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Nio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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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0-01-15 19:40:13 KST | 조회 | 26,162 |
제목 |
스타크래프트2 이야기: 모선(Mothe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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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선
브라이언 T. 킨드레건
곧 저그가 몰아칠 것이다. 놈들은 벌써 문과 벽과 천장까지 뜯어냈다. 에레쿨은 형제와 자매들이 그에게 소중한 몇 초를 벌어주기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눈을 감고, 칼라의 고동을 감지했다. 동지들의 생각과 감정은 혼돈,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차있었다.
저그는 이미 에레쿨이 사랑하던 고향행성인 아이어를 점령했다. 이 침략자들은 자신들이 우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놈들은 싸움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은 멀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에레쿨은 콘솔의 어두운 방을 지나 이동했다. 그의 손이 은은한 푸른빛에 뒤덮여 있었다. 그는 천천히, 예를 갖추어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의 뒤에 있던 문이 산산 조각나기 시작했다.
프로토스가 우주의 끝으로 여긴 그곳에, 신호가 수신되고, 기록되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수정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에너지의 원천이 열렸다. 힘이 샘솟았다.
에레쿨이 고개를 돌리자 마침내 문이 무너져 내렸다. 이미 죽어 있던 두 고위기사가 방을 가로질러 날아가 먼 벽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어마어마한 양의 갈색과 회색 살덩어리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입에 침이 가득 고인 가득 고인 저글링이다. 수많은 등뼈에 못지않게 넘치는 분노로 가득 찬 괴물인 히드라리스크가 뒤를 이어 들어왔다. 놈들은 맹렬히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안고 에레쿨에게 달려들었다. 에레쿨의 눈이 얼음빛 푸른색으로 빛났다. 에레쿨은 고개를 숙이고 사이오닉 에너지를 모았다. 그의 주위에 격노와 증오의 회오리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에레쿨이 그의 팔을 펼쳐 노여움을 분출했다. 회심의 사이오닉 폭풍 일격에 몸이 부서지고 찢긴 저그가 고통에 나뒹굴었다. 더 많은 수가 문을 비집고 쏟아져 들어왔다. 에레쿨은 그의 사이오닉 에너지를 집중시켜 침을 흘리는 가장 큰 히드라리스크의 뇌를 잡아 뜯어버렸다. 더 많은 저그들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히드라리스크 위로 물밀듯 몰려들어 에레쿨을 둘러쌌다. 에레쿨은 모든 힘을 소진한 상태였다. 다시 한번 사이오닉 폭풍을 사용할 수는 없다. 마음속으로 분노와 긍지가 섞인 비명을 내지르며, 에레쿨은 저그를 향해 몸을 던졌다. 저글링과 히드라리스크들의 수많은 이빨과 등뼈들이 에레쿨의 살결을 파고들어와 그를 잠식했다. 에레쿨의 형체가 사라질때까지...
주라스는 몇 세기 동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기술자들은 정체 상태에서 깨어나면 조금 불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곤 했다. 거짓말이었다. 소름 끼치도록 지독한 기분이었다. 그의 피부, 눈, 신경이 모두 아팠다.
주라스는 그의 함선이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만 깨어나도록 예약된 상태였다. 지금이 그가 이 거대한 함선을 설계한 이후 가장 꿈꿔왔던 그 순간이었다. 이성을 가진 외계 지성체와의 접촉은 프로토스가 다시 한번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꽃피울 수 있게 할 것이며 문화의 황금기를 가져올 것이다. 주라스는 그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주요 제어 콘솔로 조심스럽게 이동해 함선의 상황판을 확인했다. 함선의 보호막은 최대치였고, 무기도 발사 준비 상태였다. 주라스는 본래 모선을 평화로운 탐험용 함선으로 설계했으나, 우주는 위험한 곳이었기에, 튼튼한 보호막과 강력한 무기를 싣고 있었다. 또한 프로토스가 설계한 가장 무시무시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주라스는 무기 장착에 반대했으나 기사단 계급에게 저지당했다. 기사단은 몇몇 함선을 프로토스 무적 함대를 이끄는 지휘함으로 개조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주라스는 그가 아끼는 초창기 함선인 모라툰 만큼은 탐험을 위해 간직했다.
