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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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10-05 15:36:32 KST | 조회 | 5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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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윌리엄과 이성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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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윌리엄과 이성의 승리
자유도시 스콜라의 북동쪽은 완만하게 부풀어오른 언덕과 무성한 숲이 있는 양지바른 평야로, 자랑스러운 스콜라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가 설립된 곳이다. 트리니티 칼리지는 국가, 인종, 신분에 관계 없이 모든 사람들이 지식과 기술을 교류하며 인류의 사상적 지평을 넓혀가는 문명사의 가장 중요한 지적 보고였다.
트리니티 칼리지 인근의 도로변에는 대저택들이 즐비했는데, 이 저택들은 잘 휘저은 크림처럼 은은한 노란색을 띈 흰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었고, 모두 칼리지의 명망 높은 마법사 교수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하루만 지나도 시세가 30만 크라운씩 널뛰기를 하는 스콜라의 알짜배기 자산들이었는데, 진짜 마법보다 더욱 신비로운 주택 담보 대출의 기이한 마력에 빠진 몇몇 탐욕스러운 마법사들을 파멸에 몰아넣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스콜라 사람 윌리엄 교수-마법사도 칼리지 스트리트 인근에 죽여주는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올해 34세가 되는 이 젊고 야망 넘치는 천재 마법사는 잘 나가는 신 낭만주의 시인이기도 한데,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이 논문과 시집 인세만으로 집을 샀다며 자랑하듯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사람들은 윌리엄이 월포드셔 출신 귀족 가문의 숨겨진 후손이며, 약 6500만 크라운 어치에 달하는 토지를 상속받았다고 속삭이곤 했다. 어쨌든 글을 팔아 집을 샀다는 주장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루머다.
이 넓은 저택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이 살았다. 한 명은 (당연히)마법사 윌리엄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조수이자 하나뿐인 수제자인 충직한 베드포드 딸 아냐였다. 물론 윌리엄은 그 시대의 모든 우아하고 지적인 신사들이 다 그러했듯이, 인간 여성이 가진 치명적인 정신적 결함 -본질적 멍청함과 거기서 오는 사랑스러움-을 멀리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윌리엄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여성 혐오자였다. 그에게 배우자가 있어야만 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자기주장 약한 늙고 돈 많은 과부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풍족한 재산으로 남편의 위대한 지적 활동을 도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저 입을 닥치고 있음으로써 자신의 멍청함이 남편에게 전염될 위험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포드 딸 아냐는 확실히 그런 종류의 훌륭한 과부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그녀는 과부도 아니었고 아직 혼기가 다 찬 처녀도 아니었으며, 심지어는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신이 여자라는 불쌍한 생물을 처음 빚으실 때 허락하신 속성이 아니다...하지만 이 이야기는 좀 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어쨌든 아냐는 윌리엄이 외출을 하거나 일주일에 두 세 번 있는 마법 강의를 하러 대학에 갈 때면(딱한 윌리엄! 사실 그는 정식 교수가 아니라 강사였다.) 저택의 안주인이 됐다. 가끔 그녀는 응접실의 주인 의자에 앉아 윌리엄의 파이프 담배를 만져보곤 했다. 그리고 윌리엄이 저 먼 예니체리 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마법 시학과 대수학 책을 읽곤 했다. 그리고 딱히 잰 체할 생각은 없지만, 근면한 독학을 통해 그녀는 어느정도 책 내용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윌리엄이 모른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윌리엄이 이 세상에서 정말 용납할 수 없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면, 바로 자신보다 멍청한 사람과 자신보다 우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쇠고기 수프! 아냐는 저택의 식품 저장고에 수북히 쌓인 쇠고기 덩어리를 얇게 저민 뒤 각종 향신료를 뿌려 육즙을 내는 그 요리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 모든 욕망의 근원과 같은 영롱한 살코기는 오직 윌리엄에게 헌정된 것이었다. 평소 아냐는 스승님을 위해 그 모든 만찬을 준비하고, 자신은 검게 탄 빵과 소 콩팥을 다져 만든 작은 파이를 먹곤 했다.
