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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이콘 소소한행복
작성일 2020-06-18 08:39:52 KST 조회 761
제목
우로부치가 쓴 라스트오리진 팬픽 3화

다시금 콜로시엄 개최일이 찾아왔다. 오늘의 참가인원은 10명. "아르카디아의 처녀들"이 총동원되었다. 대전 상대팀은 비공개. 회장에 들어설 때까지 어떤 적과 대치하게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대기실에 모인 우리들은 긴장된 안색으로 하나둘 서로의 얼굴을 뇌리에 새겨두었다. 오늘밤은 분명 격전이 되리라. 여기 있는 얼굴 중 몇명은 분명 대기실에 돌아오지 못한다. 어쩌면 그게 자기자신이 될 수도 있다.

총동원──즉 팀원의 소모가 도외시된다는 말이다. 운영진은 이번 전투 이후 D엔터테인먼트에게 "처녀들" 출장예정을 짜지 않았다. 우리를 전멸시킬지 모르는 강적이 출현하리라. 대전자가 감춰져있다는 사실이 예감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모두 알고 있겠지만, 오늘밤 사냥은 이전에 없던 거물에 도전하게 될 거다"

 

긴장이 역력한 "처녀들"에게 아탈란테가 늠름히 말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 없다. 밤이 어두울 수록 달은 찬란히 빛나는 법. 우리에겐 여신의 가호가 함께 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릎꿇고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기도를 올렸다. 물론 그리스의 영웅이라는 인격이 설정된 아탈란테 이외엔 아무도 여신을 믿지 않는다. 그 중엔 "아르테미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초교양조차 인스톨되지 않은 이도 있다.

하지만 우린 기도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바랄 수 없으니까. 인간을 사랑하며 인도한다 전해지는 신에게 바이오로이드의 기도는 닿지 않는다. 우리는 신의 피조물이 아니니까.

그러니 우리가 기도를 맡기는 건, 잊혀진 달의 여신이 아닌, 우리의 여왕 아탈란테의 말 그 자체다. 우리를 지키고 격려하며 인도하는 불패의 전사. 그녀의 말 한마디가 허구의 여신에게서 비롯한 거라 하여도, 우리가 믿고 떠받들만한 가치가 있다.

 

"함께 증명하자. 아르카디아의 영광을. 먼 미래 세계에도 영원히 빛날 등불로서!"

"명을 받듭니다. 우리의 여왕, 준족의 공주여"

 

아탈란테를 필두로 우리는 의연히 얼굴을 들고 콜로시엄에 들어선다. 우릴 맞아주는 건 땅을 울리는 거대한 함성. 그것을 더욱 고무시키듯 스피커에서 사회자가 소리친다.

 

"방송을 지켜보시는 전세계의 신사숙녀 여러분! 그리고 객석까지 찾아와주신 프리미엄 회원 여러분! 선혈의 궁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오늘은 D엔터테인먼트가 총력을 기울인 스페셜 컬라보레이션을 전해드립니다! 실로 강렬하고 처참한 꿈의 경연을 말이죠!"

 

흥분에 들뜬 객석의 열량을 재쳐두더라도 우리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대전자 입장 게이트는 굳게 닫힌 채, 열릴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바로 시합이 시작한다는양 사회차의 부추김을 뒤로 하고, 콜로시엄에 망연히 서있는 건 우리들 아르카디아의 처녀들 뿐이다.

 

"이건 대체..."

 

아탈란테가 말하려던 그 때, 머리 위를 흉조 같은 실루엣이 순식간에 통과한다. 제7세대 개량형 스트라이크 앙젠. 초음속. 위험할 정도의 저고도──

 

"엎드려!"

 

반사적으로 동료들에게 소리치고 몸을 낮춘다. 다음 순간 충격파가 전투장을 유린하고 폭격이라도 당한 양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방어장을 필쳐둔 객석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성대한 연출에 관람객들의 환성이 더욱 뜨거워진다.

곧바로 몸을 일으킨 우리들은 오리진더스트로 강화된 동체시력으로 뿌연 모래먼지 저편에 있는 적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폭탄처럼 투하된 한 명의 소녀. 낙하산도 없이 우아하게 콜로시엄에 안착하는 기동형 바이오로이드.

