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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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10-12 13:00:41 KST | 조회 | 980 |
제목 |
[씹덕한 아몬 팬픽] 죽음의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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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는 먼 과거에 추방당했다. 그의 죄는 오직 동족들보다 더 위대하게 생각했다는 것, 하나 뿐이었다. 그는 우주의 모든 핵력으로부터 차단된 공허의 한 켠에 속박됐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내보내는 물리적, 추상적인 종류의 힘들에 끊임없이 자극받던 그의 영혼이, 이제는 무의식중에 명료하게 떠오르는 자의식에 집중하게 되었다. 무無보다 더 거대한 공허 앞에서 그는 탄생 이래 최초로 왜소함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지나치게 영특한 의식이 공허를 탐구하고, 분석하고...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악했다. 이렇게 거대한 세상이 단지 하나의 명료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다니. 바로 <무의미함> 을 위해서.
초논리적인 대량정보처리능력을 자랑하는 그의 사고력은 이제 자아를 갉아먹는 좀벌레가 되었다. 그는 공허의 무의미함에 오염되었다. 자의식은 깜부기불처럼 명멸하며 이따금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퇴행을 거듭한, 한때는 고등했던 야생 종족의 복잡한 구강구조처럼 말이다. 그의 정신은 태아에 가까웠다.
문자 그대로, 경멸스러웠다. 이렇게 한껏 웅크리고 있는 꼴이라니.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 <아몬>에 비하면 턱없이 초라한 몰골이 아닌가. 아몬은 우윳빛으로 소용돌이치는 나선 은하를 응시했다.(필사의 노력이 필요했다.) 저 은하의 중심부에서 끊임없이 폭발하는 항성들의 무덤이 격렬한 태양풍을 실어보낸다. 그 입자들의 파도에는 아몬의 자아를 이루는 정보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한때 아몬과 그의 동족들은 초공간 회로를 통해 세상을 인지했다. 은하팔 길이의 갑절은 되는 그들 종족의 촉각의 촉수는 하나하나가 초공간 통로였다. 그것을 통해 그들은 이 우주의 모든 정보를 시공간의 제약없이 실시간으로 피드백했다. 영광스러운 자아의 승리였다. 그때는 모든 위대한 정신들이 현실 우주와 완벽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젤나가의 종말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아몬은, 살아남기 위해 짐승들의 세계에 망명해야만 했다. 촉각 촉수들을 초공간 기반에서 광자 통신 기반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제 그의 감각은 현실우주의 물리법칙에 제한된다. 모멸적인 일이다. 빛의 속도로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은.
촉각의 촉수들은 공허로 추방된 그의 정신을 현실과 이어주는 마지막 젖줄이었다. 단 한 개의 초공간 통로만이라도 엑세스할 수 있다면, 저 아사 직전의 자아에게 풍부한 영양을 길어줄 수 있을 터인데. 그 양분들은 공허의 막대한 오염으로부터 정신을 지킬 보호막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자원이었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느린 광자들이 수십만 광년을 날아오는 동안 그의 정신은 굶어죽어가고 있었다. 비극이었다.
하지만 아몬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끝마쳐야만 하는 성전이 있었으므로. 그는 수 천년동안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수립했다. 현실 우주의 아메바들에게는 광대한 역사였다. 그에게는 터무니없이 적은 시간이었다. 어쨌든 계획은 성공했다. 적어도 절반은 말이다. 초월체(웃기지도 않는 별명이었다.)는 충실하게, 그리고 멍청하게도 자신의 모든 사이오닉 자산을 한 단백질 제어기구에 집약하는 데 성공했다. 그 기구가 내뿜는 모든 힘은, 한때 젤나가들이 자신과 현실 우주를 잇는데 사용했던 소형 성소를 통해 아몬에게 전달되었다. 이제 아몬은 최소한 한 개의 초공간 통로를 만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진짜 우주가 내보내는 풍부한 정보의 펄스가 초공간을 타고 그의 자아에 내리쬐게 된다면...이제 그는 이 끔찍한 무의미의 진창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하면 그의 지나치게 월등한 정보처리능력이 자기 주인의 정신을 산채로 강간하고 쥐어뜯으며 자학할 일도 없을 것이고...다시 예전처럼 건전한 정신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진짜 성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었다. 그걸 위해 아몬은 저 머나먼 은하의 깊숙한 폐부 속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흘려 보내야만 했다.
듀란, 나루드...그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이름에도 가치를 두지 않았다. 사실, 그는 <이름>이라는 개념만큼 무의미하고 원시적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멍청한 종족들에게 개체성을 부여하는 표지같은 것이라면, 그에게는 더 나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호칭이었다. "하수인". 그것이 그가 살아가는 목적이었다.
<삼층 갑판에 테란의 전투순양함이 랑데부합니다. 탈다림을 지하로 이동시키는 편이 좋겠군요.>
가증스러운 프로토스의 사념이 머리를 울렸다. 나루드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갑옷을 입은 고위기사 하나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당연하지, 저 생물들은 피부로 숨을 쉬니까.
