크, 방탄헬멧 외피 등은 이전 화재 때보다 한층 장병들의 생명 보호에 우선을 둔 모습을 보였다. 2개 사단급 장병들이 산불 진화에 투입되었지만 역시나 군 장병들의 인명 사고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마스크 하나까지 신경 쓴 디테일 덕분일 것이다.
5. 쓸데없는 의전은 가라 : 현장이 우선이다
이번 산불은 공교롭게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의 임기 마지막 날 발생한 사고였다. 즉 행정부의 지휘체계가 교체되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사실 혼란이 올 수도 있었으나 현장에서 그러한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공백 상황을 틀어막았고, 화재 진압의 효율화를 위해 수행 인력도 최소화하고 의례적인 보고는 아예 금지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의전을 제거함으로써 정부는 오롯이 지휘부의 강력한 텐션만을 현장에 전달하는 데에 성공했고 이는 효율적인 진화 작전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6. 문화재청의 신속 대응 : 제2의 낙산사는 없다
이번 산불 지역에는 다수의 사찰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속초의 보광사(강원 문화재자료 제173호 현왕도 보유)와 부산 기장군의 장안사(보물 제1771호 대웅전 보유)가 바로 그것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화재가 발생하는 즉시 보광사에서 현왕도를 안전하게 타 지역으로 이송하여 혹시나 모를 소실 피해를 막았고, 실제로 이번 화재로 인해 속초 보광사는 부속 건물 2채가 전소하는 피해를 입었으나 문화재 피해는 0건이었다. 천년고찰 낙산사의 소실이라는 안타까운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록 작지만 또 하나의 숨은 공로이기도 하다.
7. 화약고에서의 대형 참사를 막아낸 경찰의 숨은 노력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번 고성-속초 산불의 발화지 근처에는 화약전문업체인 고려노벨화약의 화약 저장고가 있었다. 이 창고에는 폭약 4,884kg 과 뇌관 2990발이 들어 있었으며 발화 지점에서 고작 7km 떨어진 곳이었다. 그러나 이 화약고에 있었던 화약을 4월 4일 밤 8시 30분부터 경찰이 모조리 인근 경찰서로 수송했고, 화약이 모두 수송되고 경찰 인력까지 떠나고 난 뒤 결국 산불은 화약 저장고까지 덮쳤다. 5천 킬로그램에 달하는 화약이 폭발하게 되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피해가 발생했겠으나 이를 경찰의 신속 대응이 막아낸 것이다.
8. 초기 신고자의 노력도 사실 매우 중요했다
오후 7시 17분 최초 화재 발화지점의 신고자는 즉시 차량에서 소화기를 꺼내 초기 진화를 시도했으며 바로 소방서에도 신고해 일반적인 화재 골든타임 이내인 3분 만에 초기 진화가 시도되었었다. 다만 어젯밤 영동 지역의 강풍이 시속 100km 에 이르렀던 데다가 날씨가 지나치게 건조했던 탓에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을 뿐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사람들을 선내에 머무르게 하고 제일 먼저 도망친 선장과는 달리 이 이름 모를 분은 빠른 초동 조치와 신고로 비록 초기 진화는 실패했지만 결국 빠른 진화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
9. 그리고 현장의 영웅들. 그 분들의 노고를 설명함에 있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문화재 피해 0건, 소방 인명 피해 0건, 군 장병 피해 0건. 500헥타르 면적을 순식간에 불태운 산불의 진화 작전 결과로 이보다 더 값진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천재가 인재로 바뀌어 사람들의 재산과 목숨을 앗아 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앞서 말씀드렸던 저 열 가지 사실들 중 하나만 어긋났더라도 이번 산불은 영동 지방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을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은 2003년 SARS 방역 성공과 함께 위기 관리의 표본으로 남아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신속한 산불 진화와 인명 구조에 온 힘을 아끼지 않았던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그야말로 방어작전의 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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