그리고 귀청 떨어질 듯 울리는 소닉붐의 잔향을 뒤로 하고 낭랑히 노래하는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다들 약속해주세요! 악에 굴하지 않겠다고요!"

 

그 순간, 전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도전자,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상대는 연전연승의 챔피언 '질주하는 아탈란테'가 이끄는 '아르카디아의 처녀들'입니다!

그럼! 피로 피를 씻는 향연의 끝에! 콜로시엄을 재패하는 이는 누가 될 것인가!"

 

"원진을 펼쳐라!"

 

기동형 바이오로이드 공략법에 따라 아탈란테가 지령을 내린다. 적은 자유자재로 공중을 날며 상대를 유린하는 히트 앤 어웨이를 구사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철벽의 방어진형으로 이를 영격, 눈 깜짝할 새에 카운터를 넣어 승리를 점칠 뿐이다.

그러나 콜로시엄에서 불패를 자랑한 아르카디아의 처녀들도, 영상부문의 컬라보레이션 매치는 처음이었다. 검투사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미지의 적은,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다.

 

"매~지~컬~ Ручной Противотанковый Гранатомёт~!"

 

모모의 러시어어 영창과 함께 귀여운 마법봉 끝에서 척탄이 사출된다. 로켓모터의 화염과 함께 닥쳐오는 탄체가 성형작렬탄이 아닌 파편유탄임을 깨달안 나는 전율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흩어져!"

 

아탈란테의 다급한 지령에 우리는 곧바로 반응한다. 그러나 첫 진형을 잘못 선택한 대가는 컸다. 개다가 우리의 평상시 훈련은 격투전이 대부분이라 폭발물을 상대하는 전술은 상정하지 않았다.

결국 미처 피하지 못한 세 처녀가 모모의 첫 제물이 되었다.

 

"오오오오오! 다음화 예고편에 나왔던 모모쨩의 새로운 무기가 한 발 먼저 콜로시엄에서 등장했습니다! 이게 바로 RPG마법봉! 세부까지 충실하게 재현한 레플리카는 덴세츠 프리미엄 온라인에서 지금부터 예약을 받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죠!"

"네놈... 단순한 멧돼지가 아니라... 마수인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적에게 경악하지만 겁을 먹을 아탈란테는 아니다.

 

"적은 하나다. 포위하여 움직임을 봉쇄해!"

 

그러나 그런 아탈란테의 용맹함을 비웃듯 이제와서 도전자 게이트가 문을 열었다.

 

"그럼 오늘의 스페셜 서프라이즈 제2탄! 궁지에 몰린 모모쨩이 걱정되는 여러분을 위해! 저희 경기장이 준비한 무장AGS의 원거리 조종권을 특별 가격으로 발행하겠습니다. 자택에서 원격콘솔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

"말도 안돼..."

 

사회자의 광고에 귀를 의심할 시간도 주지 않고, 셔터 저편에서 폴른형 AGS가 서로 앞다투듯 콜로시엄에 밀어닥쳤다.

 

"완판! 조종권이 1초만에 매진되었습니다! 그럼 오늘밤 마법소녀를 구할 매직젠틀맨은 누가 될까요!?"

 

10기... 20기... 차례차례 나타나는 폴른 군단에 우리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 오늘밤 시합은 시청자 참가형... 매지컬 모모 홀로 팀전 리그에 참가한 건, 이걸 위함이었던 것이다.

 

"모두들 고마워! 모모는 절대 지지 않을 거야!"

 

천진난만한 미소로 폴른 무리를 쓰다듬는 모모. 관객석의 흥분은 절정을 맞아 모모를 외치는 목소리로 하나가 되었다.

역시 시합 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디렉터는 이 시합에서 아르카디아 처녀들을 산제물로 만들 셈이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다음 시즌을 위한 프로모션으로서. 그것이 영상부문 검투사부문을 총괄하는 D엔터테인먼트의 총의인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절망에 처녀들 중 하나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만다. 나는 재빨리 그녀의 팔을 잡고 어깨를 받쳐준다. 하지만 나또한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더이상 이건 콜로시엄의 투쟁이 아니라, 우리를 분쇄하고 갈아버리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였다. 아탈란테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린 것은.

 

"하하하! 실로 굉장한 난적이로군! 상상을 초월한 역경! 신들의 기대가! 흥분이! 지금 이 얼마나 고양되었는가!"

