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2 때 10월 즈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나의 오르지 않는 그림실력이라는 현실과 시각디자인 전공자라는 꿈의 괴리 속에서 계속 헤매이고 있었고 내가 유일하게 공부했던 시간인 야자시간은 맨날 학원 간다고 빠지니 모의고사성적은 완만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내려갔다
여느때처럼 나는 학교에서 저녁을 꾸역꾸역 먹고, 학교를 나와, 엄청나게 피곤한 상태로 학원으로 날 실어날라주는 버스를 탔다. 그날은 신기하게 버스에 나만 타고 있었다. 원래 나를 제외한 또래거나 더 어린 여학생들이 너덧명 탔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 날은 버스기사가 원래 항상 가던 길로 가지 않았다. 왜? 그러고보니 지금까지 미술학원으로 직행으로 가는 일이 없었다. 돌아돌아 갔는데, 이번에는 미술학원 쪽으로 바로 길을 달리는 것이다.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미술학원으로 더 빨리 가는 길은 사창가였다. 17살의 나는 울긋불긋한 조명에, 그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는데도 알아볼 수 있는 그 곳의 사람들의 생기가 빠진 눈에 질겁했다. 내가 유별나게 순수한 사람은 절대 아니지만 . . . 학원에 가서도 나는 기분나쁜 충격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 날의 스케치를 끝내고 색칠을 하는데 색칠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시선이 집중되는 부위인 렌즈를 강렬한 원색인 빨간색으로 색칠하는데 계속 그 빛이 반사되지 않는 눈빛이 생각났다. 지독한 두통이 차오르고 땀이 뻘뻘 흘렀다. 나는 느끼지 못할 절대적인 절망과 슬픔을 엿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오래간 잊혀져 있었는데, 어제 자다가 그 거리를 끝없이 헤매는 꿈을 꿨다. 난 일어나자마자 어제 먹은 걸 전부 토했다. 그리고 끙끙 앓으며 비몽사몽중에 감각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악몽들을 차례차례 꾸었다.
개같은 주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