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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interchill
작성일 2005-11-19 14:41:32 KST 조회 11,566
제목
흐르는 모래의 전쟁
[이미지:501774]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스카라베 성벽 외곽에 운집한 무리들을 말 없이 지켜보며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기세로 실리더스 사막을 향해 작렬하고 있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태양은 군사들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조금의 물러섬도 없이 화염을 토해낼 태세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대열 속에 골똘히 생각에 잠긴 나이트 엘프 하나가 서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에는 감탄을 넘어 존경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종족을 대표하여 아제로스 각지에서 모여든 다른 종족들은 편견 어린 눈빛으로 그녀에게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것은 수 세기에 걸친 나이트 엘프와 트롤, 타우렌 간의 피를 부르는 반목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모든 이들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한결같이 그 나이트 엘프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쉬로마는 작렬하는 태양과 같이 냉정하고 단호하며 한치도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이러한 기질은 지난 몇 개월간 쉬로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끝이 보이지 않는 원정 길에 곁에 있던 동료들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기나긴 여정이었다. 감시자와 시간의 동굴, 청동용과 용기대장, 꿈틀거리는 곤충 소굴, 홀의 파편들과 그것을 지키는 자들, 그리고 고대 용에 이르기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이들은 권력과 지혜, 심지어 무자비한 힘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자 고군분투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단 하나의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천 년의 세월 끝에 마침내 재결합된, 바로 지금 쉬로마의 손에 들려 있는 이것. 흐르는 모래의 홀을 말이다.

결국, 모든 행로의 끝은 실리더스의 스카라베 성벽의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래 전 홀이 산산조각 났던 바로 이곳으로 말이다.

쉬로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용들이 하늘을 뒤덮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끝없이 밀려 들어오는 퀴라지와 실리시드가 나이트 엘프의 군대를 덮쳐 한 가닥의 희망도 보이지 않던 암흑의 시간이었다. 끔찍했던 몇 개월 동안 어느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생각했지만 쉬로마는 여기 이렇게 살아 남아 그때 '흐르는 모래의 전쟁'에서 그들을 구한 신성한 장벽 앞에 서 있다...



* * *




[이미지:501771]
[판드랄 스테그헬름과 발스탄 스테그헬름]


판드랄 스테그헬름이 전투를 진두 지휘했고 그의 아들인 발스탄이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이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실리시드의 공격으로부터 측면을 방어하기 위해 협곡을 선택했다. 쉬로마는 최전선 바로 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마력을 동원하여 재빨리 주문을 걸었다.

협곡 입구 쪽으로 활로를 열기 위해 싸우는 판드랄과 발스탄 곁에는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파수꾼과 수호자, 여사제가 함께 했으며 드루이드도 동행하여 사력을 다해 아군을 치료하고 주문을 걸어 주었다. 전투로 죽은 수백 구의 실리시드 시체가 마치 온 대지를 뒤덮은 듯 보였다. 이것은 실리시드의 침입 소식이 전해지고 판드랄이 군대를 소집한지 불과 며칠 안에 이룬 성과였다.

마력을 다시 얻은 여사제 쉬로마와 그녀의 동료들은 한데 힘을 모아 엘룬의 은총을 염원했고 마침내 눈부신 빛이 협곡 끝을 막고 있던 적군을 섬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바로 그때, 저음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사방을 메웠다. 날아다니는 벌레, 날개 달린 퀴라지들이 하나 둘씩 날아 들어와 협곡 입구를 배회하다가 급강하하여 아군을 지원하던 드루이드들을 공격했다.

판드랄은 쌓여 있는 실리시드의 시체를 넘어 협곡을 빠져 나와 최전선을 탁 트인 사막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하늘에서는 먹이를 낚아채듯 달려들어 발톱으로 공격하는 퀴라지의 울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판드랄은 지원 부대가 산개할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미지:501772]
[라작스]


이때 멀리 산등성이에서는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쉬로마의 눈에는 마치 개미떼처럼 산마루를 넘어 몰려오는 퀴라지 무리가 들어왔다. 키가 우뚝 솟은 덩치 큰 괴물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발톱이 달린 다리를 흔들며 모두를 굽어 살피면서 울음소리로 병정 실리시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요란한 울음소리와 윙윙대는 소리 가운데 지휘관이 내뱉는 '라작스, 라작스...'라는 소리가 들렸다: 쉬로마는 퀴라지의 말을 모르지만 그 소리가 누군가의 이름이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한 무리의 퀴라지가 밀고 들어 올 찰나 커다란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동쪽과 서쪽에서 나이트 엘프 대군이 전장으로 향해오고 있었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고함을 지르며 판드랄과 발스탄은 접근해 오는 적의 심장부를 향해 돌진했다. 새로 도착한 대군이 양쪽 측면을 압박하며 공격하자 양 진영은 서로 충돌하며 서로 뒤엉켜 접전을 벌였다.