"그럼 그렇게 하게. 난 여기서...좀 더 지켜봐야겠어."
나루드는 시선을 거대한 역장 유리창 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고위기사의 말대로 전투순양함 한 대가 핵융합 불꽃을 내뿜으며 천천히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제 곧 상층에서 요란한 기계음이 들릴 것이고, 머지 않아 이곳 2층 갑판까지 유인원의 후손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들은 대부분 해군이거나 해병이었고, 야만인들답게 교양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프로토스는 확실히 고등한 종족이었다. 최소한 성대의 울림 따위로 의사소통을 하지는 않으니까.
<당신이 무엇을 하든 우리는 상관 안합니다. 다만 당신의 무책임한 행동이...주인님의 계획에 차질을 주지 않을까 염려해서 하는 말입니다.>
취소한다. 프로토스 역시 미개한 종족 중 하나일 뿐이다. 나루드는 들끓는 증오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프로토스를 쏘아보았다. 단백질로 빚어진 구역질나는 노예 주제에, 감히 '주인님' 이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고위기사는 대담하게도 나루드와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 목석같은 존재가 평온한 붉은 안광을 흩뿌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당신을...주시하고 있습니다. 하수인.>
"그거 참 겁나는군."
고위기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위기사의 주위가 푸르스름한 빛으로 뒤덮이더니, 곧 그와 함께 자취를 감췄다. 무의미한 협박이라고 생각했다. 저 미개한 광신도들은 나루드를 조금도 주시하고 있지 못했다. 기껏해야 그가 외피로 두르고 있는 이 인두겁을 경계하고 있는 정도겠지. 나루드, 고대 변신술사, 하수인은 그보다 훨씬 더 고등한 존재였다. 아몬의 전자적 살점으로부터 빚어낸 존재. 펄스로 고동치는 혈관과 매 순간마다 양자가 붕괴하는 찬란한 의식을 가진 반신. 저 실패한 실험체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그 시작부터 명료한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종족. 하수인......
그때였다.
나루드는 미세한 떨림을 감지했다. 그가 언제나 최우선 경계대상으로 삼아왔던, 스카이거 정거장 외벽의 멀티빔 안테나로부터 오는 떨림이었다. 나루드는 주저없이 워프했다.
정거장을 한 둘레 두른 신소재 강철판의 한 부분에는 이질적인 금속이 끼여 있었다. 그 금속은 마치 해파리 촉수처럼 외우주를 향해 쭉 뻗어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멀티빔 안테나였다. 이 안테나는 극도로 민감했다. 은하 중심부에서 불어오는 태양풍 속의 온갖 정보들을 정확히 수신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테란은 의식 수준이 열등해서, 아무리 설계 개념을 주입해도 도무지 이해 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루드는 탈다림과 손을 잡았다. 실패한 피조물들과 말이다. 최소한 그들은 젤나가 공학의 끄트머리 정도는 간신히라도 응용할 줄 알았으니까.
이 안테나는 나루드가 섬기는 신, 아몬과 현실우주를 잇는 마지막 수신기였다. 이따금 아몬은 수십만 광년 떨어진 곳으로부터, 태양풍을 타고 날아오는 입자들에 정보를 담아 메시지를 보내오곤 했다. 대부분은 단편적이었지만 어떤 것은 매우 길었다. 그러나 메시지가 의미하는 바는 대부분 이것이었다. "참고, 경계하고, 대비하라." 그래서 나루드는 신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이 악취 나는 단백질 생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충분히 참고, 과도하게 경계했고, 철저하게 대비했다. 그러나 모든 기다림에는 끝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나루드는 요근래 '신의 목소리' 를 더욱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아. 죽음의 신이시여. 돌아오셨군요."
안테나의 상태를 본 나루드는 감격에 전율했다. 그는 성물을 어루만지듯이 안테나의 거대한 기둥을 끌어안았다. 정거장의 외피 바깥으로 뻗은 안테나의 첨단이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거대한 양의 정보가 수신되고 있는 탓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지금 안테나는 아몬의 의식을 수신하고 있었다. 아몬이, 수십만년 전으로부터 날아온 광자에 자신의 의식 정보를 담은 것이다. 이 행위를 위해 죽음의 신께선 얼마나 큰 수고를 하셨을까. 그것도 수십만 년 전 과거에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루드가 섬기는 신은 죽음 그 자체다. 죽음은 현실과 과거 그리고 미래에도 존재한다. 공시적인 존재에게 시간의 개념은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안테나는 더욱 거세게 진동했다. 신비한 합금으로 만들어진 기둥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대용량 메모리칩으로 사용하는 수정탑 몇 개가 이상신호음을 발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나루드는 뒤로 물러섰다. 지금껏 이렇게나 막대한 양의 계시가 그에게 주어졌던 적은 없었다.
