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
||
---|---|---|---|
작성일 | 2019-10-11 11:32:16 KST | 조회 | 283 |
제목 |
왜 터키는 미국을 신뢰하지 못하는가?
|
왜 터키는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가Why Turkey Doesn’t Trust the United States
동맹의 쇠망The decline and fall of an alliance.
By Nick Danforth | July 15, 2019, 11:21 AM
이미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에서 터키는 이제 러시아 방공 미사일 구매로 인한 미국의 경제 제재와 키프로스 해안에서의 지속적인 에너지 탐사로 인한 유럽 연합의 제재에도 직면했다. 한 때, 힘과 번영의 길이 NATO와 EU에 놓여 있다고 믿었던 나라로써, 이런 변화는 극적인 전환이다. 이 나라의 지도자는 이제 미국과 유럽을 정면으로 맞상대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한 최선의 길이라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변화는 놀랍지는 않지만 장기적 추세와 세계, 중동, 터키의 최근 일어난 변화 둘 다의 영향이다. 오늘날의 문제는 수십년에 걸쳐 만들어져 왔지만, 그것을 확장시키는 일련의 잘못된 전개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극적인 해체로 수렴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미국-터키 동맹이 망가졌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이런 갈등은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망록이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또한 어떻게 쉽게 동맹이 망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불길한 경고이기도 하다.
냉전 내내 터키는 워싱턴의 하급 파트너 역할이라는 데에 불만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불만은 소련으로써의 보호라는 필요성으로 억눌러졌다. 결과적으로 레세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자신만의 또 다른 이슬람주의자 버전의 서구에 대한 의심 또한 품고 있던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 집권했을 때는 반미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AKP는 터키의 소프트파워를 이용해 중동을 서방이 이끄는 안정한 세계로 통합시킴으로써 터키의 지위를 그 안에서 향상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사실 AKP의 외교 정책 전문가인 아흐메트 다부트오울루는 터키의 외교적, 문화적, 경제적 영향력이 이룰 수 있는 한계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의 대표적인 노력인 이스라엘과 시리아간의 평화 중재는 성공적이지 못했고, 또 다른 노력인 2010년의 이란 핵협상은 워싱턴의 입장에서 정말 도움이 안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좀 더 통합되고 평화로운 중동 지역이라는 비전이 워싱턴의 비전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여겼다.
2010년 연말, 아랍의 봄이 시작되자 터키의 야심도 커졌다. 혼돈 가운데에서 다부트오울루와 에르도안은 '이슬람주의' 외교 정책에 더 가깝다고 할 만한 것을 실현할 기회를 보았다. 그것은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과 이란과 직접 충돌하는 한이 있더라도 중동 전역의 무슬림형제단 동맹 세력이 집권하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도 이슬람주의자들이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게 한다면 여전히 터키의 이념적 목표는 워싱턴의 리버럴한 기대와 충분히 양립할 수 있었다. 일부 분석가들은 '터키 모델'에 지나치게 긍정적이기는 했으나, 돌이켜보면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같은 나라가 터키처럼 되려면 그만큼이나 행운이 따라야 했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의 실패는 궁극적으로 워싱턴과 앙카라 사이의 전략적 차이를 증폭시켰고, 에르도안이 가지고 있던 서방에 대한 최악의 의심을 확인시켜 주었다. 게다가 그 때부터 에르도안의 정부는 더욱 강해지는 국내의 저항과 서구의 비판, 중동 지역 내 저항에 직면해서 고립당했다는 느낌을 심화시켰다.
