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김노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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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3-24 22:23:15 KST | 조회 | 1,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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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창세기전 4와 한국 게임산업의 악순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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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맥스는 근 15년 전에 창세기전 1~3이라는 (그 당시의 한국 기준으로는) 나름대로 걸출한 게임을 만들어냈다. 어쨌든 그 당시에 거의 최초의 PC 윈도우 환경 게임을 즐긴 청소년들에게 창세기전과 소프트맥스라는 이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랐고 소프트맥스는 그동안 수많은 똥게임을 줄줄이 싸댔다. 비록 똥이었지만 소프트맥스라는 네임밸류는 살아남았고 수많은 사람들은 그 똥을 즐거이 입에 가져다넣었다. 어쨌든 그건 '게임'이었거든.
그리고 6년 전 창세기전 4가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다. 제작비 약 200억 가량. 창세기전이라는 프랜차이즈를 결코 잊지 못하는, 이제 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한 30대가 가까운 청년들이나 혹은 어느 정도 자리잡았지만 대신 꿈은 잃은 30대 직장인들에게 창세기전 4라는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도 오래 전 식은 가슴에 다시 뜨거운 열정을 끼얹어주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들이 열광하는 동시에 소프트맥스의 주가가 뛰어오르는 것은 주식을 별로 모르는 사람에게도 당연한 일이었다.
생각외로 너무 질질 끌었던 6년 후 창세기전 4가 나왔다. 그리고 뚜껑을 까보자 사실 창세기전 4는 판도라의 상자를 약간 변형한 것임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희망은 없고 역병, 살인, 강간, 화재, 그리고 고뇌 따위만이 존재하는 게임이라고도 부르기 힘들 정도의 심각한 쓰레기들만이 그 속에 드글대고 있다가 기어나온 것이다. 하한가를 안 친게 신기하지만 어쨌든 하루만에 주가는 17% 떨어졌고 당일 시장에서 하락율 1위를 찍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주주들은 열심히 행복의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지금 나온 건 언리얼 엔진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가 만든 연습용 예제 수준이어서 똥'게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라 주가가 쭉쭉 내려갈 것은 뻔해 보인다.
200억. 어마어마한 돈이다. 참고로 나는 지금 천 만원의 자본으로 인디게임 개발을 시작했고 계속 후원과 투자를 모으고 있다(다행히도 여러 투자자들이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었다). 1억에 달하지 못하는 자본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인디게임들이 게임판에 지나갔고 꽤 많은 게임이 성공했다. 만약 거기서 성공한 톡톡 튀는 개발자들에게 200억이라는 돈을 주었으면 이런 불가해한 악의 덩어리가 게임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적어도 100억은 먹고 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요즘 게임 제작 환경이 여러 어셋츠(자산)들의 공유로 훨씬 좋아진 상황에서 이 정도 물건은 20억도 안 들었을 것 같지만 6년이나 질질 끌면 인건비가 계속 드니까..
이것은 비디오 게임계에 끔찍한 악순환을 불러온다. 그러니까 소프트맥스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뻔하다. 200억이라는 투자를 받았으니 이걸로 추억팔이를 해서 적당히 단타를 치고 나온 후 남은 돈은 나눠먹고 게임이라는 진짜 중요한 결과물은 어떻게 되든 나몰라라 한 것이다. 만약 정말 열심히 노력을 하고 괜찮은 작품을 뽑았더라면 투자자도 웃고 제작사도 돈을 꾸준히 벌어들였을 것이고 유저들도 좋았을 것이다. 투자자가 웃는 산업에는 돈이 공급된다. 돈이 공급되는 산업은 확장되고 그럼 소비자들도 즐거워진다. 하지만 멍청한 투자자들을 속여가면서 먹고 튀는 작업만 반복적으로 한다? 한 번 속은 투자자가 다른 게임사에 또 속을 리가 있나? 이건 그러니까 게임 산업 전체를 무너뜨리는데 일조하는 악한 일, 모럴 해저드다.
소프트맥스는 투자자와 주주, 그리고 소비자들 모두를 위하여 도산하고 나머지는 횡령에 대해 진지하게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들은 정말 나쁜 자식들이다. 일말의 변호의 가치도 없다. 그들도 한때 꿈이 있었기에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이 판이라는 것이 자기가 원래 생각해보지 않았더라면 자기 일로 삼는 경우가 극도로 적은 판이기 때문이다. 정말 소프트맥스와 한국 게임사들 전체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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