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ScrapGian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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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12-18 03:10:41 KST | 조회 | 758 |
제목 |
XP 판타지 월드 단편 소설 ~ 사막의 유적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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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시안 대공국의 어느 곳.
아직은 해가 뜨기 조금 이른 시각인 새벽, 무수히 많은 별빛 아래인 사막 한가운데 두 남자와 짐을 짊어진 낙타 한마리가 걷고 있다.
한참을 걷다 앞에 선 사내가 멈춰섰다. 그리고는 품 속에서 너덜너덜한 양피지를 꺼내 희미한 등불에 비추어 한참을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중얼중얼하며 잠시 무언가 계산하는 듯 싶더니 다시 걷기 시작했다. 뒤따르던 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바트비, 제대로 가고 있는 것 맞아요? 벌써 사흘 째 걷고 있다구요. 이틀이면 도착할 거랬잖아요."
앞서가던 바트비가 뒤로 홱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젊은 놈이 벌써 지친게냐? 사막에서 하루 이틀 정돈 오차로도 안치는 벱이여."
"지친 게 아니고, 불안해서 그러죠. 이정표 하나 없는 곳인데..."
앳된 느낌이 아직 남아있는 청년이 불만이 어린 얼굴로 바트비를 똑바로 바라봤다. 평소 바트비가 자랑스러워 하던 검은 콧수염이 모래먼지로 뽀얗게 되어 있었다. 청년은 조금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투덜거리고 싶었다.
"게다가 이런 사막에 지도가 무슨 소용이람."
낙타의 등에서 작은 천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결국 한마디 더 붙이고 말았다. 바트비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이봐, 아민. 이건 평범한 지도가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야 알겠느냐? 이건 유적과 우리 위치를 바로 보여주는 신묘한 지도라고!"
아민은 주머니에서 말린 대추야자를 꺼내 입에 하나 물고는 우물거리고 있었다. 바트비가 자기도 하나 달라고 손짓했다. 아민이 바트비에게 주머니 채로 건넨 뒤 씨를 퉤 하고 뱉었다.
"아무래도 불량품 아닙니까? 방향만 나타나고 거리는 안보인다면서요."
"아니야. 거의 다 온 것 같아."
"근거는요?"
"느낌이 그래."
그러면 그렇지. 하고는 아민이 한숨을 푹 내쉰다. 어차피 저 양피지가 못쓸 물건이라면 이제 와서 돌아가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부지런히 바트비의 등을 좆는 수 밖에.
애초에 저 허풍선 영감의 말에 혹한 내가 머저리다, 하고 생각을 그만두려 했지만 아무래도 억울한 기분이 들어 또 한마디 더진다.
"진짜 거기 보물이 있으면 1할은 제꺼인게 맞지요?"
바트비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걷는다. 아민은 속으로 '저 영감탱이가 이제와서 발뺌하려 드나' 싶어서 바트비를 재차 불렀다. 그러자 바트비가 입을 열었다.
"3할."
"예?"
"3할 준다고, 자식아."
아민은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잠시 보니 바트비의 어깨 저 너머로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는 듯 싶다. 바트비가 몸을 홱 돌리고는 아민을 보고 말했다.
"다 왔어. 바로 저기 보이지? 내가 말했던 고대 사원이라고!"
고개를 돌린 바트비의 얼굴엔 득의양양한 웃음이 가득했고, 그 얼굴을 본 아민은 좌우로 쫙 벌려진 바트비의 먼지앉은 콧수염이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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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저 멀리 작게 보이던 하얀 물체는 가까워질 수록 점점 커지더니 거의 작은 요새만큼이나 커졌다. 문짝도 어찌나 큰지 수도 다르고시아나의 명물인 거대한 성문 만큼 컸다. 모래에 파묻힌 아래부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걸 감안하면 다르고시아나의 성문보다도 더 큰 건지 모를 일이다. 아민은 넋이 나간채 바라보았다. 무지하게 큰 문은 세월과 모래바람에 칠이 다 벗겨져 있었지만 여전히 튼튼해 보였고 청동으로 보강된 문고리 옆에는 황소 같은 것이 양각되어 있었다. 문짝 양 옆 벽에도 황소 조각이 있었고 벽은 대리석인지 뭔지 상아빛 석재로 빈틈없이 쌓아올려져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아민의 어깨를 바트비가 툭 쳤다.
