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서래귀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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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8-11-21 19:03:51 KST | 조회 | 4,568 |
제목 |
스컬지 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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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컬지 율령
1장
저자: 켈투자드
스컬지의 뿌리는 다른 모든 종족의 어리석음에 있다. 우리의 힘은, 우리의 멸망을 바라는 저들이 저지른 죄에서 나온다. 저 땅에 거하는 소위 '영웅'이라는 자들은 그 들이 그리는 승리를 얻고자 스컬지의 이상에 어울리는 수단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에, 결국 우리 앞에 무릎을 끓는다. 그들이 악이라 규정하는 것에 기대지 않으면 우리가 그들을 압도하고 만다는 사실, 승리는 이 사실을 깨닫게 해줄 뿐이다. 결국 이기거나 지거나 상관없이 스컬지는 늘 이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 깨닫는 순간, 그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에게 복종하게 된다.
우리의 주인인 리치 왕께서도 같은 과정을 밟아 새로이 태어나셨다.
우리는 타락을 퍼뜨리고자 정복한다. 타락을 퍼뜨린다 함은 곧 정의롭고 긍정적이기 위해 필요한 것, 삶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취하고, 또한 어떤 수단을 써서든 이를 뒤집는 것이다. 희망은 교리이며, 정의는 광신이다. 삶이란 감정 이입에 지나지 않는다. 산 자가 살고자 추구하는 것이 뭇엇인지 인식하고, 이를 뒤집어라.
타락을 퍼뜨리는 가장 적합한 방법을 알아야만 스컬지의 지식에 통달했다 할 수 있다. 보통은 마음을 조금 흔들거나 , 장기를 훼손하거나, 혹은 직접 열병을 퍼뜨리는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주인님께서는 대부분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정복하라는 명을 내리셨다. 따라서 보잘것없는 농부 하나를 일탈시키려고 과도한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평범한 역병을 퍼뜨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노련하고 강력한 자를 상대로 평범한 역병을 사용한다는 것도 똑같이 바보짓이다. 강적은 꼼꼼한 연구를 통해 약점을 찾아낸 후 공략해야 한다.
스컬지 율령
2장
산 자가 흔히 스컬지에 대해 가진 가장 큰 오해는 우리가 '악'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자 우리는 이 오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널리 퍼뜨린다. 그러나 스컬지의 진정한 본성은 이런 것이 아니다. 산자는 우리처럼 번영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는데, 스컬지는 바로 이 굴레를 벗어난 무리이다.
예를 들어, 감정이나 명예가 대체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가? 이런 가치들은 단지 산 자의 '기분'을 달래 주어 삶을 정당화할 뿐이다. 자, 이것들이 진정 무엇인가? 감정이란 곧 논리와 이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또한 대체로 명예란, 지는 전쟁에서도 기꺼이 싸울 인적 자원을 생산하난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불합리한 행동을 이끌어내 이런 결함을 드러내고자 '악'의 집합체를 표방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열정적으로 악역을 연기하고 있음을 그들이 이토록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은 심지어 내게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도덕적인 모호함이란 '정화'되지 않는다. 혐오라는 감정은 '치유'되거나 '완화'될 수없다. 탐욕은 '무효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며, 분노를 어찌 '저주'할 것인가?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집합체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떤 바보들은 스컬지를 격퇴하거나 완전히 없앨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산 자의 매력적인 죄악이 우리 깃발에 쓰여 있는 한, 우리의 의지를 따르고자 희망하는 무리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 자신도 이런 무리의 일원이었다.
스컬지 율령
3장
스컬지의 잠재력은 무한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의 한계와 자신이 지닌 자원을 항상 명확히 인식하라. 언제나 탈출구를 준비하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열광적인 하수인을 희생하는 것은 스컬지 철학의 기본이다. 주인님이 아닌 다른 자를 위해 용기, 혹은 동지 의식을 보이거나 그를 대신해 수난을 겪는 것은 경솔한 짓이며, 엄하게 벌을 받을 수 있다.
스컬지에 대해 또 다른 오해가 있으니, 바로 스컬지는 어던 고등한 기생충이라는 관념이다. 우리의 힘은살아 있을 때 지녔던 힘의 잔여물일 뿐이며, 그렇기에 생명력을 제공하는 숙주가 없다면 우리는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역시 우리는 우리 이득을 위해 이런 무지한 관념을 부인하지 않으나, 이는 진실과 거리가 멀다. 우리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땅에 적응한, 계속 발전하는 한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견해차에서 오는 충돌, 인구 증가, 개체성, 이기심, 짧은 생각,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월했다. 우리는 주인님의 의지에 복종하며, 그분은 우리가 항상 열망했던 모든 것을 내려 주신다.
흡수한 문명에서 우리가 건축 양식, 기술, 육체를 단련하는 방법 등을 받아들였음은 사실이다. 스컬지의 수많은 다른 '악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실리주의에 따른 선택이다. 스컬지에게는 스스로 문명을 발전시킬 의지도 시간도 없다. 자의로 무언가를 창조한 스컬지의 일원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창조물에 애정을 가지게 될 것이며, 남들이 그것을 보고 사용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이는 곧 개체성으로 이어지며, 개체성은 견해차를 낳는다. 창조성이란 문명의 약점이다. 하짐나 건물이나 장비 같은 기본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창조란 단순한책무일 뿐이다. 자신의 손에 얻은 자원이 어디서 낳는지 따위를 생각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그 자원의 유용성이다.
스컬지는 대지의 뜻이다. 우리의 의지 앞에 무릎 꿇는 생명은 평안함을 느끼며 깨달음을 얻는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의 구원을 갈망한다. 우리의 실천은 번복되지 않으며 우리의 계명은 누구도 필할 수 없다. 우리는 삶이 지닌 불가피함, 그 자체이다. 우리는 바로 죽음이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죽음과 함께 죽지 않음, 즉 언데드의 삶이 시작된다. 이 불변의 진리를 일찍 깨달을 수록 산 자는 더욱 수월하게 언데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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