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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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03-18 23:24:27 KST | 조회 | 630 |
제목 |
저 사실 와패니즘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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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소산으로 오르는 길섶마다 침엽수가 가득했다. 굵은 나무 뿌리들이 덩굴처럼 서로 옭아들며 땅바닥을 덮었다. 땅은 물이 많아 질었다. 나무 뿌리가 쑤시지 않은 토양마다 노란 민들레가 악착같이 피어 있었다.
봄, 규슈에도 봄이 왔다. 봄은 고통과 함께 왔다. 이슬비에 젖은 내 몸은 산바람을 맞아 으슬으슬 떨렸다. 뼈와 관절에 스미는 진공이 침엽수같은 고통을 뿌리 내렸다. 나는 그저 습관 때문에, 머리에 이고 있던 삿갓을 깊이 눌러 썼다. 매년 서른 번은 올라야 하는 아소산이지만, 오를 때마다 내 살과 뼈에 차오르는 이 고통은 단 한 번도 익숙했던 적이 없다.
화구火口 아래엔 흙과 나무로 만든 집이 있었다. 집은 백년 전에 지어졌고, 백년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집은 백년의 시간을 잇는 교두보다. 마당에는 낯선 까마귀 텐구 두 명이 서있었다. 모두 혈색이 밝고, 깃털이 빳빳한 청년들이었다. 텐구들은 허리춤에 긴 칼을 비스듬히 차고 있었다. 칼집과 손잡이 모두 검은색이었다.
"선생님."
그들이 내게 정중히 인사했다. 나는 삿갓을 벗어 내 가슴팍에 댔다. 아직 기력이 다하지 않은 내 심장이 쿵, 쿵 울린다. 저들 눈에 땀에 젖은 내 얼굴은 분명 핍진해 보일 것이다. 젊은 텐구는 썩기 시작한 내 치아를 내심 흉볼지도 모른다. 칼 찬 사람의 사회에서 예의는 약자에게 가하는 가장 정중한 폭력이다.
"어르신은 안에 계신가?"
늙은 내 목소리는 주름이 진 목구멍을 거쳐 거칠게 갈라지며 주둥이 밖으로 꿀렁, 흘러 나온다. 내 언어가 명료함을 잃어가는 것도 치아가 다 닳았기 때문인가?
"다이텐구님은 어제부터 꼬박 선생님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자들 중 한 명이 말한다. 젊은 텐구들은 모두 머리칼을 짧게 깎아서 구분하기 힘들다. 나는 그들의 머리칼이 검은 소나무 잎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마루를 건너 안방으로 들어갔다. 돗자리가 깔린 방은 어둡고 곰팡이 슬은 냄새가 난다. 곰팡이는 세월이 짜낸 고름이다. 나는 안방의 7할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텐구와 마주한다. 텐구는 앉은 다리를 하고서도 정수리가 천장에 닿는다. 텐구는 성기처럼 길고 붉은 코와 동공이 흰자위를 뒤덮는 거대한 눈알을 가졌다. 양 옆으로 길게 찢어진 아가리 안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난다. 텐구는 알몸이고, 오직 어둠만이 그의 피부 위에 성겨있다. 그의 가슴은 아랫배까지 축 늘어져 있고, 아랫배는 무릎 위에 얹혀 있다. 그가 거동할 때마다 접힌 살코기가 말 콧구멍처럼 푸르릉, 푸르릉 소리를 낸다.
"주군을 뵙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어 다이텐구 앞에 예를 갖춘다. 목살이 너무 두터운 텐구는 고개를 가누는 것 조차 힘겨워 보인다. 고등어의 그것처럼 동그랗고 거대한 눈알만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까마귀, 자네......소식을 들었는가."
목소리 만으로도 나는 다이텐구가 얼마나 노쇠하고 나약해졌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의 입이 내는 게 아니라 염통을 비워 만든 주머니에서 빠져 나오는 바람 소리 같다.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습니다."
"필경...또 세상을 등지고...살았나보군."
"면목이 없습니다."
"까마귀, 나는...그래서 자네를 가장 아껴......미련이 없는 자는, 배신을 하지 않네..."
다이텐구의 눈동자가 내게서 멀어진다. 그의 몸은 기능을 멈춘 커다란 살코기에 가깝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도 무섭도록 신묘한 도가의 비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필경, 그는 아소산을 넘고 세 개의 왕국을 넘어 저 먼 고려 땅을 엿보고 있을 것이었다.
"아아...며칠 전, 까마귀 텐구 중 가장 날렵하고...젊은 염탐꾼들을 대륙으로 보냈어...몽골의 인간들은 이미 그 땅을...거의 다 점령했네...다시 우리의 목을...노리려 할테니..."
"그 넓은 땅을 벌써 함락시켰단 말입니까?"
