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공부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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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3-08-10 16:02:18 KST | 조회 | 1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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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처벌과 정상성,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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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범죄의 ‘피해자’가 점점 더 사회적 위력presence을 증대시켜 왔다는 것은 징후적이다.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의 범죄학자 한스 폰 헨티그Hans von Hentig가 1948년에 그 저서에서 “피해자학”(victimology)을 제창한 이래, 특히 60년대부터는 범죄피해자의 권리회복운동이나 피해자 지원조직이 각국에서 확대된다.64) 이러한 피해자의 전경화는 전적으로 범죄 또는 범죄자와 그 처벌의 관계로부터만 성립되었던 종래의 국가의 법체계의 변질을 함의한다. 이전의 법체계에서는 거의 무시되어 왔던 피해자의 권리가 범죄자의 권리와 나란히, 또는 그 이상으로 중시되게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사법의 장에서도, 피해자의 권리주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게 되었으며, 이것이 하나의 진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오늘날 예로 제시되는 ‘피해자’란 주로 현실의 피해자와는 무관하게 구성된 피해자의 ‘정치화된 이미지’에 불과하다.65) 매스미디어 등을 통해 스테레오타입화된 피해자의 이미지가 산출되고, 범죄자에 대한 일반시민의 도덕적 분개를 대서특필하는 ‘피해자 감정’이 강조되고 있다. 이 경우 자주 전제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제로섬’ 관계에 다름 아니다.66) 즉, 가해자의 인권존중은 피해자에 대한 모멸(侮蔑)이며, 거꾸로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게는 엄벌을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해 어떤 속죄를 구하는가는 개별 사례마다 다양하고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 응보감정뿐이다. 피해자의 지위향상은 때때로 피해자의 이미지의 이러한 포퓰리즘적 동원으로 슬쩍 바꿔치기 된다. 이때 피해자는 그저 범죄자나 일탈자에 대한 일반시민의 도덕적 반발을 재확인하고 강화하기 위해 예로 거론될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시민의 이른바 ‘건전한 사회상식’에 대해 전문가가 품고 있는 염려를 확인하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포퓰리즘에 대한 염려가 있다고 해서, 사법을 완전히 법률전문가나 전문과학들의 전문가expert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 그들은 또한 고유의 방식으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문적 기술이나 앎을 통해 사법판결의 기준으로 된 정상성을 확립할 것이다. 어쩌면 사법에 대한 국민참여에 관한 진정한 문제의 소재는 일반시민의 상식이냐 사법 테크노크라트의 전문적 앎이냐로 통상 이해되고 있는 대립에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물어야 할 것은, “국민감정”에 기초를 둔 것이든, 테크노크라시적으로 정해진 것이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어떤 사회적 정상성의 관념 그 자체이다. 사법의 과정은 단순히 어떤 특정한 정상적 사회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 판결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정상성 그 자체의 반성적 검증을 포함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반성과정을 통해 획득되는 것은 질서의 ‘정상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통성’이다. 법질서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한다면, 자주 이데올로기화의 작용을 지닌 ‘정상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권리상 만인이 대등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기존의 정상성에 대한 이의제기를 내재시킨 반성적 결정과정으로서의 ‘정통화’에 의해서이다. 사법의 임무는 단순한 법적 안정성의 유지나 사회적 정상성의 재확인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사법의 결정도 공개성에 의한 검증에 기초를 둔 정통화 과정이라는 성격을 불가피하게 띨 수밖에 없으며, 시민의 사법참여의 의의는 이 점에서 고려되어야만 한다. (끝)
어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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