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WG완비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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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1-12 13:29:19 KST | 조회 | 2,204 |
제목 |
장문리뷰) 장화신은 고양이 2의 캐릭들에 대한 철학적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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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고 2 더 라스트 위시는 어린애들이 이해하기 힘든 주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함께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글이 길어서 브금으로 달아둠)
1. 이 영화에서 죽음이란, 말만 죽음일 뿐 실제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는 '시간'을 상징한다.
푸스가 8개의 목숨을 허비하는 것은 현실에서의 인간이 허송세월을 하며 아무것도 쌓지도 생산하지도 않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점점 늙어간다. 늙어가고, 결혼 생각해야 하고, 놀거나 도전을 맛볼 여유는 점점 더 없어지고... 그러면서 한 개인의 가능성은 계속해서 죽어간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을 수록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며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점점 보수적인 틀딱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영화 초반부에 목숨 다 잃어버리고 영웅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고양이 보호소에 틀어박혀서 인간성을 전부 상실한 푸스의 모습이다.
2. 이때의 푸스는 소위 말하는 '전설의 틀딱' 상태로, (설정상으로는 30대 중후반이라고 해도) 죽기 직전의 늙은이를 상징한다.
어느 날 만난 젊은 애(페로)가 옆에서 뭐라고 개지랄을 떨든말든 다 귀찮고, 말싸움할 여력도 없고, 그냥 밥이나 조용히 먹으면 좋겠댄다.
전설의 틀딱들이 하기 좋아하는 '과거 회상 늘어놓기'조차 하려다가 지 스스로 서러워서 못 하겠다며 관두고 결국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만 한다.
이때 나오는 삽입곡이 "This is the End", 이게 끝이란 소리다. 그냥 죽은 거나 다름없는 삶이라고. 아무 변화도 없고, 도전도 없고, 기회도 없으니까.
그래서 푸스가 이러고 있는 동안엔, 영화에서 몇 날 며칠이 주르륵 흘러가는 걸 보여주는데도 늑대(=죽음=시간)가 오지 않는다. 이미 시체니까.
푸스가 자신의 장비를 땅에 묻고 장례식을 해주고, 뒤이어 찾아온 곰 가족들이 그걸 보고 '죽었나 보네?'라고 여기는 장면으로도 표현된다.
예전의 영웅 푸스는 죽었고 추하게 도망쳐온 늙은 고양이만 남았다는 것.
3. 고양이에게 9개의 목숨이 있다는 설정 역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게 하나 둘 사라지면서 시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목숨들은 푸스가 어떻게 살든 결국엔 사라지게 되어 있고, 그가 목숨을 소비하는 과정은 실제 관객들의 인생에서 '도전'에 비유할 수 있다.
쉽게 말하자면 푸스의 목숨은 결국 9개처럼 보이는 1개이며, "9개의 목숨이 있다"는 것은 진짜 목숨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기회(비용)를 뜻한다.
그런데 사실 푸스에게 목숨이 9개가 있든 99개가 있든 영화의 전개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소진되어 하나만 남는 순간이 올 테니까.
푸스가 1개의 목숨인 상태로 마지막 소원(The Last Wish)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것은 한정된 기회를 안주가 아니라 다시 도전에 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하지 않았을 선택이다. 하지만 푸스는 영웅적인 삶을 살던 인물이고 일반적인 인간 군상의 외부에 위치한 캐릭터잖음?
그래야 영화 주인공이지.
4. 푸스가 '9개의 목숨을 되찾으러 간다'는 것은 단순히 죽기 무섭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새로운 기회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법은 판타지니까 가능한 '소원별'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데, 현실에서는 소원별이 '요행'에 해당한다.
(말하자면 수학적으로 확률이 판타지나 다름없는 로또 당첨을 예시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푸스는 영화에서 새로운 목숨(=기회)을 얻지 못하는데, 그렇다고 죽음(=시간)을 상대로 패배하지도 않는다.
이는 영화 내에서 푸스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계속 요행만 바란다면 결국엔 (삶의 다른 소중한 것들을 전부 낭비해서 오는) 파멸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그래서 푸스는 자신이 과거에 한 번 거절했던 소중한 사람인 키티를 받아들여 살아남고 '너와 함께하는 단 한 번의 삶으로 충분하다'라고 말하며 끝맺음을 한다.
즉 영화의 메시지는 '다시 한번 기회를 얻는 것(요행)'에 집착하기보다는 주위 사람들과 소중한 것들에 집중하며 성실하게 살라는 것이다. 이건 쉽다.
이 메시지는 골디와 곰 가족을 통해서도 동일하게 전달된다.