"놈들은...녹인 쇳물을 먹여...키운 말을 타고 달리니......위장에 겁화를 두른...야생마는...하루에 수백 리를...달린다...전사는 말 위에서 먹고, 자고, 자라고...말의 젖을 먹으니...그들 역시 몸 안에 화를 품는구나..."
"그러나 그들은 이미 한 번 우리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까마귀, 자네가...내 옆에 있었지....전령으로, 자문가로...전사로......허나, 쿠빌라이는 이를 갈며 자신의...정예 전사들을 결집하고 있으니...쇳물을 먹인 고려 남자가...4만 명....본토에서...10만 명...4천 하고도...400개의 배가...그들을 실어..."
다시 내 몸에 고통이 찾아온다. 나는 자세를 바꿔 차가워진 다리와 종아리를 주무른다. 다이텐구의 호흡이 거칠어 진다. 그의 심장은 너무 비대하고 연약해서, 충분한 숨결을 몸 안으로 끌어올 수가 없다.
"저희가 전쟁을 해야 한다면, 모든 왕국의 모든 남자들이 칼을 들고 일어설 겁니다. 우리는 저번에도 그렇게 승리했습니다."
"오.....까마귀...자네, 잊었는가..."
다이텐구의 아가리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벌어진다. 그는 온 몸으로 출렁거리며 나른하게 웃고 있다.
"칼로는...몽골 남자를 해칠 수 없네...오직......바람으로...가능하지..."
2
오직 바람만이 몽골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다. 첫 전쟁 때 나는 다이텐구의 전령을 자처했다. 우리는 북규슈의 하카다 만에 진을 쳤다. 인간 왕국의 병력이 수십 개 깃발을 들고 다이텐구 앞에 집결했다. 그들 중 수백 명은 긴 칼을 차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는 농기구로 무장하고 있었다. 다이텐구는 사람 10명을 족히 늘어놓을 수 있을만한 거대한 가마에 실려 이동했다. 그를 나르는 데 여덟 명의 까마귀 텐구가 동원됐다.
우리는 용감하게 싸웠다. 몽골군은 900척의 목선을 나눠 여러 섬을 한 번에 점령했다. 나는 날랜 병사들을 이끌고 공중에서 그들을 공격했다. 화살로 그들의 가슴을 꿰뚫었고, 화살이 다 떨어지면 칼로 그들의 목을 베었다. 잘린 목덜미 안에선 쇳물이 아니라 뜨거운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몽골 사람들은 화약으로 인간들을 공격했다. 불덩이에 맞아 죽은 사람의 시체에선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전선이 교착되자 빈민이 생겼다. 굶주린 농민들 몇 명이 타죽은 시체를 뜯어 먹다가 창과 칼에 몸을 꿰뚫리곤 했다. 나는 그 날 처음으로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우리는 몽골군을 해안 바깥으로 밀어냈고, 배 위에서 그들의 손과 목을 잘랐다. 그러나 그들 뒤엔 수십 척의 목선이, 그 뒤엔 또 수십 척의 목선이 달려들어 땅바닥에 남자들을 게워 놓았다. 남자들의 숫자는 금새 만 명을 넘어갔다. 그들은 숫자가 많았고, 잘 훈련 받았고, 용감했고, 젊었다. 우리는 다시 하카다 만으로 밀려났다. 몽골인들은 어촌에 상륙해 마을을 불지르고 여자들을 범했다. 그리고 밤이 되자, 우리가 야습할까 두려워 배로 퇴각했다.
다이텐구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 그는 수백 년만에 처음으로, 불경한 힘을 불러 선풍을 일으켰다. 회오리 바람은 산기슭의 진흙을 머금고 시커매졌다. 그리고 바다에 몸을 안기더니 다시 새하얘졌다. 회오리 바람은 900척의 배를 휩쓸었다. 바람이 배의 옆구리에 구멍을 냈고, 사람들이 덩어리진 음식물처럼 바다로 후두둑,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파도가 흘수선을 쳤고 배끼리 부딪쳐 서로 으깨졌다. 나는 높은 절벽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나는 900척의 목선이 3만 명의 사람들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순간을, 몸 속에 뜨거운 피가 담긴 인간들이 달빛이 어스름한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순간을 보았다. 인간의 몸은 피가 가득해서 물을 해치고 떠오르지 못했다.
그 날 다이텐구는 신통력을 너무 많이 소진해 몸이 쪼그라들었다. 여덟 명의 까마귀 텐구가 가마를 들어 근처 어촌에 그를 내려 주었다. 그는 사람을 먹었다. 그는 여자를 먹었다. 그는 아직 사타구니 밑으로 피를 쏟아본 적이 없는 여자도 먹었다. 그는 처녀를 먹었고, 아이가 있는 여자를 먹었고, 아이를 밴 여자를 아이와 함께 먹었고, 아이를 밸 수 없는 여자도 먹었다.
나중에 와패니즘 양판소 써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게 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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