"어떠냐, 거짓말이 아니지? 그러게 사람을 못믿고 말이야, 자식이."
"헤헤. 죄송합니다요. 바트비 아저씨."
"바트비 어르신이라고 불러. 에헴."
"예이, 어르신. 아니 근데 어르신은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아내셨답니까?"
"내가 전에 대추야자 행상할 때 말이다."
이야기 하다 말고 의기양양하게 물주머니를 꺼내 물을 마시던 바트비가 사레라도 들린건지 몇번 기침을 해대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어흠. 그 때 이 어르신이 대추야자를 싣고 우리 왈라브(같이 온 낙타)와 함께 중앙사막을 누비고 다니지 않았겠느냐. 콜록. 콜록!"
"그랬습죠."
"어느 한 날은 다르고시아로 가는 상단이 있어 말동무도 할 겸 동행하게 되었거든? 그런데 재수없게도 '모래바람 도적단'의 습격을 받았다 이거야."
"허어. 그 잔인하기 그지 없는 놈들 말이에요?"
"그렇지."
모래바람단은 저 몇년인가 한참 중앙사막에서 악명을 떨치던 사막 도적 무리였다.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사막의 길 근처 모래언덕 사이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상인들을 급습하는 수법으로 유명했는데 어찌나 신출귀몰한지 '모래바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고 그 이름처럼 토벌군이 출병했다 본거지를 찾지 못해 번번이 헛수고만 하곤 했다. 결국 다고시안 대공이 진노하여 책임자가 교체되는 끝에 중앙사막을 이잡듯이 뒤져 본거지를 찾아 소탕하고 수괴를 붙잡아 교수형에 처했다. 아민도 그때 처형장에 구경을 갔을 정도로 다고시안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름이었다.
소문에는 그 잔당이 살아남아 사막 어딘가에서 두령의 복수를 노리고 있다고들 하지만 실체를 본 사람도 없고 아직은 그냥 뜬소문에 불과했다.
"그때 이 어르신이 상단의 호위병이 싸우는 동안 짐을 다 버리고 이 왈라브에 타고서 몸을 건사한 것 아니냐."
"...혼자만요?"
"...맞서 싸우다가. 패색이 짙어지니 후퇴한 것이니라."
아민의 눈에 그득하던 존경심이 한순간 흔들렸다.
"아무튼. 그때 급하게 도망... 후퇴하다 보니 방향도 잃어버리고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지. 한 며칠을 그래 헤매다 보니 다다른 곳이 이 유적이었다, 이 말씀이야."
"헤에."
"그래서 이 싸나이 바트비 어르신께서 용감하게 들어가 봤더니, 안에 깨끗한 물이 나오는 분수대도 있고 방마다 온갖 금은보화로 가득하더라, 이 말씀이야. 이 지도도 그때 챙겨온 것이지."
아민의 반짝이는 눈이 다시금 존경심으로 흘러넘치고 있었다. 자기도 어서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말했다.
"아저씨! 아니, 어르신! 빨리 들어가죠!"
벅찬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보니 문이 절반은 모래에 파묻혀 있다. 아민은 다시 바트비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어떻게 들어가죠?"
바트민이 미소 띤 얼굴로 대답한다.
"삽, 가져왔지?"
"엑, 어르신. 이 많은 모래를 삽으로요?"
"그럼, 내가 정령이라도 불러 낼 줄 알았느냐?"
아민은 당혹감을 느꼈지만, 아직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치만... 삽도 한 자루 밖에 없는 뎁쇼. 헤헤..."
"이 녀석 보게. 이 가는 모래밭에 삽은 하나만 있으면 됐지, 누가 밭이라도 일구라고 하더냐?"
아민의 얼굴에서 결국 웃음이 사라졌다. 아민은 씩 웃는 바트비의 얼굴에서 코 아래 매달린 볼품없는 쥐수염을 전부 쥐어 뜯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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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삽으로 모래를 파다 보니 어느 덧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해는 떠오르자 마자 부지런히 모래를 달구기 시작했고 아민의 땀으로 축 젖은 어깨도 뜨겁게 달아 올랐다. 입으로는 뭔가 계속 중얼중얼 대고 있었지만-대부분 쌍시옷으로 시작되는 입모양 이지만 목청이 울리지 않으니 일단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아민은 묵묵히 모래를 퍼내고 있는 셈이다.
