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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로코코
작성일	2016-05-22 13:10:13 KST	조회	579
제목	워크래프트 영화가 성공한 미래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을 느낀 나는 도망치듯이 영화관을 빠져나온다. 내 눈 앞을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에 오버워치 광고가 실려 있다. 나는 몇 해 전에 그 게임을 그만두었다. 지금도 오버워치 프로리그가 시작되는 날이면 온 네트워크 스트리밍 서비스가 들끓는다.

나는 블리자드 코리아의 부천 분점에서 일한다. 이곳은 한 해에 수 천개씩 쏟아져 나오는 블리자드 스토어 상품의 광고 기획을 만드는 서비스업 공장이다. 내가 맡은 일은 하스스톤 카드 양식으로 만들어진 팜플렛에 집어 넣을 플레이버 텍스트를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하는 일은 주로 전자 펜을 손에 쥐고 의미없이 굴리는 것이다.

선임 에디터 몰래 뉴스피드 서비스에 접속한다.(하루를 시작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블리자드가 인수한 연합뉴스 네트워크 사회일반 면은 한국의 조악한 사회적 안전망의 치부를 드러내는 기사보다는 블리자드 게임이 얼마나 이 세상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어주었는지를 묘사한 용비어천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서울 1000만 시민들과 함께 한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코스프레 대회

-상금 7억 배틀코인 선뜻 기부한 스타2 프로선수의 선행"같은 팬들끼리는 돕고 살아야죠."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마이크 모하임 두상 모양 돌, 런던 경매에 부쳐...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이것은 기적"

이따금 나는 원인모를 현기증을 느낀다. 주치의는 내 머릿속의 망가진 신경회로들을 들춰내는 일 보다는 디아블로3 갑옷셋트 맞추는 일에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이 미친 것 같다니까요!"

"진정하세요. 로코코 씨. 그런 식의 부정적인 생각은 당신의 히스테리를 더욱 가속할 뿐입니다."

"히스테리요? 당신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데요? 클리닉 운영하는 정신분석학 전공자?"

주치의는 터치패드용 전자펜-블리자드의 자기업 전자장비 제조업체가 제작한-을 자신의 코 끝에 가져다대며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다.

"블리자드의 2대 CEO 롭 팔도는 회사의 이념 '플레이 페어, 플레이 나이스'를 확장시킨 '리브 페어, 리브 나이스'를 블리자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전세계 190여개 국의 통치 이념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본질적으로 이 나라에선 나이스하게 살지 않는...이른바 정신질환을 가진 불행한 환자가 존재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것은 블리자드 서비스 품질을 저해하는 행위이므로, GM에 의해 엄격하게 판별되어 영구 계정 정지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삶으로부터요."

"하지만 당신은 내 주치의잖아요?"

"안타깝게도 트롤러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순 없으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블리자드 NHS(국가보건서비스)에서 제공하는 배틀코인 만으로는 나날이 격화되는 고행 17499단계 런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기 힘들거든요."

"그럼..."

나는 방 주변을 서성거린다.

"그럼 내가 뭘 해야 되는 건데요?"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게 세상을 편하게 사는 좋은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