그는 앞으로 무기들이 절대 필요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그에게 있어 한 종족이 다른 종족을 이해하고, 나누고, 배우기 위한 것 외의 다른 목적으로 행성 사이를 오가는 모습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프로토스는 절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라스는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이 생각을 되뇌었다. 프로토스는 절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그는 콘솔을 만졌다. 잠시 후에는 새로운 종족과 첫 대화를 하리라. 새로운 사진이 떠오르자마자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유휴 상태의 모선에 보내는 단순한 고속 송신이었다. “돌아오라. 우리는 패배했다.”
두려움이 주라스의 가슴 속에 휘몰아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칼라를 찾았고 위안 어린 손길을 느꼈다. 동족들이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그는 눈을 감고 어둠 속을 뚫고 가는 전함 속에 다른 동지가 있나 확인해보았다. 비록 그가 여행자였고 고독에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동족의 따스함을 느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명상 자세를 취했다. 주라스는 이 여행의 끝에 그가 무엇을 발견할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걱정 속에서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의 동족들은 첫 번째 자손이었다. 그들에게는 칼라가 있었고, 대의회도 있었다. 그 어떤 어려움이라도 극복할 수 있었다.
많은 생각이 주라스의 머리 속을 떠돌며 그의 기억 깊숙한 곳을 떠돌았다. 그는 사이오닉 비명을 들었고, 번쩍이는 불빛을 보았다. 칼라스인들은 동틀녘에 모였고, 이들의 두 거대한 군대가 서로 파괴하고 죽이기 시작했다. 프로토스 연구가들은 보호막으로 보호된 채로 미개한 종족이 서로 쓰러뜨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주라스는 자신의 진심 어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멈춰야만 합니다, 집행관님. 이들은 마치 아이들과 같습니다. 우리 무기를 사용해 그들의 싸움을 멈출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그들이 서로 파괴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주라스는 움찔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가 황폐해진 도시를 걷고 있다. 비스듬히 쓰러진 돌의 파편에 칼라스인들의 시체가 사방에 널려 있었다. 조각난 뼈들이 기이한 각도로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와 노인, 남자와 여자의 시체에서 찢긴 살점을 헤집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두 죽어 있다. 집행관이 분명히 강력한 무기로 경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칼라스인들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프로토스 연구원들을 목표로 삼았다. 칼라스 피의 사냥꾼들은 프로토스의 피를 열망하며, 보호막을 공격했다. 압도적인 숫자에 포위당한 프로토스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강력한 무기를 발사했고, 많은 칼라스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칼라스인들은 이후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 프로토스를 공격했다. 전쟁이 발발했고 거신이 출격했다. 이 모든 결과로 100,000여 명의 칼라스인들이 죽었다.
훗날 주라스는 가장 번창했던 칼라스의 도시를 홀로 거닐며, 너무나도 일찍 생을 마감한 수많은 이들의 존재를 마음 속에 아로새겼다. 그리고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프로토스가 궁극의 무기를 다른 지적 생명체에게 사용했음을,
그리고 그 무기를 제작한 자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그는 끈질긴 발신음에 몽상에서 벗어났다. 모라툰은 진로를 변경하기 위해 행성계로 차원 이동했다. 그리고 프로토스 전초기지를 감지했다. 그는 아직 아이어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함선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지들을 태우는 것도 좋은 생각일 거라 생각했다. 단순한 차원 이동은 직접 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복잡한 업무는 선원을 필요로 할 터였다.
주라스는 함선을 수동으로 조종해 사미쿠 행성의 대기권에 진입했다. 그는 오랫동안 정체상태에 있었다. 오늘날의 프로토스는 얼마나 변했을까?
마르툴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가시더미가 그녀를 쫓아 날아왔다. 히드라리스크였다. 그녀가 공중에서 회전하자 그녀의 신경이 확장되었고, 그녀의 손등 속에 숨어 있던 칼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날이 히드라리스크의 하복부를 찔러 들어갔다. 칼날은 엄청난 속도로 살점들을 베어나갔고 보랏빛 혈액 같은 액체가 그녀 주위에 흩날렸다. 마르툴은 무릎 앉은 상태로 착지하고 양쪽에서 자신을 공격해 올 거란 사실을 알았기에, 등뼈 뒤로 몸을 숙이고 다음 괴물을 향해 굴렀다. 사방에서 광전사들이 자비를 모르는 이 저그들을 격퇴해나가고 있었다.
