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사채업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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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2-10 01:44:33 KST | 조회 | 622 |
제목 |
XP TRPG 단편: 얄'다고스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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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 롤랜드는 엄청난 두통과 함께 눈을 떴다. 뱃 속에서는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이 느껴지고, 뒤통수에서는 찌르는 듯한 고통이 끊이지를 않았다. 그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이마를 타고 내려와 눈 앞에서 떨어졌다.
고통에 익숙해 진 후에야 그는 자신이 어디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불쾌한 공기가 느껴지는 어두컴컴한 장소. 불길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화로들. 그리고 속옷만 남은 채 묶여있는 그 자신. 양손과 양발 모두 전력을 다해 당겨보지만, 그의 사지와 몸은 철로 된 형틀에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힘을 주면 줄 수록 뒤통수의 고통만 더 커져갈 뿐이었다.
“내가 왜, 이런 곳에…”
롤랜드는 천천히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왜 이렇게 되었지?
롤랜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달이 뜬 밤, 사막의 모래, 그리고 모닥불이었다. 사막 신 페메토스를 섬기는 다고시안 대공국의 기사로써, 그는 동료들과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고 있었다. 다시 도적단이 들끓으며 치안이 나빠진 사막에서 순찰을 돌고, 모닥불을 피운 채 야영을 하는 도중..
그렇다. 이교도 놈들이야. 롤랜드는 그들이 갑작스레 습격해 온 것을 떠올렸다. 물론 그는 기사로써 한 점 부끄럼 없이 열심히 싸웠지만, 사막 이교도들은 철저히 습격 준비를 하고 그들을 덮쳤다. 이교도들의 수는 압도적이었고, 태양의 축복을 받은 기사단의 장비들은 무력화되었다. 롤랜드는 저항하며 이교도 두 세 명을 칼로 두동강냈지만, 그 후에 뒤통수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그리고- 지금 이런 꼴이 된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나, 롤랜드에게 두뇌 충격으로 인한 기억상실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기억을 똑똑히 떠올리며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차라리 그 싸움에서 죽는 게 나았을거란 생각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사태 파악이 되고 나자, 롤랜드는 어둠 속에 가려져있던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며 기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동료 기사였던 사내들이 특이한 형틀에 거꾸로 묶인 채, 제각각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은 손목과 발목에 난 베인 상처로 인해 꽤 많은 양의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들의 피는 중력과 함께 형틀에 패여있는 작은 통로를 따라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피웅덩이들은 사악한 마법의 힘에 이끌리는 것인지, 바닥에 난 또다른 통로를 따라 이 어두운 장소 어딘가로 모이고 있었다.
많은 자들이 고통스러워하거나 피가 빠져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롤랜드의 가장 친한 동료 기사인 알 하자르도 있었다.
“하자르? 하자르!”
알 하자르는 두들겨맞고 부르튼 입술에서 피를 뿜으며, 롤랜드에게 대답하려 애쓰고 있었다.
“ㄹ.. 롤, 랜드… 롤랜… 드…”
하자르의 형틀 아래로도 그가 흘린 피가 모여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많이 창백해 보였고, 마치 영혼이 당장이라도 빠져나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자르! 정신 차리게! 젠장…!!”
롤랜드는 다시금 자신의 구속구를 힘으로 떼내어 보려 애썼지만, 전혀 소용없었다. 그가 팔에 힘을 쥘 때마다 구속구가 흔들리는 소리만이 공허히 울려퍼질 뿐이었다.
“당신의 친한 동료인가 보군요.”
순식간이었다. 롤랜드의 눈 앞에 이교도 복장을 한 불쾌하고 마른 남성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롤랜드는 지금까지 많은 이교도를 봐왔지만,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는 위험하다. 악 그 자체다. 그저 그런 이교도 광신자가 아니다.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음험한 눈빛이 느껴지는 자였다.
“이 이교도 녀석아.. 당장 풀어라! 대공께서 너를 가만두지 않으실 것이니!”
롤랜드는 계속해서 구속구를 풀으려 애쓰며 외쳤다. 그는 열심히 힘을 주며 용맹하게 보이려 애쓰고, 어둠에 저항하며 목소리를 높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눈 앞에 닥친 공포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으니.
“나는 캘-롤랜드 라들렌 비슬로이어, 명예로운 기사 캘-롤더란의 아들이자, 위대하신 페메토스 신의 독실한 신자이며, 존귀한 다고시안 대공에게 충성을 바치는 용사이다! 이 구속을 당장 풀지 않으면-”
롤랜드는 열심히 자신의 외침을 이어가려 애썼지만- 이교도는 그의 가짜 허세를 알아채고 비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교도는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대어 롤랜드의 입을 막곤, 조용히 속삭이기 시작했다.
“쉿-. 오, 롤랜드. 거짓된 삶에 눈이 먼 불신자, 캘 롤랜드시여. 당신의 가엾은 대공께서 이 장소를 찾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롤랜드는 숨을 헐떡이며 그 이교도를 노려봤지만, 이교도는 섬뜩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당신을 구하러 오진 않을겁니다. 대공도, 당신이 그렇게 믿어대는 사막의 신도 말이죠. 이곳은 진정한 신에게 충직한 자들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성지니까요.”
그렇게 속삭이고 있던 이교도 옆에, 다른 이교도 사제가 다가와서는 불길한 기운을 뿜는 단검을 건냈다.
“축복받은 단검이 여기 있습니다, 젤로이스 대사제님. 의식을 실행할 준비도 끝났습니다.”