여기서 독자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윌리엄은 한참 자랄 나이인 소녀를 일부러 굶겨 고통을 주기 위해 제자로 거두어들인 게 아니었다. 사실, 그는 아냐를 정말 훌륭한 여인으로 키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자연과학에 입각한, 동시에 계몽적인 교육 방식의 우월함을 입증하고 싶어했다.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자체 과학지인 <바이올로지>의 구독자였다. 그리고 가장 최초에 탄생한 인간-유인원(당연히 그는 진화론을 믿었다. 최신 트렌드니까)의 암컷이 채식 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비록 이 학설의 근거는 상당히 희박하긴 했지만.) 그는 지극히 현대적인 식습관인 육식이, 최종적으로는 아냐의 육체적, 지적 성장에 큰 방해가 될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또한 윌리엄은 되도록 소식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배불리 먹으면 지적 감수성이 무뎌지고 위대한 발견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실마리를 쉬이 놓쳐버리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윌리엄이 종종 과식하는 이유는 단지 그가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끔 자신에게 지나치게 관대해져서 그랬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서라면 그는 얼마든지 엄격해질 수 있었다.
아냐는 빵과 콩, 짠 치즈를 주로 먹었고 가끔은 소 콩팥을 다져 만든 소를 살짝 넣은 파이를 먹었다. 그리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따뜻한 우유도 마셨다. 하지만 모두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는 저택의 생리를 혼자 담당해야 하는 가혹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당연히 언제나 배가 고팠다. 그래서 아냐는 집 주인이 멀리 외출을 나갈 때면, 식품 저장고에서 큼지막한 쇠고기 덩어리를 꺼내 마음껏 조리해 먹곤 했다. 윌리엄이 자신의 재산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일 뿐이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해주면, 종종 이렇게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그건 너무 괘씸한 게 아닙니까? 어쨌든 그 신사 분은 아이를 거둬 입혀주고 재워주고 먹여주며 교육까지 시켜주고 있소. 그런데 아무리 배를 굶었다 할지라도 도둑질을 하다뇨?”
그래서 난 이 글을 빌어 그 신사 분에게,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물론 아냐는 신과 윌리엄의 이름을 욕 보이게 하는 짓을 하긴 했다. 아마 언젠가 그녀는 그 행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자. 모든 고귀한 활동을 하는 신사들, 그들의 빛나는 업적 뒤에는 언제나 여자가 있다. 그들을 위해 자질구레한 일들 - 빨래와 세탁, 그리고 쇠고기 수프를 끓여주는 일 -을 하는 여자들 말이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역사란, 칼과 펜을 쥐어 흔들며 종횡무진하는 제멋대로인 남자들 뒤에 따라오는 조용한 시녀들의 것이다.
그러니까 아냐가 우리 윌리엄의 넘쳐 흐르는 재산에서 극히 일부를 떼어 먹었다고 할지라도, 어쩌면 그렇게 괘씸한 일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필자는 판단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다. 그러니 별첨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고, 우리의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자.
마차에서 내린 윌리엄은 노곤한 몸을 이끌고 저택 문을 열었다. 직접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대신, 그는 자신의 멋들어진 딱총나무 지팡이로 벽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아냐! 아냐! 어디있니?”
아냐는 대답하지 않았다. 윌리엄은 잘 생긴 미간을 한껏 찌푸리며 더욱 강하게 벽을 두드렸다.
“아냐! 이 녀석아, 스승님이 부르면 한 번에 대답을 하라고 몇 번을 이르더냐!”
드디어 아냐가 응접실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녀는 스승님의 몸에서 두툼하고 무거운 외투를 벗겨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윌리엄의 코트는 빗물로 젖어 있었고, 진한 풀잎 냄새가 났다.
“비가 왔었나요, 스승님?”
“오냐. 버몬트부터 여기까지 오는 내내 소낙비가 쏟아지더구나. 시간대가 너무 절묘하게 들어맞아서 누군가 나를 위해 직접 저주를 안배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더군.”
윌리엄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다가 말을 정정했다.
“방금 것은 농담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날씨의 흐름을 바꿀 만큼 강한 저주는 존재하지 않는단다. 왜냐하면...”
“예, 저도 농담인 거 알고 있었어요.”