이대로 버틸 수는 없다.
마르툴과 그녀의 동지들은 최근 칼라의 변화를 느꼈다. 기묘하고 불편한 느낌이었다. 아이어에서 오기로 했던 지원군은 이미 늦어도 한참은 늦은 상태였고, 불길한 상황의 연속은 마르툴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변방 행성인 사미쿠는 이들이 투쟁해 지킬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녀의 왼쪽으로 줄라타가 저글링들 사이로 치고 들어갔다. 그의 검은 적들을 수십 번 찌르고 베었으나, 벌떼같이 몰려드는 저글링들에 그는 곧 증발해버렸다. 마르툴은 일어서서 그녀를 향해 뛰어드는 괴물들을 향해 양쪽으로 검을 뻗었다. 사이오닉 검에 저글링들이 관통되어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보호막이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불길한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마르툴이 발 밑의 진동을 느끼자마자, 몇 미터 떨어진 진흙탕 속에서 히드라리스크 세 마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검을 들어 올리고 뒷걸음쳤다. 히드라리스크는 그녀의 행동이 공포에서 오는 것이라 착각하고 턱을 딱딱 부딪치며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히드라리스크들은 그들의 뒤에서 뛰어오는 광전사 두 명을 보지 못했다. 순식간에 두 히드라리스크가 바닥에 나뒹구며 몸을 떨었다. 마르툴은 최후의 일격을 위해 낫을 연상시키는 히드라의 팔을 살짝 밟고 뛰어올라 침을 흘리는 히드라의 입 뒤로 날아올랐다. 그녀는 히드라의 머리 뒤로 넘어간 상태에서 히드라리스크의 두개골에 검을 찔러 넣어 두 동강냈고, 쓰러져가는 히드라리스크 뒤로 우아하게 착지했다. 마르툴의 다리에는 한쪽으로 내려가는 긴 상처가 근육 깊숙한 곳까지 나 있었다. 지평선 뒤로 저글링들 무리가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그녀가 일어섰다.
갑자기 바람이 차가워지고,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덮었다. 하늘은 세 개의 어마어마한 철의 날개를 가진 거대한 비행접시로 가려져 있었다. 금빛과 파란빛을 띠는 비행선은 보호막으로 반짝거렸다. 마탈은 프로토스 군대가 출격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비행선과 차량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종류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무기로 뒤덮인 이 비행선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며 완벽한 고요 속에서 회전하고 있었다.
주라스는 공포감을 느끼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함선의 상황판은 아래의 참상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분화구와 파편들로 가득 찬 전장 곳곳에 죽은 프로토스 광전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있는 작은 광전사 무리는 언덕 위에 외계 생물체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외계 생물체들이 프로토스와는 확연히 다른 형체를 가졌기에 주라스는 즉각 이 외계 생물체들이 다른 종족들을 흡수했을 거라 단정 지을 수 있었다. 그보다 주라스는 이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텅 빈 감정과 허기가 그를 덮쳤다. 뭐든지 먹고 흡수하고자 하는 욕망만이 느껴졌다. 이들은 태생부터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산중턱의 이 생물체들은 더 뛰어난 지성체의 명령을 받들기 쉽도록 단순한 신체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목적지도 없이 사방으로 이동하며 무참히 싸웠다. 프로토스를 공격하듯 동족들을 공격했다. 자신들을 이끌던 지성체가 그들을 버린듯했다.
확실한 것은 주라스가 잠든 사이에 프로토스가 다른 지성체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학살이었다.
피와 끈적끈적한 혈액 같은 액체가 섞여 흐르고 살덩어리와 뼈대들이 그을린 잡석 속에 삐쳐 나와 있었다. 외계인이 갈고리 같은 팔을 휘두르자, 프로토스 보호막이 불빛에 번쩍였다. 또다시 프로토스의 무기가 외계 지성체에 사용되고 있었다.
