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XP에서 연재 중인 북미를 무대로 활동하는 선수 인터뷰 시리즈의 네 번째 주인공은 FXOpen e-Sports의 프로토스 앤드류 안(SLoG)이다.
FXO는 지난 GSTL 참가를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고, 운 좋게 앤드류 안과 직접 인터뷰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앤드류 안은 비록 GSTL에서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결코 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의욕을 불태우며 다음 시즌에 재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던져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앤드류 안.
다음은 앤드류 안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 26살이고 이름은 앤드류 안이다. 한국 이름은 안유진이다.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 교포다. 부모님은 한국에 계시고 큰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한국에 와서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다니다 다시 미국으로 갔다.
▼ 본인의 게임 경력은?
- 초등학교 때 한국에 오자마자 친구들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길래 같이 얼떨결에 하게 됐다. 근데 재밌었고, 계속 하다가 중학교 때부터 공부보다 <스타크래프트>를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니 pG라는 팀에 스카웃 됐다. 마침 학업 때문에 미국으로 돌아간 시기였고, 팀에 들어가 보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 엄하신 큰아버지 몰래 게임을 했다. 당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단 생각에 학교를 빼먹으면서까지 게임을 했다. 그러다 큰아버지에게 걸렸고, 집에서 쫓겨나 1~2주 정도 노숙까지 해봤다. 그 때가 만으로 18살이었다.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어 당장 게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한인 타운에서 일을 시작했고, 2~3년 정도 일하다가 겜블러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정도 상황이 좋아지고 안정적이 되자 대학교도 들어가게 됐고, 매년 여름마다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 나갈 때마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나 OSL, MSL을 봤는데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나도 계속 게임을 했다면 저 자리에 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게임하던 때 강민 형과 친분이 있었다. 강민 형이 환호 받는 모습을 보니 너무 멋져보였다. 3년 전에 IEF 대회에 초청받아서 갔는데 실력이 안돼서 다 졌다. 좌절하게 됐다. 나이를 먹어서 안 되나 싶었는데, <스타크래프트2>에 대한 소식을 접했고, 안정적으로 됐으니 다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출시가 안 되더라.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놀고 있었다. 한국에서 <스타크래프트2>가 출시됐는데 가족들과 있다 보니 하지 못했고, 다시 미국에 돌아간 뒤부터 하게 됐다. 처음엔 테란이 워낙 강해서 게임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 땐 팀 소속이 아니었고, MLG에 출전했는데, 실력이 부족해서 탈락했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 모든 것을 쏟아보자고 결심했고, 3~4월쯤에 민균이의 추천으로 FXO에 들어오게 됐다. 그 때부터 열심히 하고 있다.
▼ 미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연습을 했나?
- 래더를 많이 안하고 사용자 지정 게임을 많이 했다. 조나단 가르누(KiWiKaKi)에게 많이 배웠다. 관전도 하고 많이 알려줬다. 그 선수가 당시 MLG 랭킹 1위였다. 게임을 이해하기 쉬워졌고, 같이 전략도 만들고 하다 보니 실력이 늘게 됐다. 류경현(SeleCT)도 많이 도와줬다. GSL이 미국에선 새벽 3시쯤 시작한다. 밤 11시쯤 일어나서 연습하다가 GSL을 보고 다시 연습하고 그런 식으로 지냈다.
▼ 류경현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 2007년 이탈리아에서 WCG가 열릴 때 같은 비행기를 탔다. 처음엔 계속 눈이 마주쳐서 어색해 했는데, 경현이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경현이는 당시 <워해머> 1위를 차지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경현이는 뉴저지에 살아서 나와 가까웠고, 그 이후로 온라인으로 친분을 쌓았다.
▼ 한국에 왔으니 부모님이 좋아하실 것 같다.