 

동료들 모두가 창백해졌건만, 그녀는 마치 축제의 환성을 들은 어린아이처럼 환색을 표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의 목숨은 하나의 의미를 얻었다! 자 영광을 쟁취하자! 이 싸움은 분명 영원히 회자될 것이야!"

 

어찌 부정할 수 있으랴. 여왕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아르카디아의 처녀들은 공포를 벗어던졌다.

그녀는 허구. 창조자의 농간으로 육체를 부여받은 허구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살해당하기 위해 태어난 우리들에게, 그건 선망하기에 충분하다. 죽음을 받아들이고, 투쟁의 의미를 소리높여 외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일까.

우리가 믿고 우러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것은 전장을 질주하는 준족의 용사뿐이다.

 

"전원, 아탈란테의 엄호에 들어간다! AGS가 여왕께 다가가지 못하게 해라!"

 

나는 동료들에게 그렇게 외치고, 제일 앞장서 폴른 무리에게 뛰어둘었다. 포효하는 처녀들이 그 뒤를 따른다.

이전에 우리는 군용AGS 3기와 변칙시합을 벌인 적이 있다. 그때엔 5명의 동료가 희생되었지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가 꼬나쥔 검과 창은 군용기의 장갑을 뚫기엔 너무나 빈약했고, 얇은 천을 둘렀을 뿐인 나체는 30mm 중기관포가 스치는 것만으로도 간단히 터져버렸다.

그 사투에서 살아남은 처녀라면, 강철 살육병기의 위협을 익히 알고 있다. 30기를 넘는 대군에게 돌격하는 건 자살행위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유일한 활로가 있다면, 전황을 난전상태로 끌고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적을 소모하게 만드는 것뿐이다.

그리고, 무모한 돌격은 의도치 않게 의미를 가졌다. 이전에 우리를 고전케 한 AI제어 AGS와는 달리, 초보나 마찬가지인 시청자들이 원격조종하는 폴른은 전혀 연계를 취하지 못했고, 오히려 수가 많은 게 걸림돌이 되어 서로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폴른 대군은 모모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도 되었다. 아무도 모모는 굿즈 판촉을 위해 매지컬RPG를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지시받았던 것일테다. 그러나 큰 돈을 들여 참가권은 획득한 시청자들의 폴른을 실수로 맞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유탄이니 더더욱.

결국, 모모는 폴른 집단에 뛰어든 아르카디아의 처녀들을 공격하지 못했고, 오히려 아탈란테가 일방적으로 투창으로 모모를 공격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왕이 공격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른 처녀들은 연계하여 폴른을 교란시켰다.

나를 포함한 처녀들이 검 외에 예비무기로서 채찍을 휴대하고 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어차피 검으로는 AGS에게 유효타를 줄 수 없다. 오히려 2족보행 형태인 폴른의 다리에 채찍을 둘러 넘어뜨리는 전법은, 인내력이 없는 조종자들을 짜증나게 해 판단력을 흐리게 하였다.

마구 날아드는 탄환 속에서 한 명 또 한 명 초녀들이 상처입고 쓰러져간다. 그러나 그보다 배는 많은 폴른이 서로를 쏴 파괴되어 갔다. 모모의 활약을 기대하던 관객도 점차 여유를 보내기 시작한다. 아마 이건 운영진도 예상치 못한 것이리라.

 

"지금 막 매직젠틀맨 제2탄의 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조종권을 희망하시는 분은──매진! 매진되었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폴른이 게이트를 넘어 돌진해온다. 그 외견으로도 알아보기 쉬운 무장변경에 나는 전율하였다.

화염방사기──아마도 30mm포가 다루기 어렵다며 시청자들이 클레임을 건 것이리라. 새로운 폴른의 전방에 장착된 무기는, 아군 AGS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바이오로이드에게만 치명적 피해를 줄 수 있는 흉기였다.

정체되었던 전황은 단숨에 타개되었다. 폴른 증원군이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쏴대는 네이팜은 콜로시엄을 작열지옥으로 바꾸어, 지금까지 아슬아슬한 전투를 해오던 처녀들을 단숨에 쓸어버렸다.

처녀 하나가 불꽃에 휩싸인 상태에서도 포효하며 화염을 내뿜는 폴른 하나에게 달려들어, 장갑 틈새 사이로 검을 찔러넣었다.