주라스는 불타오르는 칼라스인의 시체를 뒤로한 채 텅 빈 도시를 걷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주라스는 함선을 전장 위로 이동시켜 전장을 어둠 속에 뒤덮었다. 두 종족이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았기에 순간 기이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외계인들은 곧 공격을 재개했다. 고통의 안개 사이로 주라스는 쓰러지는 광전사들의 사이오닉 비명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비명이 주라스를 움직였다. 그는 그의 정신에 닿은 프로토스의 정신을 읽기 위해 대화를 요청했다.
즉각 날카로운 응답이 돌아왔다. “나는 사령관 마르툴이다. 그대의 이름은 주라스인가. 어디서 왔지? 그리고 왜 여기에 온 건가?”
“나는 연구원이다.” 주라스가 답했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어쩌다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는가? 저 생명체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가?”
“당신 미쳤나? 무기가 있다면 지금 사용해라!”
“이 함선의 무기들은 자기 방어용이다.”
“우리는 포위됐다. 저그가 죽든 우리가 죽든 둘 중 하나다.”
주라스는 그녀의 말이 옳다는 것을 확인했고, 프로토스 동지들이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게다가 아래 보이는 생명체들은 그들을 인도하는 지성체로부터 버려진 상태였다. 직접 숨을 끊어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으리라. 주라스는 떨리는 손으로 모라툰의 케이다린 수정을 발동시키고 정화 광선 발사를 준비했다. 공기 속의 분자가 이온화됨에 따라 전장에 치직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함선의 밑 부분에서 빛이 사라지는 듯하더니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뿜어져 나왔다.
주라스는 적들이 소멸하자 기뻐하는 광전사들을 느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순수한 에너지가 피로 물든 질퍽한 전장 위로 쏟아졌다. 광선을 맞은 저그는 찢어져 몸부림치며 괴로워했다. 몇몇 생명체는 존재도 알아볼 수 없이 사라져버렸다.
주라스는 언덕 주위의 공간을 정리하고 함선을 내린 후 단거리 순간이동 광선을 발사했다. 순간이동 광선을 발견한 광전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자 포위됐던 프로토스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사방에서 저그가 뛰어들어왔다. 광전사는 이들 사이로 검을 휘두르며 뚫고 들어갔지만 몇 명은 실패하고 말았다. 주라스는 프로토스가 하늘로부터 내리쬐는 안전한 푸른 빛의 기둥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았다. 광전사들이 소환 장치에 다가서자 모선의 은폐 능력이 발동해 그들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젊은 광전사 사령관인 마르툴은 가장 먼저 소환 장치에 도달했으나, 모든 광전사들이 탑승하기까지 탐욕스러운 외계인들을 처치했다. 주라스는 동지들이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모라툰의 소용돌이나 시간 균열과 같은 궁극의 무기를 사용할 수 는 없었으나, 정화 광선만으로도 외계인들과의 거리를 벌리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 광전사가 관문에 도달했다. 추적하던 저그 떼가 들이닥쳤다. 마르툴은 이들 중 둘을 베어버렸다. 마지막 광전사가 은폐 지역 바로 밖에서 서두르며 도움을 요청했으나, 갈고리 같은 팔이 그를 잡아채더니 들끓는 저그의 살덩어리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마르툴이 검을 휘두르며 갈고리 팔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광전사는 빽빽이 밀집된 외계인들 사이로 끌려들어갔다.
마르툴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검을 휘두르며 광전사를 향해 달려들어갔다. 그녀가 이미 셋, 넷의 저그를 쓰러뜨렸지만괴물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광전사는 혼돈 속에 사라졌다. 마르툴은 전우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녀의 검으로 커다랗게 포물선을 그리고는 은폐장 속으로 돌아갔다.
마르툴은 함교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밑에 놈들이 아직 남아있다, 놈들을 제거해야 한다.”
“감사할 필요는 없다, 사령관,” 주라스가 답했다. 비록 칼라로부터 안심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남들과의 교류에서 습관적으로 느끼던 불편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부탁하는 게 아니다.” 마르툴이 말했다.