바트비는 어느새 염소털로 짠 텐트를 펴고 그 아래 너저분한 양탄자를 깔고 앉아서는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태우고 있었다. 곧 부자가 될 생각으로 가득차서 벌써부터 미래 계획을 세우느라 머릿속이 분주하다.
'우선 낙타를 한 100두 정도 사서 대상단을 꾸리는 거야. 그리고 흰 벽돌에 푸른 유리로 장식한 저택을 짓고, 다르고시아나에서 제일 예쁜 여자를 찾아 새장가를 들어야지. 아니, 마누라를 꼭 하나만 두라는 법이 있나? 젊고 예쁜 여자들을 한 열명쯤 들여서...'
"아저씨! 대충 다 치운 거 같은데요!"
바트비가 행복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중 눈치없는 아민이 부른다. 대상단의 단주이자 하렘이 포함된 대저택의 주인 어른에서 꾀죄죄한 옷을 걸친 아저씨로 돌아와 버린 바트비는 순간 기분이 나빴지만,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 두 모금 정도 밖에 빨지 못한 곰방대의 담배는 어느새 하얀 재가 되어 있었고, 하릴없이 다 타버린 재는 경박하게 파닥이는 손짓에 모래 위로 흩뿌려 버려졌다.
바트비가 보아하니 시킨 일은 잘 해놓은 모양새다. 거대한 문의 바닥이 보일 만큼 모래를 치워놓았고, 문 앞으로는 이것저것 조각된 돌바닥이 보일 만큼 말끔했다. 아민은 힘들다는 듯 숨을 색색이고 있었지만, 기껏 2~3 큐빗(대략 1~1.5m) 남짓 쌓인 모래를 치운 것 뿐이었다. 젊은 놈이 엄살이 심하다, 싶다.
바트비는 짐짓 점잔을 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에헴! 들어가자꾸나!"
"모래는 다 치웠습니다만, 이 커다란 문이 열리기는 한답니까?
칭찬 한 마디 없는 바트비가 야속했다. 심통이 나서 괜히 한마디를 더한다.
바트비는 아민이 투덜거리는 말에 대꾸하는 대신 흣, 하고 콧방귀를 흘리고는 문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집채만한 문짝에 양손을 올리고선 힘주어 밀었다. 비루하게 마른 팔뚝에 힘줄이 툭 불거진다.
그러자 등골을 저릿하게 만드는 끼이익하는 굉음과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민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한참을 밀고나서 문이 적당히 열렸다 싶었을 때 바트비가 문에서 손을 뗀다. 거대한 문을 힘껏 밀었던 만큼 바트비도 숨이 살짝 거칠어 졌다. 고개를 살짝 떨구고 숨을 잠시 몰아쉬었다. 호흡이 진정되자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무엇하느냐? 짐 챙겨서 들어갈 준비를 하지 않고?"
아민의 입은 여전히 쩍 벌어진 채 모래먼지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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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내부는 열기로 이글거리는 바깥과 달리 꽤나 서늘했다. 아민이 높이 치켜든 송진 횃불이 아니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컴컴했고 어째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두 사내는 꽤나 넓직한 복도를 따라 계속 걸어 들어갔다. 아민이 횃불을 휘휘 저어 주변을 둘러보니 벽에는 어떤 모양인지 부조(浮彫)로 잔뜩 장식되어 있지만, 전부 짓뭉개져 원 모습을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복도를 따라 거대한 사람 조각상 같은 것이 좌우로 벌려 서 있어 압도적인 느낌을 주었다. 조각상들은 제각기 병장기를 들고 서 있었는데 다만 조각상들의 머리가 모조리 잘려나가 있는 것이 묘하게 섬뜩했다.
뭔가 불길한 느낌 탓인지, 서늘한 공기 탓인지 아민은 등줄기가 오싹하고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아민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어르신, 여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요."
바트비는 걸음을 늦추지 않고 계속 걸으며 말했다.
"뭐가 이놈아. 무슨 느낌 타령이냐."
"들어와서는 안되는 장소 같아요. 온 몸이 떨리는 기분이 느껴져요!"