쉬로마는 아군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어둠이 길게 드리워지고 밤이 될 때까지 전투는 계속되었다. 살육의 현장 한가운데서 판드랄과 발스탄이 퀴라지 대장을 상대로 사력을 다해 싸웠다.

쉬로마는 날아드는 퀴라지의 공격을 여러 차례 가까스로 피하며 판드랄 부자와 퀴라지 대장의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흘끗 살펴 보았다. 퀴라지의 수가 점차 줄어들자 상황을 눈치 챈 퀴라지 대장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산등성이로 후퇴하여 재빨리 자취를 감추었고 얼마 남지 않은 곤충 괴물들도 이내 섬멸되었다.

그날 밤은 어느 때보다도 삼엄하게 경계를 섰고 싸움에 지친 나이트 엘프들은 휴식을 취했다. 판드랄은 퀴라지가 완전히 물러간 것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 다시 쳐들어 올 거라고 짐작했다. 주변은 쥐 죽은 듯 고요한데 그날 있었던 전장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아 쉬로마는 밤새도록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아침이 밝아오자 군대를 재편성해 산등성이로 향했다. 어제의 치열한 상황과는 정반대로 그곳에서는 섬뜩한 고요만이 있을 뿐이었다. 쉬로마는 지평선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퀴라지도 실리시드도 보이지 않았다. 판드랄이 전진하려고 할 때 전령이 소식을 전해왔다. 그 내용인즉 마파람 마을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판드랄은 마파람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되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을 틈타 어딘가에 남아 있을 퀴라지가 급습할 수도 있다고 직감했다. 도대체 곤충 괴물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심지어 또 다른 적이 공격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발스탄은 아버지의 생각을 눈치 채고 자신이 직접 파견군을 이끌고 마파람 마을로 내려가고 판드랄에게 이곳에 남아 이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적의 공격에 대비할 것을 제안했다.

가까이 있던 쉬로마는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함정일지도 몰라." 판드랄이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발스탄이 대답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기필코 마을을 지키고 승리의 깃발을 올린 채 돌아오겠습니다."

판드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서만 돌아와 다오."

발스탄은 즉시 파견군을 소집했고 판드랄은 출정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쉬로마는 판드랄의 군대가 분산되는 것을 염려했지만 발스탄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501773]
[실리시드 둥지]


그 후 며칠 동안 쉬로마와 여사제들은 도처에 널린 곤충 소굴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실리시드와 한바탕 격전을 벌였다. 아직까지 퀴라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순간 두려움이 쉬로마의 온 몸을 쓸고 지나는 듯했다. 실리시드의 조련사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것은 불길한 조짐이었다. 쉬로마는 발스탄이 걱정되었다. 조바심을 내는 반드랄을 안심시키면서도 그녀 역시 하루에 몇 번씩 발스탄이 돌아오지나 않을까 조용히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셋째 날, 정오의 해가 바로 머리 위에 이르자 퀴라지가 다시 공격해 왔고 그 수는 이전보다 훨씬 많았다. 이번에도 역시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공중을 가득 메우면서 멀리 지평선 위로 끝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곤충 무리가 이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그들은 판드랄 앞에 멈춰 서더니 넓게 퍼져 대열을 이루었고 날개 달린 곤충들은 해를 가릴 정도의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 기다렸다.

판드랄은 전열을 정비하고 최전선에서 섰다. 폭풍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선회하고 드루이드들은 미리 곰으로 변신하여 정면을 응시하며 발톱으로 흙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잠시 후 바다가 갈라지듯 곤충 무리 사이로 길이 생기더니 덩치 크고 험상궂은 퀴라지 대장이 부상당한 누군가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퀴라지 군대의 맨 앞에 서서 모두가 볼 수 있게 발스탄 스테그헬름을 높이 들어 올렸다.

놀란 군사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쉬로마 역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판드랄은 마파람마을이 함락되었음을 직감했고 아들이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서 있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두려움과 분노, 그리고 절망이 뒤엉킨 채 아들을 홀로 보낸 자신을 원망했다.