예를 들면, 2013년 여름 무슬림 형제단과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에 대한 군사 쿠데타를 불러온 거리 시위는 터키에서 심해지는 에르도안의 권위주의에 항의하는 게지 공원에서의 시위와 동시에 일어났다. 한때 에르도안에 우호적이었던 서구 매체들은 진작부터 에르도안의 민주화 공약에 의문을 표하기는 했었지만, 게지 시위에 대한 서구 언론의 열성적인 지지는 완전히 새로운 어죠였다. 많은 서구 언론인들이 재빨리 이집트의 쿠데타를 비판하긴 했다. 그러나 앙카라의 관점에서 봤을 때, 게지 시위대를 응원하는 서구와 무르시로부터 정권을 빼앗은 압델 파타 알 시시 장군을 비난하기를 거부한 워싱턴은 민주주의에 대한 서방의 위선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있었던 시리아에서의 상황 또한 고유한 방식으로 동맹을 손상시켰다. 워싱턴이 급진적인 알카에다 연계 그룹에 대한 터키의 지원를 점차 더 우려하게 되는 것과 동시에, 터키는 시리아 쿠르드가 쿠르드 노동당(PKK)과 연계되는 것을 점차 더 우려하게 되었고, 급진적 이슬람주의 그룹을 좋은 무게추로 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게지 시위는 에르도안과 에르도안의 집권을 도운 종교적 지도자인 페툴라흐 귈렌 사이의 극적인 관계 악화로 이어졌다. 에르도안의 맹우로써, 귈렌 운동은 워싱턴에서 에르도안의 평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귈렌 운동이 등을 돌리자마자 동시에 서방의 의견도 돌아섰고, 터키의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음모론적인 연관성을 발견했다.
그 이후 있었던 사건들은 이런 균열들을 빠른 속도로 악화시키고, 에르도안이 이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터키의 다른 정권들이었다면 협력국들과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입장을 양보했을 테지만, 에르도안은 고립을 불러오는 한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
이집트의 쿠데타 이후, 앙카라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 이스라엘이 시시를 지지하게 되었는데도 계속 맹렬한 반대를 표했다. 이런 세력 정렬은 지역의 단층선을 더욱 깊게 만들었고 터키는 리비아 문제에서부터 아프리카의 뿔에 이르는 다른 문제들에서도 이들 나라와 반대 위치에 서기 시작했다. 2017년 사우디 아라비아와 UAE가 워싱턴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카타르에 대한 금수조치를 실시했을 때, 언젠가 자신도 저들의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믿은 에르도안은 카타르를 신속하게 지원했다. 그리고 동지중해에서 깊어지는 그리스, 키프로스, 이집트, 이스라엘 간의 협력은 포위되었다는 앙카라의 인식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가 시리아의 쿠르드 경쟁자들을 패배시키리라는 기대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앙카라는 궁극적으로 터키의 오랜 음모론이 현실이 되도록 도왔다. 냉전 내내 미국은 마르크스 PKK 반군에 대항한 터키를 지원했었으나 1차, 2차 이라크 전쟁을 겪으면서 워싱턴은 이라크 쿠르드족의 자치 요구를 지지했다. 이런 행동은 미국이 터키의 쿠르드 반군을 지원해 나라를 쪼개버릴지 모른다는 터키인들에게 만연한 편집증에 기름을 부었다. 그리해서 워싱턴이 실제로 시리아에 있는 PKK의 자매 조직인 인민 보호대(YPG)에 무장을 공급한다는 사실은 터키 국내에서 이데올로기를 막론하고 널리 퍼진 공포를 확증하는 것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이런 사실이 에르도안과 나라 안의 중요한 민족주의자 파벌들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공헌했다.
게다가 2016년 쿠데타 시도는 앙카라의 외교 정책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에르도안은 귈렌 운동 소속원들이 실패한 쿠데타 배후에 있다고 결론 지었고, 그 말은 워싱턴도 배후에 있다는 의미였다. 이후 워싱턴이 펜실베이니아에 망명해 있는 귈렌을 송환하지 못하자, 터키의 의심은 더욱 심화됐다.