바트비는 한 손으로 콧구멍을 막고 패앵 소리를 내며 콧물을 풀었다.
"그거야 여기가 서늘한 곳이니 그런게지! 이상한 소리 말고 어서 가자."
"어르신! 좀 서늘하다고 이렇게 몸이 떨리는 건 처음이라구요!"
바트비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야, 이놈아! 그건 네가 방금 전 까지 땀을 뻘뻘 흘리다 시원한 곳에 들어왔으니 그런 것이 아니냐! 허우대는 멀쩡한 것이 뭐가 이리도 한심스레 구는거야?"
아민이 듣고 보니 바트비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온 몸이 땀으로 담뿍 젖은 채로 시원한 곳에 들어왔으니 몸이 떨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저 모가지가 달아난 석상들 때문에 괜시리 무서웠던 것 같다. 분명 그거다. 저 망할 조각상들.
잠시 후 넓은 홀이 나타났다. 높다란 천장은 둥그런 돔 지붕으로 덮여있고 지붕 아래로 커다란 창문이 나 있어 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어두침침한 공간을 관통하는 모습이 장관이다. 빛줄기는 치밀하게 가공된 사암 벽돌들에 부딪히고 깨어져 홀 전체를 밝혀주고 있었다.
홀의 중앙엔 여전히 물을 뿜어대고 있는 커다란 분수대가 있었다. 그걸 본 아민이 한달음에 달려가 물을 떠 마셨다. 물은 깨끗하고 아주 차가웠다. 마른 목에 찬물을 머리째 처박고서 마시고 있을 때 바트비는 분수대 끝에 걸터앉아 허리춤에서 곰방대를 뽑아들고 담배를 채워넣고 있었다.
"푸핫-!"
상쾌하게 숨을 내뿜는 소리에 바트비가 낄낄댄다.
"나도 전에 여기 왔을 때 너랑 똑같은 짓을 했었지. 어떠냐, 물이 참 달지 않으냐?"
"아이구, 어르신. 이렇게 달큰한 물은 처음 마셔봅니다."
이제사 기분이 다시 좋아진 아민이 바트비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바트비는 반달모양으로 웃는 눈으로 천천히 끽연 중이었다. 아민은 담배를 태워본 일이 없었지만 지금 바트비가 어떤 기분으로 곰방대를 즐기는 것인가는 상상할 수 있었다.
아민이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어르신. 대체 어떻게 그리도 힘이 센가요? 집채만한 문을 밀어서 여시다니. 겉으로 봐선 물 한모금 못먹은 사막 거머리 같이 생기셨는데."
"이놈 보게, 어른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네깟 녀석이 이 어르신의 영웅적 기상을 알아볼 리 있겠느냐?"
벌컥 꾸지람에 아민이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멋적은 표정으로 주변을 홰홰 둘러보았다. 열십자 모양으로 4갈래 길이 나 있었다. 물론 그 중 하나는 두 사내가 들어 온 곳이다.
"저, 보물들이 있다는 길은 어디였습니까?
바트비는 그 말에 크음 콧소리를 내고선 말을 했다.
"어디로 가도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었느니라."
"네? 그게 참말입니까? 아유."
아민의 입꼬리가 눈을 찌를 기세로 올라가며 웃었다. 바트비가 대답했다.
"정면의 길로 가면 문이 하나가 있는데 그곳은 금과 은으로 장식된 무구들이 번쩍이고 있었고, 왼쪽 길로 가면 문이 셋인데 각각 루비, 황수정, 비취가 그득하고, 오른쪽 길로 가면 문이 둘인데 하나는 금화가, 다른 한 쪽은 은화로 가득 차 있었지."
"우와-! 무엇부터 먼저 가져가야 할까요?"
바트비가 담배연기를 입에서 유유히 내뿜으며 말했다.
"우선 금화를 적당히 챙겨가자꾸나. 그리고 돌아가서 그걸로 낙타를 몇 마리 더 사서 다시 오는 거야. 그리고 보물들을 더 챙겨와서 나누는 거지. 어떠냐?"
"정말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자, 자, 그럼 어여 담으러 가자꾸나."
"네, 어르신!"