 

"아르카디아를... 위하여..."

 

화염에 타들어간 폐로 마지막 한 줌의 숨결로, 포효하고, 숨을 거두었다.

비참한 광경에 객석에서 갈채와 환성이 터져나온다. 저들에겐 무의미한 추태로 비춰졌으리라. 그러나 나는──한줌의 숱으로 변한 동료의 주검 옆에서, 폴론의 총대에서 떨어져나간 화염방사기 유닛이 굴러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사방에서 닥쳐오는 화염의 지옥을 가까스로 회피하며, 나는 그녀가 마지막에 쟁취한 성과에 뛰어들었다. 방아쇠의 위치화 연료의 잔량을 곧바로 확인. 할 수 있다... 어쩌면 기사회생의 한 수가 될지 모른다. 마지막 반격의 찬스가.

폴른 군단이 처녀들을 소탕하고 있을 때, 아탈란테와 모모는 일대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나 모모는 아탈란테가 던지는 창에 견제당하여 내가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이 화염방사기로 옆에서 급습한다면, 그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으리라.

주위의 폴른의 총구가 일제히 나를 향한다. 분명 이 다음에 나는 횃불처럼 타올라 스러질 것이다. 허나 한 수 앞설 수 있다면──승리를 아탈란테께 바칠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치 않고 화염방사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화염이 그녀에게 닿기 전에 모모가 먼저 이쪽을 돌아보고 경악하고 있었다.

기동형이 자랑하는 가벼운 비상으로 내 화염방사를 회피하는 모모. 신이시여...

그녀는 아탈란테에게 집중하고 있었을 텐데...

그리고 이렇게 당황해할 수 있을 틈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를 태워죽이려 했던 폴른은?

돌아보니, 나를 노리던 폴른을 발로 차는 아탈란테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신위와 같은 창놀림으로 센서 유닛만을 파괴당한 폴른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화염을 부려대며 사라져간다.

 

"아탈란테!"

 

나도 모르게 외치자, 여왕은 비취색 눈동자로 험악하게 나나를 노려보았고... 그 시선만으로 내게 모든 것을 말하고 있었다. 이건 영광스런 전투라고. 동료가 자신을 희생하여 뒤를 치는 건, 그녀가 바라는 승리가 아니라고.

그러나 한편 방해가 되는 폴른이 없어진 나와 아탈란테는 모모에게 절호의 표적이 되었다. 그녀는 마법봉을 휘두르며 다시금 공포의 주문을 영창한다.

 

"Ручной Противотанковый..."

"맘대론 안될 거다!"

 

아탈란테가 포효하며 왼팔의 방패를 던졌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는 방패는 직격당하면 바이오로이드의 강화골격이라 하더라도 분쇄할만한 위력을 갖는다. 그걸 깨달은 모모는 몸을 둘려 회피하였고──그 순간 아탈란테가 노리던 빈틈이 생겼다.

유명한 신화 속 준족의 처녀. 그 일화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질주로 아탈란테는 모모에게 달려들었다. 그 때 나는 여왕의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에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는 것도.

모모의 무기가 저 비열한 마법봉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탈란테에겐 적이 "마수 멧돼지"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의 영웅으로서 칼리돈의 사냥에 임한다는 좁은 세계 속에서만 살아온 그녀는──영상 작품 매지컬☆모모를 본 적이 없다. '사무라이 마법소녀'란 이명을 알 리가 없다!

 

"아탈란테, 안돼!"

 

내가 그렇게 외쳤을 땐 이미 모모의 티타늄 합급 일본도가 칼집에서 뽑힌 뒤였다.

아탈란테가 보기엔, 한 번 부러졌던 마수 멧돼지의 어금니가 전혀 다른 형태로 새로 돋아난 것과 같을 것이다. 왼손에 방패가 있다면 막았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미 견제를 위해 던진 후였다.

번뜩이는 칼날은 눈 깜짝할 찰나──그러나 내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였다. 서슬이 퍼런 칼날의 유성군이 아탈란테를 꿰뚫는다. 심장. 간. 췌장. 횡격막. 무엇하나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압도적 살의의 연속찌르기.