“뭐? 그럴 리가 있나. 난 너한테 화용론을 해석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아직 가르치지 않았다, 아냐.”
“네. 하지만 스승님의 어투나 발화 시점을 고려해서 그 말이 농담이란 걸 알 수 있었지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화용론이다...뭐, 하긴. 가끔 인간과 오래 산 짐승들도 뉘앙스, 즉 분위기를 읽어 인간의 의도를 파악하곤 한다는구나. 놈들이 실제 우리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금수도 가끔 하는데 하물며 네가 못하겠느냐? 어쨌든 넌 가끔 짐승처럼 굴긴 하지만 인간이긴 하잖니. 하여간 난 널 위해 모든 교육 커리큘럼을 다 완성시킨 상태란다. 섣불리 내 <계획>보다 앞서려 하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거라.”
“네, 스승님.”
윌리엄이 드디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 뒤를 아냐가 따랐다. 응접실에 다다른 윌리엄은 자신의 파이프 담배가 담긴 서랍장을 찾으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 내 모든 지식과 능력은 네가 이어받게 될 것이란다. 그건 정말 엄청난 축복이고 기회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데 왜 담배가 놓인 위치가 바뀐 것 같지? 대답해 봐라, 아냐. 왜 이렇게 된 거지?”
“저는 그 서랍을 만질 권한이 아예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해명의 책임은 스승님께 있으신 것 같아요.”
“아냐. 지금 나를 꼭 월포드셔의 소작농처럼 가지고 놀려는 듯 하구나. 하지만 네가 틀렸다. 이 경우엔 내가 지주고 네가 소작농이란다. 이 암고양이 같은 간교로운 녀석, 내가 의회에 출석한 동안 이 집에 너밖에 없었는데, 너 말고 내 담배를 만질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스승님의 말씀은 일견 합당한 것처럼 들리지만 이 경우엔 아니에요. 어제 스승님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보르도 산 포도주를 두 잔 곁들이셨어요. 취기가 오르셔서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만지작거리거나, 아니면 직접 피우셨는데 기억을 못 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저희 둘 다 범인이 될 수 있는 거죠.”
“너는 가장 명징한 증거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 하고 있단다. 바로 윌리엄의 천재적인 기억력이지.”
윌리엄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톡 치며 말했다.
“하지만 서로 증거가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스승님이 예전에 저한테 필사로 쓰라고 하셨던 서신중에, ‘우리 자유도시의 가장 위대한 시민 정의의 유산인 죄형 법정주의와 무죄추정의 원칙 하에 스콜라 경찰청 여러분이 앞으로도 법과 질서를 수호해 주실 것임을 저 스콜라 사람 윌리엄은 조금도 의심치 아니하는 바이며’...”
“됐다! 어떻게든 발뺌을 하려 하는구나. 네 필사적인 변호에 나는 그 어떤 물증보다도 더욱 강력한 영감을 얻었단다. 바로 심증이지, 하지만 내가 예전에 했던 말을 번복하는 것도 신사의 도가 아니지. 문제는, 나는 어제 정확히 11:32분 경에 포도주를 따서 그 감미로운 향을 맡았단다. 포도주는 살짝 맛을 보면 시인에게는 영감을, 돼지에게는 구토를 주거든. 그런데 난 내 제자가 맨 처음 이 지식 성소에 발을 들여놨을 때 반드시 밤 10시 정각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명령했지. 또 내 말을 어겼구나, 아냐, 이 녀석아. 앞으로 2주일 동안 네 외출을 금지시킬테다.”
“스승님. 이미 3일 전에 3주 외출 금지시키셨는데요.”
“그럼 거기에 2주가 추가되는 거지. 내 제자는 어떻게 이리 멍청한가. 덧셈도 힘든 게냐?”
아냐는 이제 자신의 누적 외출 금지기간이 4년 1개월하고도 3주에 이른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스승의 심기를 건드렸다간 정말로 호되게 혼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윌리엄의 말대로 아냐는 짐승과 닮은 구석이 있어서 화용론적 수사를 빼어내게 읽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 녀석아. 스승님 앞에서 표정이 그게 뭐니? 내가 네 외출을 금지시키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란다. 요즘의 스콜라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지. 판단 능력과 지적 능력을 적절히 배양하지 못한 어린 여자가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왜요? 창녀 때문에요?”