아민이 풀쩍 뛰더니 바트비보다 앞서 간다. 바트비는 그 모습을 보고는 곰방대를 연신 빨아당기며 천천히 팔자걸음으로 뒤따랐다. 오른쪽,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는 길이었다.
아민이 신나서 문을 열었다. 작은 방 안은 정말로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금화들로 이루어진 큰 더미가 있었다. 햇빛도 거의 안드는 곳이건만 산같이 쌓인 금화는 탐욕스럽게도 반짝였다.
"어르신!"
"그래. 어서 주워담자."
두 사내는 자루에 금화를 쓸어담기 시작했다. 아민은 욕심껏 금화를 잔뜩 담았다가 무거워서 들지를 못하여 다시 덜어내길 반복했다. 한참동안 금화를 게걸스럽게 만지작 거리던 아민이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
"페메토스시여, 감사합니다!"
바트비도 입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속으로 같은 심정이었다. 페메토스, 태양과 빛의 주인, 다고시안 대공국의 유일한 신. 위대한 신의 축복이 아니라면 이런 행운을 내가 거머쥘 수 있었을 리 없다.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쿠르르르릉-'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구르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자 두 사람의 손이 동시에 멈추었다.
금방 다시 조용해지는가 했더니 다시 멀리서 쿵- 쿵- 하는 소리가 연이어 이어졌다. 심지어 그 소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점점 가까워 지고 있다. 뭔가 잘못된 것이 틀림 없다, 두 사람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다.
"아민아, 잠시 바깥을 보고 오지 않겠느냐?"
"어, 어르신께서 보고 오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예끼, 이놈. 젊은 녀석이 겁만 많아가지고!"
"그럼 같이 가시지요."
옥신각신 하던 두 사내는 동시에 침을 꼴깍 삼키고는 문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쿵- 쿵- 소리는 여전히 들리지만 딱히 보이는 것이 없다. 둘은 분수대 보이는 곳까지 복도를 되짚어 걸어갔다. 그리자 분수대 너머로 어둠속에서 뭔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본 것은, 목 잘린 조각상들이 흉흉한 무기를 앞으로 겨눈 채 줄지어 걸어오는 모습이었다.
쿵- 쿵- 발 맞춘 행진 소리와 함께.
.
.
.
몇 시간이 지났을까. 바트비와 아민은 금화로 가득찬 방 안에서 숨소리 마저 죽인 채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다. 목 잘린 조각상들은 분수대 주변을 수색하는듯이 쿵쿵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지만 분수대 근처를 떠나지는 않고 있었다. 아직 들킨 것 같지는 않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조막만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을 비추던 햇빛이 이제 벽면을 비추고 있었다. 해가 기울어 떨어지기 직전인 것 같다.
아민은 속으로 신세 한탄을 하다가 주저앉아 조용히 벽만 바라보는 바트비의 뒤통수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다가 다시 바닥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쉬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 곳에 갇혀있어야 할까. 평생 놀고먹고도 남을 금화가 여기 있지만 금화를 씹어먹을 수는 없다. 마실 물도 얼마 없다. 언제까지고 여기 있어서는 산더미 같은 금화속에 파묻혀 말라 죽은 시체가 될 뿐이다.
하지만 나갈 방법이 없다. 문 밖에는 목 잘린 조각상들이 돌아다니고, 벽에 난 창문은 머리조차 내밀지 못할 것 같이 작은데다 천장 바로 아래에 나 있어 손도 닿지 않는다. 어림잡아 바닥에서 10큐빗(약 5미터)은 되어 보인다. 밟고 올라설 만한 물체도 없고, 벽은 사암벽돌로 치밀하게 쌓아올려져 있다. 창문으로는 나갈 수 없다. 그렇다고 벽을 부술 수도 없다. 부술만한 도구도 없거니와, 큰 소리를 냈다가 목 잘린 조각상들이 들이닥칠까 겁이 난다.
한참을 멍하니 벽만 바라보고 있던 바트비의 눈길은 창문에서 뻗어져 나온 작은 빛줄기를 향했다. 짓뭉개져 무슨 모양인지 알지 못할 형상 사이로 빛줄기가 비추는 곳에 어떤 글자가 보이는 듯 했다. 바트비가 다시 바라보니, 분명 글자가 맞다. 원래는 난폭하게 짓뭉개져 보이지 않았지만, 햇빛이 비스듬하게 벽을 비추자 남아있던 미세한 요철들이 그림자를 형성하여 사라져버린 글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바트비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어 읊조렸다.
