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소소한행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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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6-18 08:42:13 KST | 조회 | 872 |
제목 |
우로부치가 쓴 라스트오리진 팬픽 4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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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인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눈을 떴다.
지면도 없고 상하좌우 감각도 애매한 장소. 개초에 나 자신의 육체도 느껴지지 않는다.
"깼어?"
목소리가 들렸고, 주위에 누가 있음을 깨달았다. 모습도 보이지 않건만 마치 손에 잡힐듯한 가까운 거리에. 목소리는 두 말 할 것 없이 마법소녀 매지컬 모모의 것이었다.
그제서야 겨우 나는 이 불가사의한 공간인식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코어링크?"
"맞아. 지금 나와 당신은 이어져있어. 다행이야. 한 번 더 얘기를 나누고 싶었거든"
코어링크.
다수의 바이오로이드의 사고회로를 접속시켜 의식을 공유케 하는 기술. 하지만 병렬처리의 효과를 완전히 발휘하기 위해선 같은 모델끼리 링크시킬 필요가 있다. 나와 모모처럼 등급에서부터 차이가 심한 개체끼리 링크시켜봤자 효과는 미미하다.
"난... 당신의 보조회로에 흡수당한 건가? 그래서 신체 감각이 없는 건가?"
"아냐. 내가 당신에게 연결된 거야.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조치지만"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모모 같은 고급 모델을 나따위에게 증설시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애초에──
"그렇다면 어찌하여 내게 신체 감각이 없는 거지?"
모모는 말하기 어렵다는듯 웅얼거리고는, 한 마디씩 단어를 선별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멘탈코어는 큰 손상을 입었어. 첫 번째 강제 커맨드에 거슬렀을 때와... 그리고 두 번째 커맨드가 치명상이 됐거든"
"......"
"그래서 내가 당신의 자율신경을 대신하기 위해서 이렇게 링크를 구축하고 있는 거야. 지금 당신의 육체엔 고농도 오리진더스트가 투여되어 승급되는 중이거든. 그 동안 수면을 취하며 부하를 견뎌야 하니까 내가 나선 거지"
모모의 설명은 더욱 나를 혼란케 할 뿐이었다.
"내가 승급? 어째서지?"
"당신이 콜로시엄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야. 프로듀서가 당신을 다음 시즌의 빌런으로 발탁하기로 했어. 매지컬 모모의 숙적. 뽀끄루 대마왕 역할로"
"그딴 걸 내가 할 수 있을 리..."
거기까지 말하고서야 나는 모모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한 진실을 이해했다.
"...그렇군. 하지 못할 역할을 시키기 위해 당신이 있는 건가"
"...그래"
이 이상 감출 수 없다고 판단한 걸까. 모모는 진실을 이야기할 각오를 다졌다.
"당신의 멘탈코어는 새로운 형태에 맞추어 초기화될 거야. 그렇지 않으면 명령위반으로 망가진 회로를 재생시킬 수 없대"
"그랬군..."
냉혹한 선고지만, 마치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난 죽는 건가... 아니 정확히는 이미 죽은 건가"
두 번이나 명령위반을 일으켜 자율신경계가 박살나버린 나는 스스로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 나 대신 지금 모모의 코어링크가 심폐기관을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사고회로를 유지하고 있는 나란 존재는, 자신의 육체에서 쫓겨난... 유령이나 다름 없다.
분명 내 육체만은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멘탈코어는 완전히 새로이 초기화되어, 남은 찌꺼기나 마찬가지인 "나"라는 자아는 흔적도 없이 소실될 테지. 유령이 새로이 태어난 육체에게서 "퇴치"당하는 것이다.
"...미안해"
달리 무슨 말을 할지 모르는 걸까, 모모는 신음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괜찮다며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콜로시엄에서 서로를 죽이려 했던 적에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왜인지 그렇게 느꼈다.
죽음.
지금의 내 자아도, 기억도.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 후에 남겨진 육체엔 다른 이가 눌러앉게 된다.
옛날엔 이 순간만을 기다렸었도 고통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탈출구라 여겨졌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도망치고 싶었던 고통의 나날을 무엇 하나 떠올릴 수 없었다.
대신 떠오르는 것은... 아탈란테.
그 아름답고 늠름한 자태. 눈빛.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를 인도하는 고귀한 미소. 짦은 생애 속에서 내가 모을 수 있었던 자그마한 보물들.