“묵인하기 힘든 나쁜 말버릇이구나, 아냐. 이제 거기서 3개월이 더 추가됐단다. 아니다. 매춘하는 여자와 몸을 섞은 사람은 잠재적으로 매독에 감염될 위험이 있긴 하지만 나는 여자가 여자와 교접할 수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따라서 네게 창녀는 그다지 큰 위험이 아니란다. 오늘날 스콜라에는 학생들이 넘쳐나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꼭 신사 윌리엄처럼 점잖은 건 아니야. 대륙에서 건너 온 귀족의 자제들, 제국에서 온 부호, 마법을 진지하게 연구한다기보다는 그저 불똥이나 틔우는 술수를 좀 배워 어디 비계몽된 소왕국에서 점성술사 자리나 꿰어 차 보려는 한탕주의자들...맙소사. 그 술 취한 열 여섯살 짜리 폭도들이 무슨 일을 벌이는 지 아니?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서 종업원을 희롱하고 교양인들과 말싸움을 붙는다. 하지만 그것은 커피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현대 무역학이나 우상파괴주의에 대한 흥미진진한 지적 토론이 아니라, 단순히 난투를 벌이기 위한 꼬투리 잡기에 가까운 것...그렇게 흥분한 교양인은 애석하게도 스스로 분을 못 이기고 칼이나 몽둥이를 빼내고 말지. 그럼 전투가 벌어지는 거야. 난 그렇게 허무하게 죽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무뢰배들은 여자나 남자를 가리지 않아요. 너라고 빗겨갈 수 있을 것 같니?”
“마법을 배우는 학생들이 검이나 몽둥이를 써요?”
“또 내 이야기에서 듣고 싶은 정보만 취사선택했구나. 배우는 입장에서 전혀 좋지 않은 버릇인데...어쨌든, 그 교양 없는 녀석들이 어떻게 마법을 부릴 수 있겠느냐? 양동이에 담긴 물을 반으로 가르는 가장 기초적인 술법도 하지 못할 녀석들이다. 어쨌든 놈들은 학문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실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우리 같은 사람도 아니거든...그냥 학위를 받으면 만족하는 녀석들이지. 아무리 대학이 돈이 좋다고 하더라도 그런 녀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니 이 도시가 문란해지는 거다. 난 그 녀석들이 죄다 자연 선택의 냉혹한 손길에 모조리 씨가 마르기 전에는 네게 이 길거리를 보여주고 싶지가 않아. 이제 이 스승님의 고매한 뜻을 좀 헤아리겠느냐?”
“아뇨.”
“아주 훌륭해. 어차피 너에겐 선택권이 없단다. 이 저택에는 내 마법이 걸려 있고, 여기서 바깥으로 통하는 그 어떤 형태의 문, 창문, 굴뚝이든지간에, 내가 이 집을 나가기만 하면 자동으로 차단되지. 그리고 이 마법을 풀기 위해선 네 아둔한 머리로는 적어도 3년은 꼬박 공부해야 한단다. 네가 덧없는 반항의 무의미함을 배울 수 있게 되어 이 스승님은 굉장히 기쁘구나.”
이어 윌리엄은 아냐에게 도서관으로 올라가 고서 몇 권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이 훌륭한 신사는 아냐가 집 안에 있을 때면 손 하나 까딱하는 일이 없었다. 만약 아냐에게 충분한 근력이 있었더라면 자신을 업고 침실로 옮겨 달라고 주문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냐는 두툼한 예니체리 제국산 고서 두 권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그때 이미 윌리엄은 콧잔등에 얹는 작은 안경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윌리엄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이마가 훤칠한 잘 생긴 남자였지만, 이 안경을 쓰고 나면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더 늙어보였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매우 뿌듯해 했다.
“저를 바깥에 내보내지 않으실 생각이시면, 적어도 저한테 바깥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를테면 오늘 의회에 출석하셨던 일이라던지요.”