이곳은 주라스의 함선이었다. 그가 설계했고, 그가 조종한다. 주라스는 이 젊은이를 구하는 데 함선을 사용했지만, 더 이상의 학살에는 사용하지 않을 참이었다. 만약 이 광전사가 그녀는 전사고 자신은 과학자이니 겁에 질려 자리를 비켜줄 거로 생각했다면 큰 오산일 터였다.
마르툴은 주라스에게서 안도감이 느껴지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저 괴물들이 우리 전사들을 죽였다. 모두 내 동지들이다. 그리고 당신은 놈들을 쓰러뜨릴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린 지금 전쟁 중이다.”
“내가 널 구했다. 사령관이여. 지금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어로 갈 것이다. 그리고 대의회와 이야기하겠다. 우리는 저그에 대해 더 배워야 한다. 아마 그들과 부딪치지 않고 평화를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 거다.”
“평화 따위는 없다,”
“내가 대의회와 직접 이야기하겠다.”
마르툴은 몸을 돌려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럼 일단 우리를 아이어로 데려다 달라. 난 선원실에서 함선의 설계도를 보고 있겠다.”
“내게서 모라툰을 뺏을 생각은 하지 마라. 누가 뭐래도 내가 너보다는 모라툰을 잘 알 테니. 그리고 대의회에게는 내가 직접 답하겠다.”
“과학자여, 당신은 동지들과 너무 오래 떨어져 서서히 미쳐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칼라스인들을 쓰러뜨렸을 때,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다. 우리 생각에는 동기만이 중요하지, 다른 선택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못을 깨달았을 때, 때는 너무 늦었다. 일단 한번 외계 지성체를 파괴하고 나면, 다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저그가 끔찍해 보이는 만큼 우리는 그들을 더 연구해야 한다.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너무나도 중대한 일이다.”
마르툴은 주라스를 잠시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엔 분노와 측은함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돌리고 함교를 떠났다.
주라스는 모라툰을 상승시켜 저그와 황폐함으로 가득 찬 행성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뜨렸다. 그는 함선과 행성 사이의 우주를 멀찌감치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그가 발견한 은하계는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모라툰은 가장 먼 행성인 알레운의 궤도 밖에 있는 고향 행성계로 순간이동했다. 모처럼 함교가 활기에 차 북적거렸다. 광전사들이 다양한 장비와 콘솔에 붙어 에너지 수준과 수정의 파동을 확인했으며, 무기를 정비했다.
마르툴은 주라스 옆에 섰다. 둘 사이에는 아직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주라스는 확실히 은하계가 예전보다 더 강경하고 폭력적인 곳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프로토스도 함께 변한 걸까. 아니, 그에 대한 대항으로 변할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옆에 선 젊은 광전사가 그 증거였다. 아마도 주라스에게서 풍기는 안정감이 다른 동지들의 강경함을 어느 정도 무마시키는 것임이 틀림없었다.
마르툴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주라스가 궁금증 어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어,” 그녀가 말했다. “아이어와 칼라.”
주라스는 깨어난 순간부터 자신을 진정시키는 칼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어에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가 기대했던 10억 프로토스 동지들의 따뜻함과 포근함 대신 공허함만이 느껴졌다. 무수한 프로토스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들의 빈자리가 칼라에 큰 구멍을 남겼다.
주라스는 자신도 떨고 있음을 느꼈다.
생각을 비운 체, 주라스는 고개를 돌리고 마르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것은 일종의 공감대를 표시하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두 프로토스는 끔찍한 현실에 억장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들이 접촉하자 드문 현상이 일어났다. 주라스는 마치 칼라를 통해 서로를 만난 것처럼, 마르툴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동지들을 지키려는 그녀의 어마어마한 열망, 쓰러진 전우들에 대한 연민, 고통을 안겨준 저그에 대한 분노가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의 중심에는 감정 없는 외계 생명체인 저그 군단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가 깔려있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라스는 콘솔로 몸을 돌렸다.
