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A-27크롬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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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9-10-12 12:53:46 KST | 조회 | 268 |
제목 |
터키 민주주의는 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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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민주주의는 죽을 수가 없다. 살아 있었던 적도 없었으니까Turkish Democracy Can’t Die, Because It Never Lived
이 나라의 정치 체제는 근래 받았던 애도를 받을 자격이 없다.The country’s political system doesn't deserve the laments it’s recently received.
By Steven A. Cook | May 13, 2019, 2:14 PM
지난 주, 터키 최고 선거 위원회는 최근 이스탄불 시장 선거가 무효라고 결정했고, 이에 따라 많은 분석가와 언론인들이 터키의 민주주의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런 선언은 한 가지 역사적 문제에 대답하지 못한다. 어떻게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끝날 수 있는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 분명해진 사실은 1946년 있었던 터키 민주당의 창립이 터키 다당제 정치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민주화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1950년에 공화인민당(CHP)로부터 정권을 저항 없이 가져왔고, 터키 민주주의의 신화가 태어났다. 그 이후로 선거는 때맞춰 이루어졌고 자유롭고 공정했으며, 현기증날 정도로 다양한 연립 정부들을 탄생시켰다. 특히 1970년대와 1990년대에 그러했다.
물론 1960년과 1997년 사이 4번의 쿠데타가 자유롭게 선출된 그 정부들을 무너뜨렸다. 그 때문에 정의개발당(AKP)가 2002년 처음 정권을 잡았을 때, 이 선거 결과가 터키의 민주화에 중요한 한 걸음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리고 AKP의 지도자들은 군이 국가를 개인으로부터 보호(주로 AKP나 그 유권자들의 정당들을 희생시켜서)하기 위해 만든 제도들을 개혁하거나 폐지할 것이라 공약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AKP는 의회 다수당의 지위를 이용해 헌법적인 개혁안들을 통과시켰다. 이런 개혁의 예로 국가 안보 위원회의 고삐를 죄어서 위원회가 정당을 해산하고 정치인을 금지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 것과 민군합동 국가안보 법정을 폐지한 것, 그리고 형법 개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17년이 지나고, AKP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혐오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되었다. 당은 군을 터키 정치의 중재자로 되살려내지 않았다. 하지만 레세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AKP를 집권 정당으로 남겨두기 위해 터키의 정치적, 법적 제도에 영향력을 가하고 개조하는 낯설지 않은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그 사례로는 최고 선거 위원회가 있다. 이곳의 구성원들은 사법재판소와 행정재판소 판사들로 구성되며, 그 역할은 터키에서 행하는 선거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 위원회는 선거 과정의 중립적 중재자로써의 역할을 멈추고, 판사의 임명권이라는 수단을 통해 AKP와 에르도안의 도구가 되었다.
2017년 4월, 터키는 대통령의 권한을 증대시키기 위해 설계된 헌법 개정안 발효를 위한 선거를 치렀다. 출구 조사 결과에서 개정안 통과가 불확실해 보이자 AKP는 최고 선거 위원회에 압력을 가해 적절한 인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투표용지들을 개표하도록 함으로써 에르도안이 소위 '책임 대통령제'를 설립하기 위해 필요했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더 가까이 가서, AKP가 선임한 선거 위원회 위원들은 투표용지를 공무원이 아닌 자가 다루었다는 이유로 이스탄불 시장 선거의 결과를 무효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CHP의 에크렘 이마모울루가 이스탄불의 시장이 된 투표 결과만이 이스탄불에서 유일하게 무효 처리되었다. 선거 위원회는 시장 선거와 똑같은 사람들이 투표 용지를 거두었음에도 AKP 후보가 승리한 구청장 선거들은 유효하다고 판정했다. 게다가 이마모울루의 선거 결과를 뒤집는 위원회의 결정에 앞서, 터키 검사들은 CHP 후보의 표를 검표할 수는 없었지만, AKP의 표를 검표할 수는 있었던 바로 그 관리들이 FETO, 페툴라흐주의자 테러리스트 단체와 관련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실패한 2016년 7월 쿠데타 이후로 수십만의 사람들을 숙청하는 데 쓰였던 만능의 구실이었다.