- 2008년에 밥도 잘 못 먹고 해서 건강이 안 좋아 쓸개 수술까지 받았다. 한국에 도착한 첫날 연습 때문에 못 찾아뵀는데, 부모님이 와서 반겨주셨다. 매주 마다 부모님을 뵈러 가고 싶지만 나는 여기에 온 목적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가지 않았다.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뵙지 못했었다. GSTL 스케줄 다 마친 뒤 찾아뵀다. 지금 이 시간을 소중하게 쓰고 싶었고, 지든 이기든 최선의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후회하기 싫다.
▼ 바뀐 생활 습관이나 문화적 차이에 어려움을 느끼진 않나?
- 미국에서는 혼자 살았다. 막상 사람들과 같이 지내도 내가 워낙 사교성이 좋은 성격이고 남들이 뭘 하든 잘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 큰 문제는 없었다. 단체 생활에서 생기는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문제들이 힘들었는데,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지금은 괜찮다. 한국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도 이런 환경이라면 다 비슷할 것 같다.
▼ 한국에 와서 어떻게 연습을 했나?
- 막상 한국에 도착해서 래더를 할 때 왜 왔나 싶을 정도로 거의 다 졌다. 2~3일 동안 지다보니 의욕이 사라지기도 했다.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막상 현실과 마주치니 벽이 있더라. 그래도 따라잡을 수 있단 느낌은 들었다. 계속하다보니 10%였던 승률이 조금씩 올라가게 됐다. 50% 쯤 됐을 때 조금씩 자신감을 찾게 됐다. 이형섭과 친해졌고, 새로 사귄 선수들에게 많이 배우게 됐다. 이겼을 때도 완벽환 것은 없다고 생각했고, 이기든 지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하나하나 물어보게 됐고, 조금씩 고쳐나갔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시간이 좀 더 있다면 언젠간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한국에 오니 해외 게이머들 반응은 어땠나?
- 몇몇은 질투를 하겠지만, 대부분은 축하해준다. 많이 부러워한다. 내가 미국 시민권자이다보니 그쪽에선 외국인으로 쳐준다. 이왕 하는 거 잘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 한국에 와서 친해진 사람은?
- 형섭이와 학수를 비롯한 fOu 친구들. 이제 FXOKorea 팀으로 함께하게 됐다. 그 친구들이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 같이 지내는 해외 선수들은 어떤가?
- 케빈 라일리(qxc)는 한국말을 배우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 한국 음식을 처음엔 조금 꺼려하는 것 같더니 이젠 제육덮밥만 먹는다. 한마디 하면 곧바로 받아 적고,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브래들리 시무어(tgun)의 경우엔 아직 적응을 못해 맥도날드를 주로 이용한다.
▼ 팀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 제육 덮밥이나 소고기 덮밥. 치킨도 좋아한다. 케빈 같은 경우엔 닭볶음탕도 좋아한다. 처음엔 매워서 못 먹더니 나중엔 즐겨 찾더라.
▼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즐겼나?
- 다른 게임을 즐기거나 웹서핑을 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 해외 선수들은 클럽을 좋아하지 않나?
- 스케줄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도 친구들이 목동 근처에 와서 간단히 술 한 잔 하는 정도로 만났다.
▼ 즐길 시간이 부족해 아쉬웠을 것 같은데?
- 스케줄이 우선이고 연습이 중요했다. 처음부터 잘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않았고, 매주 마다 발전해나가는 것이 보였다. 스케줄 소화가 힘든 것에 대해 나는 한국 사람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어려웠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다. 쉬는 시간에도 게임을 많이 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김영일 선수와의 경기에서 핵 공격을 당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에서 봐왔던 게이머들과 직접 게임하게 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김승철, 이정훈 선수와도 게임을 했는데 정말 많이 졌다. 똑같은 걸 해도 뭔가 다르다. 포스에 밀린다. 가끔 한 번씩 내가 이기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리고 케빈과 칼하고 같은 방을 썼는데 내가 코를 많이 곤다고 해서 둘이 다른 방으로 옮겼다. 마지막 날엔 숙소 출입문 비밀번호를 잘 못 눌러서 경보음이 울렸다. 두 시간 동안 계속 울려서 당황했다. 그래서 영재(기사도) 형을 깨우려고 방문을 두드렸는데도 안 일어나시더라.