“우리는 반드시 아이어에 가야만 한다,” 그가 말했다. 마르툴과 다른 프로토스들은 답하지 않았지만, 긍정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함선을 행성계로 이동시키고 아이어를 향해 발진했다. 그의 두려움이 커졌다. 먼 거리를 두고 행성이 평화롭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르툴은 절뚝거리며 무기 콘솔로 이동해 모라툰에 장착된 위험천만한 무기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잠시 주라스를 응시했다. 순간 긴장감이 돌아왔다. 그녀는 주라스의 함선에 장착된 무기를 당장이라도 사용할 태세였고, 주라스는 그녀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그에게도 희망은 있어야 했다.
그들은 아이어의 대기권을 뚫고 구름 근처에 도달했다.
갑자기 날개 달린 저그가 구름을 뚫고 튀어나와 함선을 둘러쌌다. 포식귀가 부식성 산을 내뱉으며 정면에서 난입했고, 뮤탈리스크는 측면을 둥그렇게 둘러쌌다. 10여 마리의 갈귀가 보호막에 몸을 던지며 폭발했다. 수많은 뮤탈리스크들이 날개를 퍼덕이고 괴성을 내지르며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지점을 찾아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공격입니다! 보호막이 수정이 재생할 수 있는 양보다 빠르게 약화되고 있습니다. 반드시 저 괴수들을 쓰러뜨려야 합니다!”
“물론이다.” 마르툴이 말했다. 그녀의 손이 춤을 추듯 콘솔 위를 노닐었다. 그리고는 멈췄다. “무기가 응답하지 않는다. 주라스, 당신 함선에 문제라도 있는가?”
“없다.” 주라스가 벌떼처럼 몰려드는 저그 사이로 함선을 조종하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직접 무기 시스템을 무효화했다. 우리는 동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돕기 위해 왔다. 대량 학살을 수행하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우린 아직 저그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
“내 말이 맞았군. 당신은 미쳤어! 저 갈귀들이 우리 보호막을 파괴하면 뮤탈리스크와 포식귀가 당신이 아끼는 이 함선을 부숴버릴 거야!
“현재 보호막, 80% 남았습니다.”
“이 정도 피해는 모라툰이 충분히 견딜 수 있다. 구름층을 거의 다 지났다.” 주라스가 말하며 속도를 올렸다. 저그 몇 마리가 뒤로 쳐졌다. 태양 쪽에서 새로운 편대의 괴생물체들이 공격태세로 덤벼들었다.
주라스는 속도를 최대한 올렸다. 하지만, 거대한 모선은 속도를 고려하여 설계되지 않았고, 저그는 이 결점을 쉽게 이용했다.
“보호막 60%”
“무기를 사용해라, 주라스!”
“내가 만든 무기가 학살을 위해 사용될 순 없다!”
10여 마리의 저그가 독충의 구름으로부터 몰려들었다. 주라스는 관성 무효화기를 잡아당겨 함선을 급강하시켰다. 광전사들은 추락에 대비해 콘솔을 꽉 잡았다.
그들은 가장 낮은 구름층에 도달했고 그곳에서 함선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더 주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된 갈귀들의 자폭 공격을 받았다.
“보호막 40%!”
주라스는 모라툰의 균형을 잡고, 속도를 올리고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조금만 더 가면 구름층 아래로 내려간다.’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신경과 두개골이 만나는 뒤통수 부분에 차가운 살기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주라스는 콘솔에 비친 마르툴이 자신의 뒤에 꼿꼿이 서서 자신의 정수리에 사이오닉 검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고향행성이 저그에게 공격받고 있다. 놈들과 싸워야 한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무기 시스템을 가동해라.”
“그럴 순 없다, 사령관. 반드시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별의별 크기와 형태의 저그가 모라툰의 뒤를 쫓았다. 10여 마리가 더 나타나 급습을 감행했고, 더 많은 수가 공중으로 솟구치며 이들을 쫓았다
“보호막 20%.”
“죽여버리겠다.”
“그러면 무기 시스템을 영원히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럼 자네가 우리를 “끝없는 전쟁”의 그때로 돌려놓는 셈이 되겠군.”
저그는 구름층 아래에 몰려들었고, 프로토스의 고향행성이 그 표면을 드러냈다. .