5. 골디락스(고아 혹은 코1인충)
골디는 "진짜 가족"인 곰들을 종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짜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말 못할 소외감을 느낀다.
그래서 골디는 원하는 가족을 만들 수 있는 소원(요행)을 노리고 있으며 처음엔 이것을 가족에게 비밀로 한다.
하지만 영화 내에서 곰들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준 골디를 "진짜 가족"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골디가 바라는 요행의 정체가 탄로 난 후에도 그것을 이뤄주기 위해 노력하다가 파멸하기 직전까지 간다. 이는 현실에서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주식이나 코1인질을 도와주며 등골 뽑히다가 파멸하기 직전까지 가는 나머지 구성원들에 비유할 수 있을 듯하다. (=조건 없는 순수한 가족의 사랑)
골디는 후반부에 소원을 손에 넣긴 하나, 당장 가족이 파멸하게 될 상황을 마주한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이 아니므로 내면 심리가 많이 생략됐지만, 골디도 푸스와 동일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이 바로 이쯤일 것이다.
"이렇게 요행을 누려봐야 (삶의 다른 소중한 것들을 전부 낭비해서 오는) 파멸이 기다릴 뿐이다"라고.
일반적인 사람에게 '님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이 전원 뒤지는 대신 로또 1등 당첨되게 해줌'이라는 제안을 하면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거절하지 않겠음?
곰들은 영화 내내 자신들이 골디에게 소중한 사람들(진짜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줬고, 골디는 다행히도 정상적인 인간이었다.
그래서 골디는 요행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가족을 택해서 살리며 그 결정은 해피 엔딩으로 이어진다.
6. 빅 잭 호너(악덕 사장)
잭 호너는 부하 직원들을 좆같이 굴리는 좆소 사장, 혹은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단체의 수장에 비유할 수 있다.
부하 직원들이 왜 잭 호너에게 그렇게 충성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부하 직원들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모험할 때 말고 초반에 파이 공장 돌릴 때도 직원들이 벌벌 떨었던 걸 보면 행복하게 대우해주진 않았을 것이 분명함 ㅋㅋ
그런 충성도 높은 부하들을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험하게 굴려먹어서 다 뒤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당연히 부하들과의 '소통(사회적 관계)'이 없다.
자긴 시끄러운 거 싫어한다며 마지막에 살아남은 애도 입 다물게 한 거 알지? 이는 모든 방면으로 단절된 인간을 의미한다.
결국 최후엔 지만 남고 그 상태로 혼자서 뒤짐.
돌아갈 가족이 있던 골디락스, 푸스와는 달리 의지할 기반이 남아있질 않아서 무의미한 소원(요행)을 포기하지 못하고 파멸했음을 연출한 것이다.
7. 골디와 잭 호너에겐 뚜렷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a. 둘 다 자길 따라주는 사람들을 부하로 사용한다(=등골을 빼먹는다)는 점에서 닮았다.
b. 골디가 곰 가족을 만난 건 '고아 복권'이라고 표현되며, 잭 호너가 직원들 갖고 있는 것도 본인의 노력 없이 물려받은 것이다. 즉, 대가 없이 받은 자산이다.
하지만 골디의 경우엔 가족이 주체적으로 도와주는데 반해 잭 호너의 경우에는 힘과 권위로 억압하려는 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를 쉽게 말하자면 골디는 비록 '갈등과 불협화음'이라 하더라도 소통이 계속 있었으나, 잭 호너는 아예 그런 소통조차 완전 부재했다는 것이다.
잭 호너가 소통을 회피하게 된 이유는 극 안에서 단적으로 찾을 수 있다. 잭 호너의 어릴 적 동요를 도둑 2인조가 비웃음거리로 치부하고 큭큭대는 씬이 있는데 그걸 웃어넘기지 못하고 분노해서 금덩이로 만든 것을 보면 어린 시절에 수치심을 겪었다- 즉, '단절 경험'이 있어서 그렇게 됐다- 로 간주할 수 있다.
출발은 비슷했는데 골디는 해피 엔딩으로 끝나고 잭 호너는 배드 엔딩으로 끝난 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서 생기는 비대한 자아로 생을 마감하는 외톨이의 삶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거라 볼 수 있다.
만약 골디도 잭 호너처럼 비대한 자아를 갖고 있었다면 지도가 손에 들어왔을 때 남동생을 버리고 소원은 이루되 결국엔 파멸했을 것이다. 영화가 짧으니까 거기까진 제대로 묘사가 안 됐겠지만.
