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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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6-10-29 15:03:30 KST | 조회 | 932 |
제목 |
닥터 스트레인지(스포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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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않을 마블 스크립트 교과서
마블 영화란 무엇인가? 그들은 할리우드 스크립트 공식의 적자다. 초반부는 흥미로운 장면과 함께 거대한 대결구도의 윤곽을 보여주고, 그 다음 주인공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며 간략히 세계관을 설명한다. 주인공이 운명을 깨닫고 수련을 하거나 시련을 겪는 과정은 최대한 압축해야 하며, 언제나 유머가 함께 해야 한다. 아치 에너미는 언제든지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지만 그것이 주인공의 매력을 깎아먹거나 극의 전체 분위기를 침체시켜선 안된다.(그래서 진지한 장면 뒤에는 언제나 혼신을 다한 유머 장면이 다급하게 따라붙는다) 마블 세계에서 복선은 다분히 칸트적이다. 이른바 정반합이 확실하게 이루어져 있다. 초반에 세계관을 설명할 때 주인공의 스승은 세계를 이루고 있는 얼개들을 간략히 설명하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극의 후반부에 주인공에 의해 진정한 쓰임새를 얻는다. 007의 스마트 가젯에어 이어져내려온 유구한 서구 오락 영화의 전통이다.(여전히 잘 먹힌다. 그리고 나도 기꺼이 즐거워할 수 있다.)
나는 닥터 스트레인지를 '마블 노하우의 정점'이라 칭하고 싶다. 극 진행이 어찌나 효율적인지 초반 20분만 지나면 벌써 미스터 닥터 스트레인지는 소서러 어뎁트가 되어 있다. 중반부에 이르면 이 복잡다단한 멀티버스가 어찌됐든지간에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갈라지는 리버풀 스트리트와 뉴욕의 마천루들을 바라보며 엎치락뒤치락하는 마법사들의 결투를 감상할 수 있다.
스토리의 연결은 결코 유기적이지 않다. 마치 인상적인 장면들을 미리 찍어놓은 뒤 억지로 나머지 부분들을 연결한 것 같다. 그래서 극은 휘황찬란한 VFX 11차원 초자아 모험이나 오렌지 채찍 마법 전투, 전지전능한 이차원의 존재와의 지혜 대결, 고대신 틸다 스윈튼...아니 에이션트 원의 수상쩍은 최후 등 누가 봐도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장면에서만 이목을 집중시킨다. 나머지는 마블식 유머가 레비테이션 망토처럼 숨 가쁘게 달려와 사람들의 관심을 식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캐릭터는 정말 놀랍게도 중요한 사람(미스터 닥터 스트레인지와 켈틱 비구니 틸다 스윈튼)들을 제외하면 모두 무시해도 상관없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스토리는 거리낌없이 전력질주 할 수 있다.
이렇게 결코 마스터피스가 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결점들을 마블은 순수한 오락 영화 공식으로 가려왔다.
시나리오에 대한 공학적 접근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결코 패배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수십 번 써먹었지만 너무 정교하고 너무 인기있어서 우리는 수십 번 똑같은 농담에 웃을 수 있다.
VFX 11차원 초자아 모험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훌륭한 장면들이 많다. 시리악의 유튜브 동영상과 닥터후 오프닝 CG, 필름 색깔을 바꾼 미생물 확대 사진, 인셉션 무중력 전투,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마지막 워프 장면이 잡탕 찌개처럼 섞여 있으며, 편집이 훌륭해서 편안하고도 두근거리는 느낌을 간직한 채 감상할 수 있다. 이제 와서 독창적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지만,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는 걸 굳이 칭찬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언제나 영국인이 할리우드를 살린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스터 닥터 스트레인지와 고대신 틸다 스윈튼을 빼면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캐릭터는 흐릿하다. 하지만 그건 비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히어로물에선 중요한 사람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중요한 미스터 닥터 스트레인지와 그의 각성을 돕는 고대신 틸다 스윈튼이 영화 지분의 99.98%를 차지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틸다 스윈튼은 이 역할을 너무나 훌륭하게 해냈다.
에이션트 원은 전승이 모호한 존재다. 틸다 스윈튼의 우아하고도 미스테리한 마스크, 선한 눈동자 연기, (미국인 입장에서)이국적인 발음은 심지어 동양인인 내게서 켈트 사람에게 오리엔탈리즘을 느끼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범접할 수 없는 대배우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사실 나는 컴버배치가 '고립된 소시오패스' 전문 배우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직 BBC를 굴러다니던 시절을 생각해 보라. 그는 페도필리아 혐의를 받는 장교를 연기했고, 호킹을 연기했고, 앨런 튜링도 연기했고, 이름 모를 여장남자를 연기했고, 셜록도 연기했다. 이 캐릭터들의 공통분모는 똑똑하지만 사회적 공감능력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컴버배치는 고립된 소시오패스 전문 배우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신이 맡은 역할에 완벽하게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을 뿐이었다. 언젠가 그는 기사 작위를 받을 것이다.
평점:
7.3/10(위대하지 않게 훌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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