흐느적거리는 회색 생체 물질이 지층 전체를 덮고 있었다. 생체 물질이 덩어리진 부분이 곳곳이 보이는 한편, 사원, 집, 대학들과 같이 한때 그 위풍을 자랑했던 건물들은 물론이고 숲, 호수, 산들도 없었다. 힘줄이 솟은, 숨쉬는 듯 고동치는 기분 나쁜 물질들이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작은 생물체가 그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불규칙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마르툴이 틀렸다. 고향행성은 공격받는 게 아니었다. 이미 점령당한 상태였다.
“보호막 10%.”
“무기를 발동시켜!”
새로운 저그 무리가 함선으로 날아와 함선의 두꺼운 장갑 안으로 파고들기 위해 보호막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주라스의 눈이 지표면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에 고정되었다. 프로토스 한 명이 모라툰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숨어 있었으나, 구조를 바라며 은신 상태에서 벗어난 듯했다. 주라스는 함선을 밑으로 내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표시를 통해 그녀가 기공이나 장인급의 칼라이 계급임을 알 수 있었다.
저글링들이 들끓어 오르듯 지표면 위로 올라와 그녀를 둘러싼 뒤 갈기갈기 찢어버리기 시작했다. 주라스는 그녀를 구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는 공포에 사로잡힌 무언의 외침으로 절규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놈들은 그녀를 죽일 필요가 없었다. 분명히 아무런 이득도 취할 수 없는 행위였다.
놈들은 그녀 위를 덮쳤고, 그녀의 피가 꿈틀거리는 저그 무리 위로 뿌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순간 주라스의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주라스는 주위에서 위급 상황을 알리는 자들을 감지했고, 함선이 무차별한 공격에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도 느꼈다. 또한, 마르툴의 검이 그의 정수리를 더 가깝게 겨누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주라스가 콘솔로 직접 눈으로 확인한 사실보다 중요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저그가 무방비 상태의 프로토스를 처치했고, 이는 놈들에게 아무런 이득도 없을 행동이었다. 단순히 그녀가 저그가 아니기에 발생한 상황이었다.
주라스는 다른 지적인 생명체가 자신의 욕구를 그 무엇보다도 우선시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지성을 가진 생물체에게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일반적인 상식은 가지고 있으리라 믿었다. 시간이 흐른 뒤 주라스는 마침내 알 수 있었다. 저그에게는 감정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상식도 없다. 저그가 아닌 것은 무조건 파괴한다. 주라스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놈들은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모든 면에서 정 반대라는 사실을…
어떤 면에서 따져봐도 이들이 자신의 적이라는 사실을…
주라스는 소용돌이, 시간 균열, 그리고 웜홀 전환 장치를 작동시켰다. 모두 마르툴이 처음 보는 무기 시스템이었다. “발사해라!” 그가 외쳤다. “시스템이 준비됐다. 놈들을 죽여라. 모두 죽여버려라.” 마르툴은 비틀거리며 그녀의 콘솔로 돌아갔고, 모든 광전사들이 그들의 특기인 ‘전투’에 돌입했다.
주라스는 모선의 무기가 지상의 역겨운 생물체들에게도 닿을 수 있도록 함선을 낮췄다. 강력한 힘을 실은 빛이 모라툰으로부터 발산되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마침내 모선이 가진 최대의 힘이 개방되었다. 공격을 받은 저그는 몸서리치고, 빛에 사라져 폭발했다. 저그에게서 혈액과 비슷한 물질이 모라툰의 보호막에 뿌려졌다. 저그의 살점과 내장이 함선 밑으로 떨어졌다.
“보호막이 원상 복구되고 있습니다.”
“놈들이 더 오고 있습니다.” 다른 광전사가 보고했다.
“무기 시스템을 준비해라.” 마르툴이 말했다.
“투구를 써라.” 주라스가 말했다. “난 해야 할 것이 있다.” 그는 다른 콘솔로 이동해 상황판에 접속했다. 그리고 다른 모선들이 모라툰과 같은 고속 송신을 받고 막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태양계의 공허한 끝에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모선들은 주라스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행성 지표면 위에 살아있는 생명을 찾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받았다. 그는 정보 중에 저그가 아닌 생명체의 데이터만을 선별했다. 분명 어딘가에 숨어 싸우는 생존자가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 누군가 동족의 운명을 말해줄 수 있는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주라스는 그들을 구출하고 후퇴할 작정이었다. 아이어는 이제 저그의 행성이었다.