최고 선거 위원회의 의문스러운 결정을 법으로 설명하려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 결정은 근본적으로 정치적 행위였다. 왜냐하면 에르도안과 그의 정당, 그리고 지지자들은 10년 넘게 정치에서 날강도같은 행동을 취해 왔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터키의 민주주의 결핍이 AKP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시각 떄문에 몇년 전부터 '터키가 권위주의로 선회한다' 같은 언급이 끝없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AKP의 악행과는 별개로, 에르도안은 정적들을 축출하거나 억압하기 위해 국가 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한 첫 터키 지도자가 아니다.
페툴라흐 귈렌의 추종자들은 지난 몇 년간의 소탕작전에 분개해왔고, 많은 언론인과 학자, 판사들이 체포되었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숙청이 터무니 없다는 것은 차치하고, 귈렌주의자들은 할 말이 없다. 이들이 AKP와 같은 편일때도 또 다른 언론인과 학자, 판사들이 숙청 당했기 때문이다. 귈렌주의자들이 침묵했기 때문에 공모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귈렌주의자들과 연류된 판사들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조작해서 만들어냈고, 귈렌을 지지하는 판사들은 의심스러운 판결을 내렸다. 200년대에 AKP와 귈렌주의자들이 감옥에 넣은 사람들 중 일부는 '2월 28일 과정'을 지원한 사람들이었는데, 이는 터키의 첫 이슬람주의 정부 실험을 끝낸 1997년의 느린 쿠데타를 가리키는 조지 오웰적인 이름이다.
그 과정은 정부를 사무실에서 밀어내고, 새로운 정부가 법적, 정치적 기구들을 개편해서 총참모단이 국가의 이슬람화라고 두려워하는 것들을 막아내는 것이다. 2월 28일 과정 이전에도, 1982년 헌법은 민주적 과정, 정치적 결과, 교육, 방송, 다양한 개인적 권리들이 제복을 입은 선출되지 않은 자들의 허락 여부에 달려 있도록 했다. 그리고 1971년의 '국민 투표 쿠데타'도 군부가 너무 리버럴하다고 생각한 당시 헌법의 요소들을 터키 총리가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그리고 1950년대 민주당이 다당제 정치의 시대를 열었을지는 몰라도 민주당 또한 민주주의를 희생해 자기 당의 정치적 관심사를 달성하는 방편으로 정부 기관에 영향력을 가했다.
터키 정치권의 움직임과 그 역은 터키가 민주주의 국가였거나, AKP가 2002년 첫 선거를 이기기 전까지 민주화 과정에 있었다는 믿음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물론 터키는 다수의 다른 나라들처럼 일부 민주적 절차에 익숙해졌으며, 헌법 또한 민주적인 정체 비슷한 것을 이루고 있지만 민주적 정상상태를 지키고자 한 정치 지도자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런 노력 없이는 민주적 관습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민주적 관습의 도움을 받아서 냉소주의와 권위주의가 꽃핀다.
터키의 민주주의에 터키 지도자들이 뭔가를 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수백만의 터키 시민들은 다르다. 중요한 순간마다 시민들은 터키의 유사 민주주의 제도에 의미를 부여했고, 1980년대 중반에는 특정 정치인들에 대한 금지를 지키려던 군의 부름에 저항했으며, 2007년에 다시 총참모부가 압둘라 귈의 대통령 즉위를 막으려 하자 장교들의 뜻을 막아세웠다. 많은 터키인들은 2014년 이래로 AKP의 선거 속임수들을 지지해왔다. 왜냐하면 AKP가 경제적 번영을 가져온 한편 야당의 형편없는 상태와 정부의 강요가 조합되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탄불 선거를 무효화하려는 이번 제도적 조작은 너무 멀리 갔을지 모른다. AKP 후보는 이제 승산이 있으며, 에르도안이 다시 패하려고 선거 결과를 뒤집으려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스탄불의 시민들이 그냥 물러서지 않을지는 몰라도, 다시 치르는 선거에서는 시민들이 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어쩌면, 적은 확률이나마 이것이 진정한 터키 민주주의 탄생의 서막이 될 지도 모른다.
Steven A. Cook은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Eni Enrico Mattei senior fellow for Middle East and Africa 이다. 그의 최신 저서는 False Dawn: Protest, Democracy, and Violence in the New Middle East이다.
후일담)6월 23일에 이스탄불 시장 재선거가 있었고, 그 선거에서도 에크렘 이마모울루가 54.20% 득표로 승리했다. 상대 후보와 에르도안 모두 결과에 승복하였다. 이마모울루는 6월 27일에 시장으로 취임했으며,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원래 CHP 우두머리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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