잠시 후, 안테나는 다시 잠잠해졌다. 홀로그램에 뜬 수치들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루드는 알 수 있었다. 그의 앞에, 이름만 들어도 전율할 죽음의 신이 당도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루드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말없이 허공을 핥기 시작했다. 어두운 대기의 아랫배를 적시는 것 같기도 했다. 혹은 거대한 발을 주무르는 것 같기도 했고, 수십 다발의 촉수를 그러안는 듯한 동작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이든 상관 없었다. 중요한 건 어둠의 신이 나루드의 의식에 가장 완벽한 존재의 형상으로 강림했다는 것이다.
"찬양합니다, 죽음의 신이여. 드디어 부활하셨군요..."
감격에 겨운 나머지 나루드의 목소리는 불안정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나루드는 아몬이 자신의 열렬한 숭배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다시 한 번 전율했다. 한없이 무한에 수렴하는 존재가 그와 같은 공간을 거닐고 있다...
죽음의 신이 처음으로 말했다.
<부활이라는 단어는 합당하지 않다. 하수인이여. 오랜 악몽에서 각성했다, 라는 표현이 차라리 더 어울리겠군.>
"당신이 말하신 대로 될 줄로 압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취약하고 투명한 상태로 남아있다. 그리고 우주는 여전히 고통받는 존재들로 가득하다. 한때 내 형제들이 행했던, 무수한 실패의 흔적들이 산재해 있구나.>
"이 땅에 남은 마지막 비극이지요, 주인님. 그러나 이제 존재의 고통도 끝날 것입니다. 주인님께서 성전을 시작하실 테니까요."
<존재에 대한 성전.>
"고통에 대한 성전이기도 하지요. 아, 주인님. 저는 너무 오랫동안 기다려왔습니다. 수천 년 고통의 세월을, 오직 당신의 존안을 뵙는다는 일념 하에 버텨왔습니다."
<수고했다. 충실한 하수인이여.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고통을 느낍니다. 거기서 저는 언제나 의문을 품어왔습니다. 죽음의 신이시여. 제게 자유의지가 없었다면...오로지 목적만이 제 삶의 존재이유였다면 저는 고통 받을 일이 없었을 겁니다. 어째서 제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신 겁니까? 어째서 제가 당신의 각성을 위해 공작했던 수천 년 동안 크나큰 고통을 받도록 설계하셨습니까?"
<너의 희생은 필요한 일이었다. 수 천년을, 내 직접적인 명령 없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유연성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너의 인내가 곧 네 충성심의 진정한 상징이 되어주었다.>
일순간 나루드는 아몬의 눈에서 자애로움이 비쳐 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그러나 하수인의 상처 입은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착각이었다.
<이제 네 고난도 곧 끝이 난다. 내 각성을 촉진했던 고마운 피조물이 곧 이 구조물을 습격할 것이다.>
"피조물이라면...케리건, 그 가증스러운 저그의 여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신이시여?"
<너희의 언어로는 그렇다. 그 생물은 고맙게도 내 충실한 혼종 전사들의 먹이가 되어줄 저그들을 모조리 이끌고 너를 습격할 것이다. 너는 거기서 최종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제가 그 열등한 생물에게 패배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들을 얕보지 마라. 내 형제들을 학살했던 무리의 후손들이다. 너는, 그 피조물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그리하여 너의 고통도 끝이 날 것이다. 그때 너는 완전히 내 죽음 왕국에 복속되리라.>
갑자기 나루드가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의 망막에 드리워졌던 아몬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이다. 그는 허공을 할퀴듯이 손을 내저었지만, 잡히는 것은 건조한 공기 뿐이었다.
"아아, 가셨구나. 다시 한 번 가셨어...나를 이 텅 빈 공간에 둔 채로..."
나루드는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잠시 침묵한 채로 안테나 기둥을 응시하고 있었다. 안테나는 언제나처럼 평온한 기동음을 내며 우주 중심부를 향해 자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복잡한 번민이 뇌리에서 걷어지자, 이번에는 확고한 환희가 마음 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죽음의 신께서...그를 신뢰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 소멸이란, 아몬께서 그의 종들에게 내리시는 궁극의 선물이다. 존재는 그 개념부터 태생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기에, 존재를 끝냄으로써 그 불완전함을 제거한다는 아몬의 계획. 이제 나루드는 그 위대한 계획의 일부분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흥분이 가슴에서 샘솟기 시작했다.
죽음 만세! 나루드는 자신이 덮어쓴 생물의 성대를 빌려 세 번 복창했다.
죽음의 신께서 내게 죽음을 허락하신다구? 그럼 당연히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호락호락하게 죽지는 않으리라. 감히 신의 완벽한 순환에 반하는 이질적인 단백질 생물들에게 나름의 징벌을 줄 것이다. 그들의 존재가 죽음 왕국에 당도하기 전까지, 그들에게 최대한의 고통을 선사할 것이다. 우선은 스투코프, 그 오만한 감염된 테란부터다.
별빛으로 속삭이신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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