▼ GSTL 마지막 경기에선 케빈의 올 킬로 승리를 거뒀는데?
- 첫 경기는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저그 유저가 아니라 도움은 못 줬지만 연습상대를 많이 부쳐줬다. 의외로 연습 때 많이 이기더라. 상대 팀 선봉이 코드A 예선 때 나를 떨어뜨린 선수여서 복수해달라고 했다. IM을 상대로 1승 했다는 자체가 좋았다. 2세트에 최용화 선수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예측이 틀려서 당황했다. 상대 선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연습한대로 해서 무난하게 이기더라. 케빈이 이길 때마다 더 자신감 있게 하더라. 정말 좋아서 혼자 일어나 박수도 치고 했다. 케빈이 인터뷰할 때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손을 떨더라. 그것을 보고 울컥하기도 했다. 케빈이 지면 테란 상대로 내가 출전 하려고 했다. 경기 후 서로 말없이 쳐다보니 그간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 마지막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서 아쉽지는 않았나?
- 케빈이 3세트에서 지면 내가 나가려고 했다. 원래 긴장 안하는데, 그 땐 이상하게 긴장이 되더라. 그래서 민균이한테 나가라고 했는데, 케빈이 또 이기더라. 아쉬움 보단 이긴 것이 더 중요하다. 물론 나가서 1승이라도 해봤으면 좋았을 테지만, 그보다 중요한 승리를 얻었기 때문에 괜찮다.
▼ IM의 신인 선수기용에 대해 말이 많았다. 직접 상대한 입장에선 어떻게 생각했나?
- 처음엔 ‘뭐지?’라고 생각했지만 신인이든 아니든 IM은 버거운 상대다. 우리가 부족한 상태라 상대가 누구든 가리지 않았다. 우리가 가장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을 따질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열심히 해서 최고의 모습만 보여주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운 좋게 이긴 것 같다. 아무리 신인이라고 해도 IM 팀인데, 지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잘하는 선수를 내보냈을 것이다. 재덕이 형은 GSL 경기가 있어 안 나올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출전해서 1승을 거두면 출전하겠다고 했다. 맵도 내가 원하는 것을 쓰고, 장비도 스튜디오에 설치된 기본 장비로 써서 이겨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재덕신’이니 영광이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장난이었지만 나도 좋다고 했었다. (웃음) 그리고 선수 기용에 대해선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예를 들어 ZeNEX도 해외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우리가 첫 경기에서 StarTale에게 4:2로 진 뒤에 ZeNEX는 ‘그보단 쉽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올킬을 당했고, 그 이후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상대를 얕잡아 본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생각하다 혼났다. 그래서 그 이후로 누구와 붙든 최선을 다하겠다고 생각했었다.
▼ 해외 선수들은 한국에 와서 실력이 향상 됐다고 느끼는가?
-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 나 같은 경우엔 아직 만족을 못 하겠다.
▼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 유일하게 좋아하는 선수가 정종현 선수다. 실력 여하를 떠나 노력하는 느낌을 받았고, 정종현 선수처럼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다. 실력이야 많이 하면 늘게 되지만,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간 떨어진다. 능력보단 노력하는 자세가 닮고 싶었다.
▼ 해외 팀리그에선 가끔 2:2 팀플레이를 한다. GSTL에서의 팀플레이 필요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 보는 사람 입장에선 재밌다고 생각한다. 더 신기하고 재밌는 전략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치즈러시가 나올 수도 있지만 모두가 아이디어라고 본다. 그런 점에서 좋게 본다. 팀플레이는 아직 더 나아가야 할 단계다. GSTL에서의 필요성은 아직 모르겠다. 아직까지 그럴만한 영향력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이 더 많이 알게 된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1년 정도는 더 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 ‘Sup Son’이란 표현을 자주 쓴다. 무슨 뜻인가?