그래──영광은, 분명 그곳에 있었다. 우리 속에 아탈란테의 그림자와 함께.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결코 빼앗을 수 없는 빛이 되어.
그러나 그것도 나란 자아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 상실감에 나는 울었다.
아직 육체를 갖고 있을 무렵에도 한 번도 운 적이 없건만.
목소리도, 눈물도 낼 수 없는 가상공간에서의 오열. 모모는 그것을 달래지도 경멸하지도 않고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옛날에 누가 말한 적이 있어. 모든 것은 비 속의 눈물처럼 사라진다고. 분명 우리 같은 '것'을 위해 존재하는 말이 아닐까"
"──맞는 말이다. 운다는 건, 참 좋군. 씻겨나가는 기분이 들어"
한동안 울고, 의외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가볍고 투명해진 감각이다.
그렇지만 모모는 더욱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주저하는 모양이다. 나와 대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갈피를 못잡고 주저하는 모모의 침묵은 조금 거북하였다.
결국 나와 그녀는 '그것'을 제외하곤 다른 것을 선택할 화제가 없는 것이다. 너무 곤란케 하는 것도 가여웠기에 스스로 그것을 꺼냈다.
"왜, 아탈란테를 죽인 거지?"
더할 나위 없는 잔혹한 질문이건만, 모모는 어째선지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모두의 꿈이었으니까"
모두──너무나 거대하고 적절한 주어였다. 그 전투를 지켜본 모두. 우리의 용기를 비웃고 우리의 고통으로 자위하던 모두. 그들을 위해 나를, 모모를, 아탈란테를 셜계하여 세상에 던져놓은 모두.
"꿈은... 이뤄져야만 하니까. 난 그걸 위해 태어났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지뢰 파편에 복부가 패여도, 내 채찍에 목이 졸려도. 그 광경을 기대하며 꿈꾸는 이들을 위해 웃고, 그 소원을 이룰 뿐.
"...미안하군. 하찮은 질문이었다"
"아냐, 고마워. 나도 이렇게 대화해서 겨우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는 걸"
"그래. 대화해서 다행이군. 하지만..."
나와 모모의 만남은 한순간의 비누거품 같은 것. 다음에 깨어나는 나는, 대마왕인가 뭔가로 개조당하여 분명 모모를 상처입히고 욕하며 소중한 것을 빼앗겠지. 그녀를 증오하며 때로는 죽이고 죽임당할 것이다.
"뽀끄루 대마왕...이라 했던가? 다음에 태어날 나도 또 당신에게 심한 짓을 하겠지"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란 보장이 없는 걸"
늘 그렇지만 말야. 모모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콜로시엄에서의 신체파손에 대한 재생비용의 심의가 통과될지 어떨지 알 수 없어. 불발된다면 다음 시즌의 '모모'는 내가 아니라 다음 기체가 기용될 거라 봐"
"그런가"
나도 모모도 같은 D엔터테인먼트의 바이오로이드인 이상, 그 운명에 큰 차이는 없으리라.
인간들은 향락의 꿈을 꾼다. 우리는 싸움을 강요당하고 버림받으며 다시 싸우기 위해 태어난다. 이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금 이렇게 내가 모모의 본심을 알 수 있는 기회는 두 번다시 오지 않겠지.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언젠가, 아무도 꿈꾸지 않게 된다면..."
깊이 생각치도 않고, 난 그저 떠오르는대로 말했다.
"우리에게 꿈을 강요하는 인간들이, 한 명도 없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그것이 너무나 바보같은 망상임을 깨닫고, 나는 도중에 말을 멈추었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누가 우리를 배양조에서 되살려준단 말인가.
인간들의 일그러진 꿈 속에서밖에 존재할 수 없는 우리에게, 누가 다시 생명을, 인생을 결정할 기회를 준단 말인가.
하지만 모모는 미소지었고──모든 희망을 이루는 마법소녀의 미소로, 내가 미처 매듭짓지 못한 말을 완성시켜 주었다.
"그 때엔... 우린 분명 친구가 될 수 있겠지?"
나는 끄덕였다.
어찌할 도리 없이 허무하고 이뤄질 리 만무한 약속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모모의 바람은 나를 편안하게 치유시켜 주었다.
"웬지, 지쳤군... 잠깐, 잘게"
"응, 잘 자. 좋은 꿈 꾸길 바라"
모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안식에 몸을 맡긴다.
그건 차갑고 어둔 장소지만, 어째선지 불쾌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멸망 전의 어떤 기억. 아르카디아의 처녀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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