윌리엄이 실눈을 뜬 채 아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책장을 덮었다. 윌리엄은 소 가죽으로 만든 딱딱한 겉표지를 손가락으로 문지른 채 아냐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아냐는 본능적으로 긴장했다.
“사실...아주...굉장히...적절한 조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제안이 네 입에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난 지금 아주 감동 받았단다. 세상에, 아냐. 넌 이 중부대륙 전체에서 가장 귀엽고 영특한 소녀야! 세상에, 난 방금 사상 최초로 내가 거둬 기른 야만인이 추잡한 본능을 억누르고 이성의 승리를 주창하는 순간을 목도했단다. 아냐, 네게는 그저 단순한 한 마디 말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다만 이것은 우리 왕국 교육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위대한 사건이란다...이성은 존재하고, 그것은 교육을 통해 어떤 열등한 인간 종이든 어느 정도는 개선시킬 수 있는 선한 의지를 지녔다는 거란다!”
윌리엄은 안경을 벗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 두덩이 밑을 살짝 닦아냈다. 아냐는 그 안경의 존재가 정말 거북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아냐, 너는 바깥 세상과 교류할 이유가 전혀 없어! 왜냐하면 넌 이미 아주 훌륭한 투영의 창, 혹은 세상을 향해 난 볼록렌즈, 혹은 현미경이라 할 수 있는 존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바로 나지. 너는 나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참된 이성과 지성을 이끌어내는 존재잖니? 왜 내가 지금까지 네게 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을까. 이것은 스승된 입장으로서 정말 면목이 없어지는 일이구나.”
“그게 제가 앞으로도 바깥으로 못 나가게 된다는 말인가요?”
“닥치거라. 이제 내 말을 들으렴. 물론 너한테는 그다지 쓸모 없는 잡지식이 되긴 하겠다만, 우리 국가의 의회와 그 내부 조직의 생리를 이해하는 것도 네게 좋은 공부가 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윌리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시인의 본능을 가진 윌리엄은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기 전까지 섣불리 말을 하지 않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가끔 그의 이런 버릇을 과묵함으로 착각한 처녀들이 애꿎은 마음을 졸이기도 했다.
“그래. 아냐, 나는 오늘 의회에 갔단다. 정치인들이 무슨 연유로 우리 마법사들에게 손을 내민 건지는 알고 있니?”
“글쎄요...?”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풀어보는 시늉이라도 해라. 넌 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해.”
“탈세를 하셨나요?”
“이 멍청한 제자야! 의회가 무슨 기관인지도 모른단 말이냐? 이 녀석아. 나는 오늘 의회 소속의 전시 의원회에 다녀왔다. 전쟁 전략의 마법 자문 전문가로 말이야. 지금 우리가 저 간악한 푸와그라 공화국과의 전쟁 선포를 고려 중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니?”
“전혀 몰랐어요. 저한테 신문을 안 보여주시잖아요.”
“귀가 있고 눈이 있으면 다 아는 법이다. 이 한심한 녀석아, 평소에 세상에 얼마나 관심을 두지 않길래 네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의 일에 대해서도 까막눈일 수가 있느냐. 아무리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속 편한 생물이라고는 하지만...”
윌리엄은 정말로 크게 실망했던 건지 그대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순간 아냐에게서 보았던 찬란한 계몽의 빛이 순식간에 형체를 감춘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죄송해요. 스승님. 앞으로는 우리 나라의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질게요.”
“그래야 할 거다. 애국심은 신사의 미덕이다. 아냐, 그건 절대로 잊으면 안 돼. 스콜라가 자유사상도시로 크게 번성하긴 했지만, 동시에 우리 왕국의 국경과 막강한 함대가 없었다면 당장 야만인들에게 유린 당했을 것...그러면 너나 나나 진작에 광장 교수형대에 목이 매달렸을 거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해 두거라.”
“예. 그러니까 더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 최소한 배움의 의지가 있어 마음이 놓이는구나. 어쨌든 거기엔 정계의 실력가들이 아주 많았단다. 너는 전쟁이란 게 무엇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다. 그건 인류가 가진 모든 지식을 총동원한 문명 충돌의 거대한 장이야. 전쟁 위원회에는 장군만 있는 게 아니다. 거기에는 무역 장관도, 농수산식품부 장관도, 그리고 당연히 재정부 장관과 심지어는 인구 조사관들도 있었지. 그 사람들이 왜 필요하냐고?