- 친한 사람끼리 ‘무슨 일이니 애송아’ 뭐 이런 식으로 하는 장난 섞인 인사다. ‘What's up’같은 느낌이랄까. 나쁜 뜻은 아니다. 내가 8년 전부터 써오던 표현이었다. 실생활과 채팅에서 자주 썼는데, 유명한 친구들이 쓰다 보니 금세 퍼지게 됐다. 뿌듯하다. (웃음)
▼ Dignitas에서는 Sup Son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 당연히 저작권료를 받아야한다. 경현이가 알아서 챙겨줄 것이다. (웃음) 농담이고, 돈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재미로 한 것이기 때문에 상관없다.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다.
▼ 팀 감독인 조쉬 덴트리노스가 국내 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어떤 사람인가?
- 비즈니스 맨이다. 처음에 채팅으로 대화를 나눴을 땐 거리감도 들었다. 그래서 초반엔 서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 전화 통화를 하고, MLG에서 직접 만나고, 한국에서 같이 지내다보니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마음도 좋고 때와 장소도 가릴 줄 안다.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같은 사이다. 조쉬에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뛰어난 선수는?
- 한국에선 재덕이 형과 정종현 선수. 해외에선 크리스 로란줴.
▼ 한국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해외 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 당연하다. 한국보단 훨씬 쉬울 것 같다. 하지만 하도 진 기억밖에 없다. 이기는 법을 까먹었을 정도다. 대회하기 전에 이기는 습관을 좀 들인 뒤 가면 수월하지 않을까 한다. 하도 지니까 이젠 전략이 먹힐지 안 먹힐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선 경기하기가 두렵다. 무대 공포증이 있다. 원래 올인 같은 것은 못하는 스타일인데 결승 때마다 떨려서 혼자 쇼하고 올인하다 진다. WCG 미국대표 선발전에서 항상 그런 식으로 졌다. ZeNEX 김영일 선수와 경기할 때 6차관을 하려다 막혔는데, 포기하지 않아 경기를 더 끌어갈 수 있었다. 판단력이 많이 는 것 같다. 정말 많이 배웠다.
▼ 프로게이머 생활은 언제까지 할 계획인가?
- 학업과 게임을 병행하는 선수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성공 못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쏟아 부어도 결과가 좋게 나올까 말까인데, 그렇지 않으면서 승리를 기대하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걸 쏟아 붓고, 그 뒤에 판단할 것이다. 후회는 없을 것 같다. 나이에 대한 걱정은 안한다. 몇 살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최선을 다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언제든 나오기 때문이다.
▼ 한국에 와서 활동할 생각은?
- 일단 국적은 미국이고 숙소도 말레이시아에 있다. 한국에서 활동하려면 지낼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당장은 힘들 것 같다. 자주 올 것이다. 한국은 가장 연습하기 좋은 곳이다. 마다하진 않는다.
▼ 한국보단 미국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할 수도 있는데?
- 돈을 벌기 위한 것이었다면 굳이 게임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필요하면 영어를 가르쳐도 되고, 아니면 겜블러 생활을 계속했을 것이다. 나는 프로게이머가 꿈이었고, 지금이 인생에 한 번 뿐인 기회다. 잠깐하고 말 것이면 취미로 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온 것이다. ‘끝나면 다른 거 하면 되지’라는 생각은 아예 안 한다. 정말 큰 결심을 하고 온 것이다. 이번에 나올 때 미국 집도 정리하고 왔다. 옷도 다 버리고 왔다. 서류상으론 미국인이지만, 한국이 훨씬 편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이만큼 내가 노력할 준비가 돼있으니 미숙하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하겠다. 미국에 있는 경현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게임 처음 시작할 때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조나단 가르누에게도 고맙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FXO에게도 감사드린다. 형섭이와 학수에게도 고맙다. 데이빗 킴 형에게도 감사드린다. Sup Son DDE!
글: 이시우(siwoo@playx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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