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아직 1500개의 상영관이 남아있나이다"
명량은 1500여개의 희대의 스크린 독점(이것은 천 만을 넘은 다른 영화, 예를 들면 괴물이나 왕의 남자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이다) 이후, 1500만이라는 경이로운 관객 수를 찍어냈다. 한국 인구수가 5000만이 채 안되는 걸 생각 하면 한국인 3인 중 1명은 이 영화를 본 것이다. 역시 이순신! 그는 1:10의 전력차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500년 후 영화계의 기적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아마 한국 영화계에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왜냐고? 이제 모든 영화사들은 새롭고 독창적인 얘기를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냥 역사적인 영웅 팔고, 적당한 액션을 가미한 사극을 만들고, 스크린쿼터제를 이용해서 한 1천 스크린만 확보하면 무조건 천 만 넘는다! 뭐하려고 시나리오 작가를 비싼 값 주고 쓰나? 우리 역사엔 아직도 수많은 위인이 남아있다! 자, 다음 영화에는 세종을 쓸까? 아니 광개토대왕은 어때? 윤봉길도 좋을 것 같은데요? 세트 만들기도 편하고.
그리고 소비자들은 영화관에 갈 때마다 어떤 사극을 볼 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오늘은 무슨 시대가 좋을까? 일제강점기? 조선 초기? 형제의 난도 괜찮은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이제 SF 같은 마이너 장르는 충무로에서 완전히 죽어버릴 것이고, 심지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스크린쿼터의 악용은 이제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다. 나의 친애하고 동시에 증오하는 CJ, 그대는 스크린쿼터제가 얼마나 정신나간 제도인지 정밀하게 보여주었다! 아이맥스관에서 아이맥스로 찍지도 않은 명량을 틀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좋다, 우리 모두 국뽕에 취하자. 시나리오 대충 쓰고 대충 찍어도 천 만 넘는 이 황금의 시대에 한국 영화계는 제 2의 전성기를 찍을 것이다. 이 황금의 시대에, 우리 모두 사금 한 웅큼이라도 움켜쥘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