주라스와 마르툴은 의료장비 앞에 서 있었다. 이제 모라툰이 어둠을 뚫고 나아가는 모선 편대를 이끌고 있었다. 함선은 최소의 선원만을 싣고 있었다. 그가 전에 구한 광전사들과 아이어에서 구출하여 합류한 생존자들, 그리고 그가 찾은 변방 행성의 요새에서 만난 자들이었다.
함선은 때때로 저그 거대괴수의 습격을 받기도 했으나 함대는 별 탈 없이 순양했다.
프로토스가 마르툴과 주라스 앞에 누워 있었다. 의료장비가 그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하자 그의 눈이 고통으로 흐릿해졌다. 마르툴과 주라스가 그를 발견했을 때, 그의 고통 어린 상태로 왜 아이어를 탈출했는지에 미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으나, 그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전에 의식을 잃었다. 주라스가 찾은 다른 생존자들은 대피하라는 신호는 받았으나 차원 관문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프로토스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지 못했다. 주라스는 급한 마음에 그를 깨워 심문하고 싶어했으나, 마르툴이 프로토스가 충분히 건강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기다리라며 주라스를 말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시간이 왔다.
“모르겠습니다. 전…” 그의 머릿속이 고통으로 흐릿했다. “저는 주로 땅 속에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놈들이 잠복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에서 온갖 기억들이 사진처럼 쏟아져 나왔다. 지하의 비좁은 공간, 저그가 땅을 파고드는 소리. 악몽과 같은 순간들, 어둠 속을 도망치다 구석구석에서 튀어나오는 히드라리스크를 만난 순간, 다친 동료를 버리고 도망친 순간, 찢겨가는 그들의 공포와 고통의 감정들.
주라스는 순간 잠시 뒷걸음쳤다. 그러지 않으면 이 소용돌이치는 악몽에 사로잡혀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또 죽은 사람은 없었나?” 마르툴이 물었다. 그녀가 희망 없는 건조한 말투로 말했다.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그저 너무 먼 곳으로 갔을 뿐입니다.” 프로토스가 생각했다. 주라스는 다시 앞으로 다가왔다. 실낱같은 희망의 불꽃이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차원 관문, 침략 도중에… 암흑 기사가…” 부상당한 프로토스가 기억을 더듬었고, 주라스와 마르툴은 그의 기억을 공유했다. 암흑 기사는 프로토스의 체제에 반하는 자들이었다. 오래 전 아이어를 떠난 변절자들이었다. 이 프로토스,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이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을…열었습니다.”
“어떤 세계인가?” 마르툴이 부상당한 프로토스의 정신에 가볍게 접근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먼 곳입니다.”
“어디인가?” 주라스가 뒷걸음치며 좀 더 긴급함이 묻어나는 말투로 물었다.
“먼…”
“차원 관문이 열었을 때 다른 뭔가를 느낄 수 있었는가?” 그가 강압적으로 물었다. “우리는 동지들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모르겠습니다……”
주라스는 마르툴의 손이 자신의 팔을 잡고, 살짝 뒤로 당기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주라스도 마르툴에 수긍하며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마도 주라스가 그녀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일종의 균형을 가져왔으리라. 하지만, 마르툴 역시 그가 세상을 보는 시야에 균형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의 동족들은 아직 살아있었다. 먼 어딘가에 살아있었다. 주라스와 마르툴은 몇 년이 걸리던 모선을 이끌고 우주의 어둠을 헤쳐나가 동족들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고 프로토스의 손에 모선을 넘길 것이다. 그러고 나면 모선이 저그에게 화염과 죽음을 내릴 수 있을 테니. 놈들에게 당한 만큼 돌려줘야 한다.
주라스는 늘 칼라스 중재 사건에서 얻은 불명예를 씻을 수 있는 외계 지성체를 만나길 꿈꿔왔다. 그리고 그토록 바라던 외계 지성체를 만났다. 하지만, 이제 그의 꿈은 놈들의 파멸을 보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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