"...메민...시프... 알드...리카?"
아민이 바트비의 목소리를 듣고 당황했다. 아니, 저 귀신들린 조각상들이 소리를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저 중늙은이가 미치기라도 한건가? 하는 순간.
금화로 그득한 가운데, 흐릿하게 하얀 그림자가 생기는 듯 하더니, 점점 형체를 갖추어 이내 한 여인의 모습이 되었다. 아민은 자기가 헛것을 보는건가 하고 눈을 마구 비볐지만, 분명히 여인이 있었다. 바트비도 멍한 눈으로 여인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잠깐의 믿지 못할 정적이 흐르고, 갑자기 생겨난 여자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바트비."
아민이 깜짝놀라 비명을 지르려다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바트비도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두 사람이 뚫어져라 여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인은 몸 대부분을 가리며 장식이 없이 다소곳한 검은 비단 통옷을 입고 있었고, 검고 긴 머리가 허리까지 늘어져 있었다. 머리엔 검은 비단으로 만든 베일을 쓰고 있었는데, 긴 베일이 여인의 두 눈을 가리우고 있었지만 하얗고 깨끗한 피부와 오똑한 콧날과 날렵한 입술이 한눈에 봐도 눈부신 미모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이 아름다운 입술을 달싹여 말을 이어갔다.
"나는, 정의와 공정의 여신 알드리카."
"페메토스에게 패하여 모든 신도들을 잃고 이름조차 잊혀져 존재마저 부정당한 신."
"바트비, 그대가 내 이름을 불러주어 다시금 존재를 되찾았다."
터무니 없는 말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여자가 정의와 공정의 여신이라 칭하며 주신 페메토스에게 패배하여 잊혀졌다고 말하고 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두 사내를 자칭 여신이 번갈아 바라보다 작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는 페메토스를 섬기고 있는 자들인가?"
"그, 그렇소." 바트비가 가까스로 정신을 수습하여 대답했다.
"페메토스는 어떤 신이지?"
"...태양과 빛의 주인이자 이 대사막에 존재하는 유일한 신이시며 그 이외의 신은 없소이다. 어찌된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부인께서는 불경한 말을 하고 계시오."
순간 여자의 입술이 엄숙하게 다물어졌다. 입술을 다물었을 뿐인데 휘몰아치는 엄숙함에 바트비와 아민은 순간 아찔함 마저 느꼈다.
잠시 후 여인이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그대들은 머나먼 옛날 이 땅에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음을 모르고 있다."
"신들은 이 비옥한 대지를 두고 서로 싸웠으며, 그 중 페메토스만이 살아남아 승자가 되었다."
비옥한 대지라니? 모래밖에 남지 않은 이 황량한 대사막을 가지고 무슨 농담 따먹기인지 모를 노릇이다. 아민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여자가 답을 해 준다.
"본디 신들의 힘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대지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어야 하는 법."
"그러나 페메토스는 크나큰 욕심으로 다른 신들을 모두 죽이고 홀로 이 땅을 통치했다."
"이글거리는 태양과 빛의 힘만이 남은 이 땅은 점차 물이 사라지고 초목도 말라붙어 사막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말해보거라, 페메토스의 종복이여. 이 땅이 과연 생명과 기쁨으로 가득 찬 축복받은 땅인가?"
바트비와 아민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막에서의 삶은 고단하고 하루 하루가 생존의 투쟁이다. 생명과 기쁨? 그것은 고생해보지 않은 자의 배부른 소리다.
갈 길을 잃은 대답 대신 뱃속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이런 사막에 태어나 생고생을 하고 살아가는 거지? 왜 귀족들은, 페메토스교의 가증스러운 사제들은 잘난 체 하며 호의호식하는가?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데?
여신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껏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실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분노가 응어리져 주먹이 저절로 꽉 지어지고 턱에 힘이 들어가 어금니를 앙다물게 된다.
그 순간, 밖에서 요란한 쿵쿵 소리가 다가오는 것이 들렸다. 목 잘린 조각상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이 틀림없었다. 아민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고, 여신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밖에 귀신들린 석상들이 우릴 잡아 죽이려고 하고 있었는데, 이제 우릴 찾아낸 것이 틀림 없습니다요!"