8. 푸스(늙은 전설의 틀딱)도 잭 호너(악덕 사장)와 겹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a. 푸스도 잭 호너처럼 자신의 힘과 기회를 무한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숫자를 셀 줄 몰라서 의사 양반이 은퇴 권고하기 전까진 자기 목숨이 무한하다고 여겼을 테니 그것은 곧 무한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그 씹마초에 쾌걸스러운 행동은 그 '무한한 기회'를 기반으로 하는 자신감에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을 죽음 선생님이 100분에 걸쳐 참교육해준다.
b. 푸스도 자신의 자아에 집착한다. 특히 영웅, 레전드, 이런 비대한 자신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어하며, 그러한 자신의 가능성(자아상)을 제한하는 사회적 관계=결혼으로부터 도망친 인물이다. 즉, 푸스도 소통 거부자 유형이라 볼 수 있다. 푸스의 소통 회피성은 의사 양반이 '너 그래서 은퇴하고 찾아갈 사람은 있냐?'라고 물어봤을 때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상담해준 의사한테 고마워는 못할 망정 물고기 과자 먹으면서 욕하면서 달아남.
(b2. 사실 b에는 영화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이유가 있긴 하다. 푸스는 예전에 TVA 시리즈에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살던 정착지와 사랑하던 연인을 이미 한 번 떠나보내야 했던 과거가 있다. 상실의 고통을 겪은 인물이기 때문에 결혼 등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지 않고 회피하며 왠만하면 혼자 있으려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c. 잭 호너의 소원은 세상의 마법을 전부 가지게 되어 세상 모두를 자신의 발밑에 두는 것(무한한 독점욕), 이것도 소통 거부-회피를 나타냄.
d. 푸스의 소원도 비슷하게 자신의 비대한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무한한 목숨-기회)을 회복하는 것.
하지만 푸스 역시 잭 호너와는 달리 해피 엔딩으로 꺾이는 분기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것은 바로 자신이 도망친 대상에게 '나 무서워서 튀었어. 너무 두려웠어.'라고 자신의 자아를 축소시키며 솔직하게 사과-소통하는 장면이다.
다행히도 키티가 보살 중의 보살 캐릭터였기 때문에 이거 한 방으로 푸스의 사회적 관계와 지지기반이 전부 회복된다.
9. 키티의 경우엔 외강내유형 인물이다. 겉으로는 능수능란한 처세술의 달인이지만, 속마음에는 상당한 소통 거부와 두려움을 지니고 있음.
왜냐면 1편에서 백스토리가 나오듯 자신을 키워줬던 주인들에게 발톱을 뽑혔고 (사람으로 치면 손가락 첫 번째 마디가 전부 잘린 수준)
2편에서는 푸스에게 결혼식 런으로 통수를 당했기 때문임. (사랑하는 이에게 받을 수 있는 고통 중 상당히 큰 축에 들지 않겠음?)
그래서 처음 등장하자마자 "못 믿어! 못 믿어! 믿지 마! 너도 믿지 마!"라고 악을 써대는데 이건 사실 '제발 좀 믿게 해줘!'를 돌려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원도 '진정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생기는 것'이었음.
키티의 소원(=요행)은 다른 인물들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스케일이 작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수준임.
그래서 그녀에겐 정말 요행이 일어난다! 바로 주인공인 푸스와 재회하여 모험을 했고, 푸스가 알아서 그녀에게 사과-소통 시도를 했다는 것임.
물론 중간에 페로가 관여하긴 했지만, 푸스의 씹마초스러운 비대한 자아를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은 맞음.
아무튼 그래서 키티도 푸스의 고백을 듣고 마음을 열게 되며 건강한 사회적 관계로 행복해진다.
그리고...
10. 페로는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거세된 것으로 보이는 초인적인 인물상이다.
전혀 안 그래 보이지만 페로는 늑대(죽음)와 동일한 레벨의 선상에 세울 수 있는 '특정 개념의 형상화'이고 그 자체로 개념적, 상징적인 초현실적 인물임.
늑대가 다가오는 죽음, 기회의 소멸, 언젠가 시간에 풍화될 물질, 자아를 유지할 수단이 없어진 자의 파멸을 상징한다면,
페로는 살아가려는 의지, 새로운 만남, 시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가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이해를 상징함.
정작 페로 본인은 가족에게 잔인하게 버려졌는데도 소통의 희망을 잃지 않는 걸 보면 제정신이 아닌 캐릭터이고 현실적인 자아상이 아님.
정신병자인 동시에 초인임. 일반적으로는 실존할 수 없는 인물이며, 바로 그렇기에 영화를 영화답게 만들어주는 일등공신이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가장 크게 살린 건 늑대가 아니라 페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모든 캐릭터들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거부하지 말고, 소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 곁에 있는 것들과 단절되지 말고, 시간의 유한함을 인지하고 삶의 소중함에 감사하자>
가 되겠다는 거창한 얘기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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