피를 토하는 아탈란테. 그녀의 눈엔 더이상 모모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적이 아닌, 그 너머를,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내겐 알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시공을 초월한 저편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을 마지막까지 속박하던 지중해 신화의 환영을.

그리고 나의 여왕은, 피에 젖은 입술로 웃음을 떠뜨렸다.

 

"──영광을!"

 

질주한 끝에 결승선을 넘은 환희를 담아, 아탈란테는 외쳤다.

 

"아르카디아의 영광을 이곳에! 나는... 질주... 하리..."

 

"종료!!! 승자는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 팀리더를 쓰러뜨림으로써 시합 종료! 시합이 끝났습니다!"

 

관객석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매지컬 모모의 승리에 도취한 광란의 함성.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음압에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졌다.

 

헛소리──

 

영광은 얼어죽을. 당신은 마지막까지 객석을 보지 못했는가?

저기에 늘어진 비웃음, 호기심, 욕정에 괴인 눈빛을, 단 한 번이라도 보려하지 않았나?

이 절망에 찬 세계를 등지고, 찬란하게 빛나는 행복한 신화의 환상에 빠진 채, 당신은 저세상으로 떠나버렸다...

나를 홀로 내버려두고!

 

뇌내에서 시합규칙을 담당하는 명령회로가 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끝났다. 아탈란테의 죽음으로 승패는 결정났다. 곧바로 전의를 가라앉히고 귀환할 것.

──그러나 내 몸은 멈추지 않는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검디 검은 감정이 강제명령에 덧칠된다.

나는 달렸다. 아탈란테의 피로 젖은 칼날을 꼬나진 채로 서있는 모모를 향해. 물론, 내 다리는 준족의 여왕에겐 미치지 못한다. 모모는 시합종료 커맨드와 모순되는 내 행동애 당황하였지만, 침착하게 매지컬RPG의 총구를 내게 향할 만큼의 충분한 시간은 있었다.

탄두가 사출된다. 피하기엔 틀렸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그저 맹렬히 끓어오르는 충동만이 있을뿐. 짐승처럼 포효하며 나는 오른손의 채찍을 휘두른다.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속도와 위력과 정확도로 채찍 끝이 모모가 쏜 탄두에 명중하였고, 탄두의 진로를 반전시켰다.

팽이처럼 선회하며 모모의 발밑에 떨어진 유탄이 폭발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채, 넝마조각처럼 튕겨나가는 모모.

그러나 죽진 않았다. 내 안의 짐승도 진정하지 않는다.

쓰러진 모모에게 다시 채찍을 휘둘러, 그 가녀린 목덜미를 휘감아 질질 끌고 온다.

실신한 적의 멱살을 잡아 씹어먹을 듯이 자신의 코앞으로 끌어들였고, 그제서야 나는 모모의 얼굴을 직시했다.

가련하고 청초하며 때묻지 않은 소녀를 구현화한 존재. 그 뺨이 피와 그을음으로 더럽혀져 있는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코스터 씨가 보여준 홀로그램 영상을 떠올린다. 그 때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배가 찢어져도, 마치 고통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주민이라도 된 양. 그리고 눈을 뜬 지금도 모모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흉흉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압도적인 위화감에.

있을 리 없는 정적에.

 

관객이 너무나 고요하다. 모모를 지키기 위해 몰려들었던 원격조종 폴른이 모두 정지해있다. 마치 질량을 가진듯한 시선의 압박. 폴른의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를 응시하는 시청자들의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말았다.

그것은 기대.

콜로시엄의, 그리고 전세계의 모든이가 지금 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다.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가 무명의 검투사에게 목졸려 죽는다. 그 무참하기 짝이 없는 최후의 광경을.

모든 것을 이해한 나를 향해, 모모의 가녀리고 순진무구한 미소가, 새파랗게 변한 입술이, 조그맣게 말했다.

 

──제발 죽여줘.

 

그리고 나는 망가졌다.

아니 시합 종료 때 정지 커맨드를 무시해버린 시점에 이미 나란 인형은 고장을 일으킨 것이라라.

질식하기 직전의 모모에게서 손을 놓고 가장 가까이 있던 폴른을 때리려 하였다.

발을 내딛을 수 있었던 건 겨우 세 발짝. 그리고 두 번째 강제정지 커맨드가 내 뇌간을 직격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거스를 수 없이 내 의식이 어둠에 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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