여신 알드리카가 말했다.
"그들은 귀신들린 석상이 아니니라."
"그 조각상들은 나의 사제들이었으나, 패배 이후 나의 흔적을 지우려는 페메토스의 노예들에 의해 목이 잘리고 석상으로 봉인당한 자들."
"그리고 페메토스의 주박에 묶여 나의 감옥이 된 이 곳 사원에서 본디 주인이었을 나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민은 느긋한 여신의 말씀에 속이 답답해졌다.
"아니,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구요, 저것들이 우리를 죽이려 한다니까요?"
알드리카가 여전히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을 위험에서 구하기엔 나의 힘이 아직 모자르다."
"나는 따르는 종복이 없는 신."
"그대들이 나를 따르겠다고 맹세한다면, 나의 힘이 조금 돌아올 지 모른다."
"그 힘으로 너희를 구하겠다고 약속하지."
"맹세하겠느냐?"
그 말을 들은 바트비와 아민은 순간 망설였다. 다고시안 대공국에서 이교의 신에게 맹세하는 것은 중죄다. 이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발가벗겨진 채 가시채찍으로 등가죽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맞은 다음 통나무에 묶인 뒤 사막 한가운데 버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피 냄새를 맡고 찾아온 독수리들이 찾아와서 부드러운 눈부터 파먹을테지.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 쾅 하는 굉음이 문을 두들겼다. 조각상들이 문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바트비와 아민이 동시에 빛과 같은 속도로 여신의 발치에 엎드려 이마를 처박았다.
"여신님!"
"살려주세요!"
알드리카가 조용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맹세하겠느냐?"
"맹세하겠습니다-!"
누가 먼저다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두 사내가 외쳤다. 잠시 알드리카의 몸이 살짝 흰 광채를 발하는 듯 하더니 수그러든다. 그 순간 나무 문이 쾅 하고 찢어지며 목 없는 조각상들이 방에 들어왔다.
"히익-!" "헤엑-!"
두 사내가 여신의 뒤로 잽싸게 도망쳤다. 아민의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고 바트비의 쥐수염은 놀라 올올이 곤두서있었다. 두 사내는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벽에 밀착하여 서로 부둥켜 안고 계집애같이 꺄악꺄악 새된 비명을 질러댔다.
볼품없는 두 남자를 뒤로 한 알드리카는 가만히 서있다.
목 없는 조각상이 쿵. 쿵. 묵직한 발걸음을 울리며 걸어왔다.
알드리카의 우아한 팔이 미끄러지듯 천천히 올려 앞을 향해 뻗었다.
조각상들이 여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각상의 손에 쥐여진 미늘창이 여신을 향해 내질러지는 찰나.
"그만 멈추거라."
나직한 알드리카의 말 한마디에, 조각상들은 전부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
.
.
바트비와 아민은 멍한 머리로 사막을 걷고 있었다.
여신 알드리카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바트비와 아민에게 금화는 마음대로 가져가도 좋다고 말했다. 다만, 돌아가서 여신의 이야기를 전파하고 신도를 늘리는 데 금화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아무튼 목숨을 붙인 두 사내는 여신에게 거듭 절을 올리고서 금화 자루를 부둥켜 안은 채 사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두 사람이 사원 밖으로 나왔을 때 충직한 낙타 왈라브는 입구에 여전히 서 있었고(금화가 든 자루 두개를 등 위에 실으려 할 때는 도망가려 했지만), 현재 두 사람은 다르고시아나를 향해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말없이 걷다가 아민이 모래언덕이 다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아저씨. 우리 이제 돌아가면 어쩐대유..."
바트비가 그대로 정면의 지평선을 주시하며 말했다.
"조용히 일을 진행하는 수 밖에 없겠지. 금화는 많으니... 천천히 세를 불려가면 될 것이야. 페메토스교 사제놈들의 눈을 피하면서 당분간 숨어지내는 수 밖에. 그리고..."
고개를 뒤로 홱 돌려 아민을 노려보며 덧붙였다.
"대주교님이라고 불러, 짜식아."
"예이, 바트비 대주교 님"
입을 다물고서 한참을 터덜터덜 걸음을 걷다가 잠시후 입을 열고서 또 툭 뱉는다.