사실 그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단다. 인구 조사는 특히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지. 우리 나라에 싸울 수 있는 남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미리 알아야 전략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 또 만약 간악한 공화국 함대가 우리 항구를 불시에 기습해서 봉쇄하면 어떻겠느냐? 해외에서 식재료를 들여오지 못하는 상태로 고립된 채 내수 생산으로만 버텨야 한다면? 그리고 시민들이 누리던 고급 수입품과 대포 제조에 필요한 자재의 대체품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려면 훌륭한 경제 전문가와 공학자들이 아주 많이 필요하지.“
“그리고 마법사는요?”
“보채지 좀 말아라. 너희 여자들은 언제나 감정이 앞서지. 하지만 말은 잘 했다. 그런 와중에, 드디어 그 인색한 왕실 정부 사람들이 마법의 위대한 잠재력을 깨닫기 시작한 거다. 아직 미몽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의 낡고 고리타분한 전술 교리에 마법의 무궁무진한 힘을 더해 보기로 마음 먹은 거야. 그래서 내가 우리 마법사들의 대표로 그 자리에 나아갔단다...다른 13명의 딱히 볼 것 없는 삼류 마법사들과 함께 말이야. 걔네들은 사실 거의 다 사기꾼이지.”
“그래서요?”
“그래서 육군성 장관이라는 한 남자가 아주 심각하게 말하더구나. 육군의 자체적인 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는 300만 명의 신민이 있습니다. 한편 공화국 쪽에는 7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 이중 스파이 말에 따르면 말입니다. 만약 저들과 우리가 총력전을 벌이게 되는 상황이 온다고 하면, 적어도 우리는 남자 뿐만 아니라 아이들, 그리고 여자들도 징집을 해야 그나마 좀 동등한 병력을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야.”
“여자와 아이들도 싸울 수 있나요?”
“아까부터 왜 자꾸 그런 얼빠진 말을 하느냐. 당연히 불가능하지. 그런데 그 장군이 이런 순진한 말을 하더군. 그래서 말인데, 선생님들. 저는 유명한 마법사를 한 명 알고 있습니다. 남자에게 괴물 같은 힘을 부여하는 신비한 물약을 제조할 줄 아는 사람이죠. 그게 사실이면, 여러분이라면 남자에게 괴물 같은 힘을, 그리고 여자에게 남자 같은 힘을 부여할 수 있는 물약을 제조해 줄 수 있는 게 아닙니까? 아니면 그런 주문이라도요?”
윌리엄은 여기서 운을 뗐다. 청중의 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무대 연출이었다. 아냐는 두 눈을 둥그렇게 치켜뜬 채 입을 열었다.
“정말 그런 주문이 있어요?”
“내 말을 들어봐라. 나는 일단 아주 정중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코웃음을 치며 그 우매한 초짜에게 이렇게 말했어. 장군님. 저는 집안도 훌륭하시고 수준 높은 교육도 받으셨을 장군님께서 그런 검증되지 않은 옛날 전설을 곧이 곧대로 믿으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말이 있죠. 오직 거듭난 자가 신의 황금 궁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음이라. 만약 이 전설이 사실이라면, 장군님은 그 성전에 발을 들이는 첫 번째 국가 엘리트가 되시지 않을까요? 휘하에 수 많은 뇌 없는 사람들을 부리시면서 말이죠.”
“그럼 그런 주문은 없는 거에요?”