쿠데타 이후 있었던 미국과 터키 사이의 양자 회동들은 더욱 감정적으로 변했고, 다수의 미국 교섭 담당자들은 미국 정책 이면의 논리를 성난 터키인들에게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와 동시에 YPG와 함께 이슬람 국가와 싸우겠다는 워싱턴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귈렌의 송환이 왜 필요한지 근거를 요구할 가능성을 잃었고, 터키가 전체적으로 이 정책들에 왜 그렇게 반감을 표하는지 이해할 기회도 잃었다.
앙카라의 외교적 결정을 즉시 비난하라는 정당한 여론 또한 워싱턴이 앙카라를 정확히 이해하고 예측하는 것을 힘들게 만들었다.
같은 견지에서, 쿠데타 이후 앙카라가 취한 외교 정책적 결정들을 즉시 비난하려는 정당한 여론 또한 워싱턴이 앙카라를 정확히 이해하고 예상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에르도안이 S-400 미사일 체계를 판매하겠다는 러시아의 제안을 결국은 거절하리라는 널리 퍼진 확신이 보여준다. 미국인들은 에르도안의 가장 도발적인 행동을 확실한 양보를 끌어내려는 시도로 보려고 했다. 이런 시각에서는 러시아로부터 S-400들을 주문한 것은 미국 대공 미사일을 살 때 더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서인 것이고, 미국 시민과 영사관 직원을 체포한 것은 귈렌을 붙잡기 위한 것이고, 주이스탄불 사우디 영사관 내에서 있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살인에 대한 세부사항을 공개한 것은 리야드를 협박, 어쩌면 현금을 뜯기 위한 시도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카라는 이런 움직임들을 더 방어적이고, 더 야심적인 방향 양쪽 모두로 계속 보여왔다. 다시 말해 이런 대결적인 움직임들은 앙카라 혼자서 서방과의 관계를 초기화하고 워싱턴이 터키에게 적대적인 정책을 재고하게 강요할 수 있다는 믿음이 동기인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너무 중요해서 서방이 터키를 그냥 포기할 수는 없다는 신념을 가진 앙카라는 언젠가 미국이 물러서리라는 기대 하에 서방이 터키의 이해관계을 무시한 대가를 계속 키우고자 한다.
그리고 더 혼란스럽고 위협적인 세계에서, 앙카라는 또한 하드 파워에 대한 믿음도 키워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2018년 초, 워싱턴이 터키의 항의를 무시하고 북동부 시리아의 YPG 점령지의 방어를 도우려 하자 터키는 YPG가 점거하고 있는 아프린을 공격했다. 터키 관측자들은 이런 무력 행사로 터키를 무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평가했으며, 그해 말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에서의 철군을 발표했을 때 그들은 이를 지지했다. 이제 터키는 동지중해의 에너지 자원에도 전함을 보내 키프로스의 천연가스 탐사를 방해하고, 자기네 탐사를 진행함으로써 똑같은 태도를 보이고자 한다. 에르도안이 말했듯 "우리가 시리아의 테러리스트들에게 교훈을 준 것처럼, 우리는 바다의 도적떼에게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터키의 S-400 구매에 대해 터키를 제재하려는 워싱턴의 정책수립자들을 포함해 서방 정책수립자들에게 생긴 문제는 터키에 대한 지나치게 공격적인 대응은 미국이 근본적으로 터키에게 적대적이라는 터키의 믿음을 강화시키지만, 지나치게 약한 대응도 공격적인 반격이 성공한다는 믿음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도발적인 움직임은 가장 문제적인 정책 일부를 단기적으로 막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그런 움직임은 일어나고 있고, 동시에 앙카라가 느끼는 적대 행위와 고립감을 결과적으로 심화시키고 있다. 요약하면, 양 쪽 모두 화해를 추구할 이유가 많지만, 관계가 계속 대결적으로 흘러가리라고 걱정할 이유도 많다는 것이다.
NIcholas Danforth는 German Marshall Fund의 Senator Visiting Fellow이다.
© PlayXP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