“고맙습니다, 형제여.. 시작합시다. 얄’다고스의 위대한 존재들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젤로이스 대사제는 그렇게 말하며, 롤랜드에게 다시 속삭였다.
“이 신성한 의식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알아주십시오, 롤랜드여.”
롤랜드를 향한 불쾌한 속삭임을 뒤로 하고, 젤로이스는 의식을 잃기 직전인 하자르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롤랜드는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그저 가능한한 이교도들을 향해 외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그만 둬! 이 망할 자식아!!! 그만 둬-!!!!!”
절그럭거리는 구속구의 마찰음. 이교도의 성지 안에 울려퍼지는 롤랜드의 목소리. 하지만 젤로이스는 변함없는 걸음걸이로 하자르를 향해 다가가, 단검을 꺼내 하늘로 꺼내들었다.
“오, 위대한 신들이시여, 당신들께 바치는 공물입니다.”
“멈춰, 멈.. 춰… 꺼어어억!”
젤로이스는 무자비한 표정으로 하자르의 목에 단검을 들이대곤, 느리게, 하지만 정확하게 그의 목을 베어나갔다. 알 하자르는 꺽꺽거리는 소리를 내며 피와 눈물을 흘렸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이제 그의 영혼은, 얄’다고스에 속한 것이 되었습니다, 롤랜드여.”
“하자르, 안 돼…!!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고!! 알아들어? 이 개자식아!! 너희 이교도 놈들 모두 말이야! 사막의 더위 아래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만들어주겠다고!!”
롤랜드는 열심히 발악했지만, 젤로이스와 함께 온 이교도들은 어떤 반응도 해주지 않았다. 이교도들은 제각각 단검을 꺼내들고, 피를 흘리고 있던 기사들을 하나하나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가엾은 기사들은 차례로 피와 영혼을 뺴앗기며, 공허한 육신만이 남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롤랜드는 공포와 분노, 슬픔, 역겨움이 섞인 감정 속에서 정신나간 듯 웃으며 젤로이스 대사제를 노려보았다.
“으흐흐흐… 페메토스 신께서, 너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용서치 않을 것이야!!!”
젤로이스는 단검에 묻은 피를 닦다가 그 말을 듣고 뒤돌아보곤, 음흉한 표정과 함께 롤랜드에게 다가왔다.
“진정한 신은, 오직 얄’다고스에만 있습니다, 가엾은 이단자여.”
젤로이스는 그렇게 말하곤 뒤돌아서서, 이교도들을 향해 외쳤다.
“얄’다고스, 고귀하신 옛 존재들께서 잠들어 계신 곳.”
젤로이스의 외침에 이어, 수많은 이교도들이 주문을 외우듯 그의 말을 이어나갔다.
“왕도 노예도,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는 곳.
가엾은 영혼이, 신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곳.
빛은 찰나에 불과하며, 어둠만이 영원히 드리운 곳.
죽음마저, 죽음을 맞이하는 곳.
위대한 부활의 때에, 나약한 세계를 집어삼킬 곳.”
젤로이스가 다시 한 번 외쳤다.
“가엾은 불신자들을 향해 외치노라.”
이교도들은 또 다시 합창하듯이 그의 말을 이어나갔다.
“위대한 존재들께서 성지에 잠들어 있도다.
거짓된 영생은 짧고, 승천의 때는 다가오리.
그들은 수면 아래의 살점을 삼키게 되리라.
욕망과 권력은 너희의 것이 아니게 되리라.
때가 오면, 모두가 영원한 광기를 맛보리.”
그들은 그렇게 불경한 메세지를 반복하며, 어둡고 축축한 이교도들의 성지 안에 음험한 분위기를 더해나갔다. 롤랜드는 비현실적인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며 그저 실소할 수 밖에 없었다.
“하, 하하하… 미친 새끼들..”
롤랜드의 앞에 젤로이스가 다가왔다. 젤로이스는 말없이 흉측하게 웃으며, 롤랜드에게 재갈을 채우고 그가 묶여있는 형틀 째로 어딘가로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캘-롤랜드의 앞엔 수많은 이형체들이 펼쳐져 있었다. 최소한 인간 형태를 유지하는 것부터 촉수가 잔뜩 자라난 녀석, 혹은 거의 녹아버린 살점이나 다름없어진 존재까지. 하나같이 뒤틀리고, 역겹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롤랜드에겐 불행하게도, 그 존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는 누가봐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차례는 나구나.
롤랜드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다.
페메토스 신이시여,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불신자 롤랜드여. 이제 의식을 통해, 당신도 신들 속에서 우리와 함께합니다. 얄’다고스에 영광을! 얄’다고스에 축복을!!”
젤로이스의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롤랜드는 의식 장소 한 가운데에 형틀과 함께 놓였다. 기사들이 흘렸던 피의 웅덩이가 그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감싸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사악한 이교도의 마법이 스며들자, 검붉은 색으로 변한 피웅덩이가 여섯 방향에서 솟아오르며 롤랜드의 몸에 난 구멍들을 통해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가엾은 롤랜드는- 그와 함께 현실 세계에서의 의식을 잃었다. 고통은 커녕 더 이상 아무런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정신이 자아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자신의 속에 다른 존재가 섞여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롤랜드는 새로운 정신에게 저항했다. 버텨야 한다. 페메토스 신이시여, 나와 함께해 주소서.너는 가치없는 존재야.페메토스 신이시여, 나와 함께나에게 몸을 맡겨라. 페메토스 신이시여, 신은 오로지 심연에만 존재한다.
너의 모든 것은 나의 것이다.
“얄’다고스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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