다행히 발스탄은 퀴라지의 발톱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거리가 멀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퀴라지에게 뭔가 말을 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판드랄은 즉시 앞으로 뛰쳐나갔고 나이트 엘프군도 재빨리 움직였다. 하지만 진영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쉬로마는 퀴라지 대장이 손쓰기 전에 발스탄이 구출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퀴라지 대장은 두 번째 발톱을 피범벅인 발스탄 위에 올려 놓더니 그대로 비틀어 쥐었다. 가여운 나이트 엘프 청년의 운명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은 판드랄 뒤에서 나이트 엘프들이 적을 향해 돌격했다. 양측이 맞붙어 싸우자 동쪽에서 모래 폭풍이 불어와 태양 빛을 가리고 모두의 숨통을 조였다. 쉬로마도 폭풍의 위력 앞에 꼼짝할 수 없었다. 쉬로마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고 엄청난 바람이 그녀의 귓가에 휘몰아치자 치열한 전투 소리와 죽어가는 아군의 처절한 비명 소리도 바람에 삼켜져 들리지 않았다.

정신 없는 혼란 속에서도 쉬로마는 희미한 퀴라지 대장의 그림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마치 밀을 수확하는 농부처럼 나이트 엘프를 베고 그 시체를 거둬 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폭풍 소리 속에서 판드랄의 후퇴 명령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후의 일은 사실상 며칠에 걸쳐 일어났지만 상당 부분이 순식간에 일어난 것 같았다. 판드랄은 군사를 이끌고 실리더스에서 벗어나 산을 넘고 운고로 분화구의 분지로 향했다. 실리더스와 퀴라지 군대는 주력부대의 저지에 밀려 판드랄을 쫓지 못했다.



운고로로 피신한 무리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퀴라지 군단이 분화구 언저리까지 왔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는 소문이었다. 대드루이드는 남아있는 군사를 소집하여 철저한 방어를 지시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이제서야 전투와 도주,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고요함이 이들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날 밤 나이트 엘프족은 패배의 쓴맛을 맛보아야 했고 판드랄 스테그헬름의 태도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이 변했다.

쉬로마는 불기둥 마루에서 망을 보는 판드랄의 보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 뒤로 화산 분출구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먼저 세상을 등진 자식을 가진 부모만이 헤아릴 수 있는 깊은 고통과 슬픔을 감춰주는 듯 마치 가면처럼 주황색 용암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퀴라지의 갑작스런 후퇴... 쉬로마는 도통 그 속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그녀는 분화구에 얽힌 전설을 자꾸 떠올렸다. 그 전설인즉, 원시시대 신들이 이곳에 분화구를 만들어 이곳에서 세상을 감시했다는 것이다.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여전히 이곳에 신의 은총이 내리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곤충들의 공격을 막을 계획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칼림도어가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흐르는 모래의 전쟁은 지겨울 정도로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쉬로마는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도 목숨을 부지했지만, 나이트 엘프족은 적에 대항해 늘 자신을 방어해야 했고 언제나 수적으로 열세여서 쫓겨 다니거나 살던 곳에서 내몰려야 했다.

절망을 딛고 일어선 판드랄은 청동용군단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싸움에 개입되는 걸 거절했지만 뻔뻔스러운 퀴라지가 영생의 존재인 노즈도르무의 고향인 시간의 동굴에 공격을 감행하자 입장을 바꾸었다.

노즈도르무의 후계자인 아나크로노스는 악행을 일삼는 퀴라지에 맞서기 위해 청동용군단도 참전할 것을 약속했다. 그리고 싸울 기력이 있는 나이트 엘프 역시 하나도 빠짐없이 대의를 위해 함께 했고 실리더스를 되찾기 위한 작전을 빠르게 진척시켜 나갔다.

용군단이 지원한다고 해도 역시 수적으로는 퀴라지와 실리시드에 열세였다. 이에 아나크로노스는 남아있는 용군단의 후계자들까지 불러 들였다. 녹색용 이세라의 후계자인 메리스라와 붉은용 알렉스트라자의 후계자인 카엘레스트라자, 그리고 푸른용 말리고스의 후계자인 아리고스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미지:501779]
[용군단 합류]


칼림도어의 나이트 엘프 군대가 사막을 건너는 동안 구름 한 점 없는 실리더스의 푸른 하늘에서는 용군단과 퀴라지가 맞붙었다. 엄청난 수의 퀴라지와 실리시드가 끝도 없이 공격해왔다.

