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토스. 그들은 스타크래프트 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종족입니다. 적어도, 순수하게 도덕적인 이유로 자기 종족 이외의 종족에도 간섭하는 유일한 종족이죠. 설령 자신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던간에. 이런 태도는 때론 프로토스와 접촉한 다른 종족에게도 큰 인상을 주곤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레이너죠(타이커스 왈: "넌 마치 그들-프로토스-을 존경하는 것처럼 말하는 군.")
개인은 도덕적이라도 집단은 이기적일 수 있단 상식은 적어도 프로토스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작은 생명도 존귀하다'든지, '진리의 추구'같은 미덕을 개인 레벨이 아니라 종족 레벨에서 행한다는 점에서 프로토스는 실로 순결한 종족입니다. 프로토스에겐 수많은 장점이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이 '순결함'이야말로 프로토스의 진실된 강함이며 프로토스를 다른 종족과 차별성을 주는 부분입니다.
프로토스가 순결함이란 미덕을 거저 얻은건 아닙니다. 프로토스의 본성이 얼마나 포악하고 잔인한지는 젤나가가 몸소 보여주었고, 광전사들이 현제 진행형으로 직접 가르쳐주고 있으니까요. 이런 프로토스를 지금의 모습으로 교화한 것은 순전히 종교의 힘입니다. 이전, 광기와 투쟁심으로 미친 괴물들을 우주에서 가장 지적이고 순결한 종족으로 만들었으니 종교의 힘이란 참으로 놀랍죠.
아이러니하게도 프로토스에게 '순결'이란 지고의 장점을 준 종교는 프로토스 최악의 단점인 '광신' 또한 같이 주었습니다. 이 '광신'이란 프로토스가 쉽사리 이겨내기 어려운데, 고약하게도 '순결'과 '광신'은 어떻게 보면 표리일체의 관계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프로토스가 프로토스로서 존재하는 한 '광신'은 영원히 프로토스를 괴롭힐 최대의 약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맥박'은 이러한 프로토스의 최고의 장점과 최악의 단점이 정면으로 부딫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단편입니다. 이 단편의 등장인물은 단 둘 뿐입니다. 프로토스의 긍정적 부분을 대표하는 공돌이 이아루. 그에 대립하는 기사 텐자알. 이 둘의 대결이 '코라문드(위대한 경이)'에서 벌어진단 점은 참 흥미롭습니다.
코라문드(위대한 경이)는 단순한 기물이 아닙니다. 프로토스에겐 이 막강한 동시에 노쇠한 우주모함은 현제 프로토스가 처한 상황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거든요. 결국, 이아루가 일개 우주모함을 넘어선 '위대한 경이'를 부활시키느냐, 텐자알이 일개 우주모함인 '코라문드'를 침몰시키느냐의 대결은 '프로토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순결이냐 광신이냐'의 대결로 함축해 보여주는 구도가 되거든요.
단편은 코라문드가 위대한 영웅인 테사다가 지휘한 전설적인 간트리서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싸운 용사라고 시작하는데, 이 또한 코라문드가 단순한 우주모함이 아니라 프로토스 그 자체를 대표하는 기물이란걸 알려줍니다.
단편의 내용은 간결하지만 실로 함축적입니다.
프로토스의 역사와 자부심 자체인 코라문드. 이 웅장한 함선은 저그의 침공으로 위기를 맞게 됩니다. 무서운 저그의 공격에서 코라문드를 구하기 위해 엔지니어 이아루는 희망이 보이지 않음에도 코라문드의 함선 시스템을 고치려 분투합니다.
그러나 이아루는 곧 코라문드를 위험에 빠지게 한게 저그가 아니란걸 깨닫습니다. 저그는 코라문드의 위기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며, 진정한 위협은 자신만이 프로토스를 구원할 수 있으리란 뒤틀린 신념을 지닌 텐자알이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최악인 상황에서 이아루는 텐자알의 강공으로 모든게 사라질 찰나, 이아루는 코라문드(위대한 경이) 그 자체의 심장이 되었고, 죽어가던 코라문드는 불사조처럼 부활하는 것으로 단편은 끝납니다.
단편에서 기사 텐자알은 프로토스의 미래를 위한다는 구실로 코라문드를 저그 소굴로 몰아넣고 동포들을 잔인하게 살해합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죠? 우리의 수퍼스타 맹스크가 한 짓과 참 닮았습니다. '광신'에 물든 프로토스는 폭군 맹스크와 다를게 없다는 것을 단편은 우회적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그에 대비해 이아루의 상황은 무척이나 암울합니다. 사이오닉 능력이 강한것도 아니고, 전투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특별한 무기는 커녕 빠루 한자루도 없습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이아루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공돌이 특유의 분석적 사고, 그리고 종교에 대한 간절한(그러나 미약한) 기댐밖엔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저그와 싸우고, 함선을 수리합니다. 코라문드를 몰락하게 한 진정한 원흉과 대면하고, 적의 힘을 이겨내며 코라문드를 부활시키기까지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엔 일개 프로토스 이상의 힘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신앙의 힘입니다.
'운 다라 마나카이'. 이아루가 가장 많이 읊는 기도문입니다. 그 뜻은 '우리 의무는 끝이 없다'. 참 프로토스다운 기도문이네요:D. 그리고 그 기도문대로 이아루는 행합니다. 그것이 이아루를 거짓없는 순수함으로 이끌었습니다. 반면 의무를 저버린 텐자알은 시종일관 추악한 모습을 보이죠. 오직 분노에 이끌려 이아루를 죽이려 들며, 이아루가 진실을 폭로해도 자기 합리화에 여념이 없습니다.
단편은 프로토스의 이상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결말에서 빛을 잃은 수정이 빛을 되찾는 것은 참 극적입니다.
텐자알은 자랑스럽게 함선의 핵심인 수정이 빛을 잃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빛'을 잃은 것은 광신에 빠진 텐자알이었으며, 텐자알의 강공은 '빛'을 파괴하기는 커녕, 텐자알의 힘을 모조리 빼앗아 더 밝은 '빛'을 일으킵니다.
스스로가 수정, '빛'이 된 이아루는 그 다음 행동에서도 순결하게 행동합니다. 아직도 텐자알에게 희망을 주고자 자신의 빛을 비추어주려합니다. (뭐, 그걸 받아준다면 악당이 아니겠지만 말이죠...).
최후의 순간엔 '절대 별빛을 볼 일이 없을 것이다'란 텐자알의 호엄장잠과 정반대로 코라문드는 당당히 찬란한 별무리로 향하게 됩니다.
이것이 뭘 뜻하는지는 명확하죠. 프로토스의 운명은 힘의 강약이나 상황의 유불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곧 프로토스의 가장 위대한 빛인 순결함이 프로토스를 구하게 될 것이며, 그것을 범하려는 힘이나 시도마저 순결의 빛을 더 밝게 타오르게 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요약 1 : 프로토스의 최대 강점인 순결은 그 어떤 광신이나 위험에도 결코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한다
요약 2 : 우주모함이 쓸모없다고? 나의 우주모함은 이렇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