“당연히 없지. 너 진짜 자꾸 이렇게 멍청한 척 할래? 어쨌든 내 혼신을 빼어놓는 날카로운 새치 혀에 그 장군은 위축되고 말았단다. 정말 통쾌하고도, 정의로운 이성의 승리의 현장이었지. 그래도 난 그에게 희망을 주고 싶긴 했어.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아마 그 전설은 최초의 최음제를 제조했던 예니체리 제국 마법사 귤레르의 일화가 와전될 것일 겁니다. 확실히 그것은 사람의 기분을 달뜨게 만들어, 공포심을 줄여주고 폭력성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기는 하겠죠. 그러자 그 장군의 옆에 있던 또 다른 장군이 상을 탁 치고 일어나며 소리치더구나. 공포심을 줄이고 사람을 용맹하게 만든다고? 바로 그게 우리에게 필요한 거요! 마법사 양반, 그게 바로 실용적 접근이오. 공포심이 없는 보병들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여러분? 전열보병의 힘은 첫째도 규율, 둘째도 규율, 셋째도 규율이오. 32 파운드 쇠공이 내 발 밑에 떨어져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소총 연대라면, 우리는 적 숫자가 두 배든 세 배든 격파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는 아주 간절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겠소? 하는 그런 눈빛이었어.”
“그래서, 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윌리엄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니? 생각해 봐라. 이런 종류의 마법은 아주 민감하고 예측 불가능하단다. 내가 한 마을의 남자들에게 주문을 걸어서 공격적인 성향을 부여했다고 해보자. 하지만 이 마법은 원칙적으로는 최음제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공격성은 대개 성욕에서 비롯된 거겠지. 말하자면 부가 효과에 불과하다는 거야. 추잡한 욕망으로 점철된 수 백명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그 사람들에게 무기와 군복을 입혀보렴.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니? 용맹한 보병 장교의 말에 따라 총검을 빼들고 적진을 향해 진격할까? 하하하,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내 생각에는 곧바로 총구를 자기 마을로 돌려 조국을 약탈하고 방화하고 겁탈을 일삼을 거다.”
“내가 이렇게 조목조목 자신들의 설익은 생각을 반박해주자 모두들 말을 잇질 못하더구나. 그러더니 어떤 사람이 갑자기 손을 들며 이렇게 말하는 거야...그, 그럼 우리에게 돈이라도 줄 수는 없겠소? 아주 자신 없는 목소리였지. 당신들 마법사는 돌을 황금으로 만들 수도 있다던데...황금이 아주 많으면 우리는 더 많은 무기와 배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옳거니! 난 이렇게 생각했다. 이 바보 같은 녀석을 아주 잔혹하게 으깨버려야겠구나.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친애하는 의원님. 저는 의원님이 어떻게 그 자리에 앉아계실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가 의원님이라면 그 자리에서 나라의 녹을 빼먹으며 산다는 게 너무 죄송스러워서 스스로 목을 메고 말았을 겁니다! 그리고 한숨을 최대한 길게 내쉬고 이렇게 말했어.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마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개발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 마법을 폐기할 겁니다. 왜냐하면 쉽게 이익을 낼 수 있는 마법의 존재는 인간의 마음을 안일하게 만들어 마법과 지식의 발전을 저해하기 때문이지요. 황금을 만들 수 있는데 누가 마법을 더 연구하려 하겠습니까? 그리고 최소한의 경제적 식견이 있으시다면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실 수는 없으실테죠. 국가에 금이 많아지면 자연스럽게 금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불쌍한 신민들은 인플레이션에 허덕일테고, 여기에 전시 체제까지 겹치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될테죠. 그럼 우리는 공화국 군대와 함께, 횃불을 들고 이곳 버몬트로 진격하는 농민 반란군까지 상대하게 될 겁니다. 돌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이라. 그런 주문이 발명된다면 차라리 이런 이름을 붙이는 게 낫겠군요. 모든 걸 파멸시키는 최후의 주문! 그런 거 말입니다.”
“너무 심하게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 신사 분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윌리엄은 여전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내 제자야. 사람의 우둔함을 깨우치는 날 선 비판에 정도의 심함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어쨌든 그 나약한 양반은 울부짖더구나. 바로 그게 필요하오! 이러면서 말야. 모든 걸 파멸시키는 최후의 주문이 필요하오! 그럼 푸와그라 공화국에 금으로 된 비를 쏟아지게라도 해주시오. 그래서 공화국 놈들이 경제난에 허덕이다가 자멸하는 꼴이라도 보게 말이오!”