쉬로마는 나중에 고대 용들이 속삭이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곤충 종족의 맹공격이 있을 때 퀴라지가 나타났던 저 넘어 고대 도시에서 끔찍한 고대의 존재를 암시하는 무언가를 봤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때문에 용군단과 판드랄이 무모한 최후의 계획을 꾸미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계획이란 다름아닌 도시 내의 퀴라지를 견제하면서 좀 더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때까지 놈들을 가둘 장벽을 세우는 것이었다.

네 용군단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대한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쉬로마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퀴라지의 시체를 피해 판드랄 뒤에 바짝 붙어 걸었다. 하늘에서는 용군단이 곤충 병사들을 가뿐히 해치웠다. 한편에선 나이트 엘프들과 용이 움직이는 장막이 되어 퀴라지를 안퀴라즈 도시로 물러서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성문에 가까워지자, 전세는 역전되었고 모두가 한데 뭉쳐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더 이상 밀어붙이는 건 불가능했다. 메리스라, 카엘레스트라자, 아리고스는 도시로 들어가 아나크로노스, 판드랄 그리고 다른 드루이드들과 여사제들이 마법 장벽을 세울 때까지 퀴라지를 붙잡아 시간을 끌기로 했다.

세 마리의 용과 동료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퀴라지 군단이 있는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문 밖에서는 판드랄이 드루이드를 모아 아나크로노스가 마법에 걸린 장벽을 소환할 때 힘을 합하도록 지시했다. 한편, 문 건너편에서는 세 마리의 후계자 용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퀴라지의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져갔다.

쉬로마는 기운을 모아 엘룬의 은총을 염원했다. 그러자 그들 눈 앞에 장벽이 세워지고 사막 깊숙이 박혀있던 바위와 돌 그리고 나무 뿌리가 솟아 그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장벽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하늘을 날아 장벽을 넘어보려던 날개 달린 곤충들도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부딪혀 통과할 수 없었다.

벽 바깥쪽에 남아있는 퀴라지 군사도 순식간에 해치웠다. 퀴라지, 나이트 엘프, 그리고 용의 널브러진 시체들의 피로 사막이 붉게 물들었다.

아나크로노스는 자신의 발 아래에서 허둥지둥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는 곤충들을 향해 손짓했다. 그 순간 곤충들은 얼어붙고 납작해지더니 금속 징으로 변했다. 그리고 돌들이 모여 장벽 근처에 제단을 이루더니 그 위에 징이 달렸다.


[이미지:501783]
흐르는 모래의 홀


그리고 이 위대한 용은 쓰러진 동료의 잘려나간 사지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동료의 사지를 들어올린 채 여러 차례 주문을 외웠고 순간 사지가 홀 모양으로 바뀌었다.

용은 판드랄을 바라보며 필멸의 존재가 마법의 장벽을 넘어 고대 도시로 들어가기를 원한다면 그저 홀을 이용해 징을 치면 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대드루이드에게 홀을 건넸다.

홀을 본 판드랄의 얼굴이 모멸감으로 일그러졌다. "다시는 퀴라지도, 실리더스도, 그리고 당신이나 당신 종족과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겠소, 다시는!" 말을 끝낸 판드랄은 홀을 마법의 문에 던져 버렸고 홀은 여러 파편으로 나뉘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까짓 자존심 때문에 우리의 관계를 끊으려 하시오?" 용이 물었다.

판드랄이 뒤돌아 봤다. "이렇듯 허망하게 승리를 얻어 내 아들의 영혼은 편히 쉴 곳을 찾지 못할 것이오. 내 기필코 아들을 살려낼 거요. 수천 년, 아니 수백만 년이 걸린다 해도 살려낼 거란 말이오!" 판드랄은 쉬로마를 지나쳐 성큼성큼 가버렸다.



* * *



쉬로마에겐 이 모든 일이 바로 어제 일어난 것처럼 마음 속에 판드랄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하나 둘씩 칼림도어의 군대가 모여들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쉬로마는 인간과 타우렌, 노움, 드워프, 그리고 트롤까지도, 하나 둘씩 지나쳐 제단을 향해 나아갔다. 한때 그들은 적이었지만 지금은 퀴라지를 물리치기 위해 하나로 힘을 모은 것이다.

쉬로마는 계단 아래에 서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 제단에 다다르자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하지만 곧이어 징을 향해 크게 홀을 휘둘렀다. 고대의 징 소리가 힘껏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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