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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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12-25 02:36:11 KST | 조회 | 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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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잎사귀 같은 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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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식증 환자다. 나는 내 뼈에 달라붙은 이 거머리같은 살덩어리들을 떼어내고 싶다. 살코기는 사람이 정자의 은총 없이 수태한 유일한 죄악이다. 이것들은 흐물거리고, 속옷에 파먹혀 흉물스러운 자국을 남기고, 잔물결같은 주름이 접히고, 중력에 무너져 내린다.
맛이 간 미학 전공자가 엉덩이를 그린 서양화를 보고 찬탄하며 말하길, "오! 넉넉하고 튼튼한 대지의 표상이여."
그러나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 엉덩이는 대지가 아니다. 대지가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토해낸 거름 찌꺼기에 가깝겠지. 엉덩이는 신체라는 불합리한 구조물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사일록이 낫으로 이것들을 1파운드씩 베어다 돼지 우리에 던져주길 희망한다.
이것은 둥그스름하기 보다는 대충 반죽된 빵처럼 축 늘어져 있고, 단아하기 보다는 종기와 털, 때, 분비물 찌꺼기로 뒤덮여 얼룩덜룩하다. 차라리 엉덩이가 대지의 표상이라면 좋았을 것을. 그 표피 윗부분에 잡초가 무성히 자라 이 흉물스러운 부위를 가려줬으면 더 나았을 것이다.
사람의 몸에 살이 있는 한 나는 성욕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가 유일하게 매력을 느끼는 대상은 잎사귀 뿐이다. 햇빛이 비치면 초록이 더 강해지는 잎사귀가 나는 좋다. 어린 애 손가락지처럼 여린 잎이, 송아지 고기처럼 잘 찢어지는 여린 잎이 좋다. 햇살을 잔뜩 머금은 잎사귀는 몸에 혈색이 돌아, 격자무늬 리넨처럼 얼키고 설킨 세포질들의 황금색 빗금을 드러낸다.
그럴때면 나는 어김없이 그것들을 두 손으로 잡아 주욱 찢어버리고 싶어진다. 햇살이 녹은 황금물이 후두둑 떨어질까 봐서. 엽록소의 냄새가 짙게 밴 액체가 내 발가락 마디마디 마다 간질여 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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