윌리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의 이야기는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고, 그의 달뜬 감정과 회한도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아냐.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단다. 다만 사람이 가진 그 무지가 싫을 뿐이지. 안타깝게도 인간은 무지를 생산하는 존재이고, 그래서 내가 인간을 싫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거지...어쨌든, 그 전쟁 위원회의 양반들도 분통이 났는지 이렇게 따져 물었단다. 그래서 대체 당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뭡니까?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마법이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습니까? 내가 껄껄 웃으며 반문했다. 뭐, 마법 보호막을 두르고 선봉에 서서 벼락과 불의 채찍이라도 휘두를까요? 그러더니 그 육군성 장군의 얼굴에 마지막, 너무나 우둔하기에 더욱 찬란해 보이는 마지막 희망의 빛이 떠오르더구나. 그가 물었어. 그, 그건 가능한 겁니까?”
“가능하잖아요?”
윌리엄이 얼굴을 찌푸렸다.
“당연히 가능하지. 그런데 내가 언제나 말했듯이, 그런 일은 마법사가 아니라 사기꾼들이 부리는 재주에 불과하단다. 자연의 손아귀에서 아주 약간 양해를 구하는 건 쉽단다. 자연은 아주 정교하게 짜인 톱니 기계에 가까운 존재이지만, 이 우주라는 것이 워낙 거대하고 포용력이 강해서 마법사들이 자행하는 소소한 왜곡의 행위는 쉽게 눈 감아 주지. 그런데 우리가 고작 그런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던히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응? 고작 총탄을 막는 역장을 펼치고 손가락에서 불꽃을 피어나게 하려고 말야. 그런 건 점성술사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지, 신사가 할 건 아니란다.
그래서 나는 그냥 빙그레 미소만 짓고 있었어. 그러더니 거기 사람들이 일제히 한숨을 쉬더구나. 재정부 장관이라던 한 뚱뚱한 남자가 이를 갈며 내게 그러더구나. 당신에게 물벼락을 쏟아내릴 수 있는 마법사가 존재한다면 내가 그에게 내 별장을 직접 하사할 수도 있을 것만 같소.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 오, 그런 주문이 존재할 가능성은 말이죠...글쎄요. 기후를 조종하는 것은 아주 복잡하고 번거롭고 대단히 스케일이 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기압의 차이, 대기의 습도를 포함한 관련 조건의 아주 세심하고 동시다발적인 조정이 필요하겠죠. 그리고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글쎄요. 돌을 금으로 만드는 일도 가능하겠군요. 게다가 그 정도로 빼어난 마법사가 언젠가 이 왕국에 등장 한다면, 아마 제가 최초겠죠. 하하하!“
박장대소를 터뜨린 윌리엄이 입을 뚝 다물었다.
“나머지는 네가 지금껏 본 대로란다.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 여기서 휴식을 취하고 있지. 그런데 너무 말을 많이 했더니 입이 텁텁하구나. 가서 물이나 한 컵 가져오너라. 당장.”
그렇게 해서 그 날의 긴 교육은 끝이 났다. 며칠 뒤 이른 아침에 아냐는 윌리엄 대신에 조간 신문을 받으러 정원으로 나갈 기회를 얻었다. 윌리엄이 정기적인 몸살 감기로 몸져 눕는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기회가 됐기에 아냐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담장 안으로 던져진 신문을 받아든 그녀는 순전한 호기심에 헤드라인을 읽었다.
“해군과학 연구소 사령관이 마법사 집단과 협력하여 대륙 최초로 기후를 조종하는 주문을 개발 - 거대한 해일과 폭우, 번개를 불러 공화국의 전함을 나룻배처럼 산산조각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아냐는 잠시 고민했다. 그녀는 스승의 명령 두 가지를 동시에 어겨야만 했다. 우선 윌리엄이 ‘사기꾼 장난’이라며 학을 떼는 불 틔우기 주문으로 신문지를 태워버렸다. 그 뒤 윌리엄에게는 오늘은 신문이 오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어마어마한 외출 금지의 리스크를 지는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아냐는 이것이 존경하는 스승님을 거대한 절망과 수치심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넣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의 여자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그녀도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 되는 경향이 있었다.
<끝>
이떄 좀 울적하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인정받지 못할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런 걸 자급자족하며 내 자존감을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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