"...그리고 힘주어 조금만 밀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을 가지고 무슨 똥폼을 그래 잡으시고."
"..."
무수하게 많은 새벽별들이 처량하게 걸음을 옮기는 두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 같은 사막의 밤이었다.
- 사막의 유적 完 -
<소설 뒷설정>
태양과 빛의 페메토스
강렬한 빛과 열기로 묘사되는 페메토스는 매우 강력한 신으로, 그 형태를 눈으로 관찰할 수 없기에 인간의 형태인지, 짐승의 형상인지 조차 모릅니다.
아주 먼 옛날, 신들은 현재는 사막이 되어버린 풍요로운 평원을 두고 그 땅에 사는 인간들을 장기말로 삼아 전쟁을 벌였습니다.
페메토스는 다르고시아나 지방의 인간들에게 추종받는 신으로, 다르고시아나 인들을 부려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인간들을 사랑해서 악신들을 물리친 것인지, 악신들을 물리치기 위해 인간들을 부린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증오와 거짓의 알드리카
검고 긴 생머리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그녀는 증오와 거짓의 힘을 가진 여신입니다.
알드리카는 사람들 사이에 악의적인 거짓 소문과 끝없는 증오를 퍼트려 알드리카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광신도들을 이끌고 여러 악신들과 연합하여 페메토스를 공격했지만, 강력한 페메토스의 힘과 그 추종자들의 군대에 의해 악신들의 군대는 하나씩 소멸되었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알드리카마저 쓰러졌습니다.
신들은 신도들의 믿음에 의해 힘을 얻기에 페메토스는 악신들의 이름을 역사에서 지우고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지도록 하였습니다.
알드리카는 언제나 검은 베일로 눈을 가리고 있지만, 이는 모 정의의 여신처럼 공정한 정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증오를 의미합니다.
최후의 사원
원래 증오와 거짓의 알드리카를 숭배하던 여러 사원 중 하나였으나 알드리카가 전쟁에서 패배하고 다른 모든 사원들은 허물어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알드리카와 알드리카의 추종자들이 마지막까지 숨어 저항하던 곳이 바로 최후의 사원입니다.
페메토스는 최후의 사원도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알드리카를 섬기던 13인의 대사제들이 전쟁에서 패한 알드리카를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최후로 남은 광신도들 전원의 목숨을 희생하여 최후의 사원에 강력한 보호마법을 걸었습니다.
최후의 사원에서는 알드리카가 허용하지 않는 한,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고, 파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목 없는 조각상
페메토스는 최후의 사원을 완전히 파괴하려 했으나, 보호마법이 너무나도 강력하여 부분적인 파괴를 한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대사제들의 의식이 깃든 조각상은 머리만 겨우 잘라내고, 사원 내부에 존재하는 알드리카의 기록과 그림, 조각들은 덧칠하거나 표면만 깎아내는데 그쳤습니다.
다른 악신들은 대부분 영원히 존재가 소멸하였지만, 대사제들의 희생으로 알드리카는 최후의 사원에 봉인되어 그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매우 오랜 시간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희미한 본능만 남은 목 없는 조각상들은 옛 여주인을 영원토록 수호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희미한 본능 중 하나는 '페메토스에 대한 증오' 입니다.
고대 다르고시아나 왕국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페메토스는 경쟁자 신들의 힘을 영원히 제거하기 위해 인간들을 개종시키거나, 개종하지 않으면 학살하였으며, 경쟁자 신들과 관련한 기록을 모두 파괴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인간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치게 되었으며, 이들이 세운 나라가 고대 다르고시아 왕국입니다.
이들의 건국사는 신들의 전쟁과 연관되어 있었기에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길 수 없었으며, 어떻게 멸망하였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이후 많은 세월이 흘러 고대 다르고시아나 왕국이 세워졌던 이 사막의 대지에 새롭게 세워진 나라가 다고시안 대공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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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설정을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마지막에 통수치는 전개로 적고 싶었는데 전문 소설가도 아닌 주제에 그런 건 꿈이나 다름없었네요. 부족한 점만 처절하게 느끼고 갑니다. 나름 프롬식 전개라고 자기위안 해봅니다.
이젠 진짜 자야지.
위에 드래그 하면 뒷설정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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