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 로코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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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5-11-12 20:29:19 KST | 조회 | 3,693 |
제목 |
스포]아몬의 심리에 대한 추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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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망상
아몬이 뭔가 분노에 끓어오르는 나쁜놈인건 맞는데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안나오잖아요
그래서 나름 파편처럼 흩어져있는 유닛 대사들과 게임 내부 플레이버 텍스트 설정들 보면서 추측해본거임
신빙성 0% 팬픽
혹시 알라라크 반복클릭 대사를 아시는지? 테라진을 기체마약처럼 흡입하더니 갑자기 그 다음은 자기가 아몬을 좀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아몬에게 동정심을 품는 게 좋겠다는 요상한 대사를 한다. 테라진을 마시면 토스는 명상단계에 빠져서 아몬과 정신이 연결된다고 믿는다고 한다...
밝혀졌다시피 아몬은 우주에서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투쟁하는 넘이다. 젤나가는 우주가 쪼그라들었을땐 콩허..라는 뭔..이상한 차원에서 잠들어있다가 우주가 다시 빅뱅으로 뻥 터지면 나타나서 생명의 씨앗을 뿌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생물이라는 게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몇몇을 제외하면)대부분 젤나가에 의해 존속되는 것이다.
그런데 젤나가는 동시에 자기들의 번식을 위해서도 창조행위를 하는거잖아? 이건 어떻게 보면 젤나가가 우주의 생명 에코시스템의 한 구조인 거라고 볼 수 있다.
에필로그의 묘사를 보면 젤나가는 뭐랄까 세상을 공시적으로 인식하는 생물이다. 한마디로 얘네한테 시간은 순차적인 개념이 아니라 모든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그런 게 다 보인다는 거지. 원인과 결과의 구분이 없다는 거다. 이런 생물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다룬 하드SF소설로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가 있다. 짱재밌으니 꼭 보시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젤나가의 디자인은 사실, 나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시간을 연속적으로 인식하고 모든 사건의 동시다발성을 인지의 필터없이 느끼는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 생물은 매우 모호한 개체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생물한테 '자아' 라는 개념이 형성될수나 있는지 모르겠다. 작게는 자기 운명부터 크게는 우주의 모든 역사가 꽉 짜인 천처럼 자기 앞에 아득히 펼쳐져 있을텐데 그런 생물한테 현실이란게 존재할까? 현실세상의 실존하는 정보는 얘네한테 딱히 의미가 없다. 마치 부유하는 살덩이인듯한, 그리고 생명의 의지가 없는 듯한 젤나가의 나른하고 추레한 몰골은 정말로 합리적인 디자인이 맞다.
근데 그거 아시는지? 스타크래프트에서는 (기술적으로)고등한 문명을 가진 종족일수록 더 숙명론적이다. 이건 아르타니스의 대사에서도 나온다 "프로토스는 인간하고 달리 모든 사건을 거시적인 시점에서 본다." 이 대사의 의미를 젤나가같은 캐우월한 초지성체종족으로까지 확장시켜 보면, 젤나가는 모든 우주의 역사와 사건과 법칙을 꿰뚫는 눈을 가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족은 필연적으로 자유의지를 가질 수 없다.
여기서부터 하드SF에서 자주 나오는 인지의 지평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자유의지는 결함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 4차원 시공간을 점점 더 실시간으로 인지하는 지성체일수록 우주의 인과와 법칙 뭐 그딴 거에 더 깊이 접근할 수 있으며 그것은 그 종족을 전지전능하고 자유롭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속박한다. 심지어 현대 뇌과학에서도 자유의지는 인지적 착각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프로토스는 그 단계를 알아가는 거고, 오로지 짐 레이너같은 열-등한 테란이나 "우리는 우리 운명을 개척할 수 있어 헿헿" 같은 개소리를 지껄일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자날에서 시작된 여정은 갑자기 스토리의 테마를 바꿔 자유의지의 중요성에서 숙명으로 변환된다. 예언 찾아 온갖 삽질을 하던 노망난 제라툴은 테사다르의 영성을 쫓은 게 아니라 우로스인가 걔가 열등한 생물들에게 친히 속삭이신 사념에 이끌려다닌 것 뿐이다. 한마디로 죽음의 신vs미물들의 발악 구조가 알고보니 신vs신의 대결이었다는 거고, 여기서 지금까지 스타2가 그토록 뻔한 블록버스터 대사처럼 읊어왔던 선택의 중요성 그런 건 다 박살나 버린다. 애초에 주인공들은 통제자들의 체스말에 불과했던걸? 에필로그 막판에 황금불사조로 변한 케리건은 "아 지금 젤나가가 되고보니 안건데 내 운명은 원래부터 이거였구만 ㅋㅋ" 라고 함.
어쩌면 아몬의 '구원' 은 피조물들의 구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 혹은 젤나가라는 저주받은 생물들의 구원일 수도 있다. 젤나가는 신적인 존재이지만 그들은 우주의 흥망성쇠 거듭을 따라 계속해서 생물을 번식시키고 걔네 중 좋은 놈 두마리가 찾아오면 그 하이브리드 육신에 자기 정수를 넘겨서 생명을 연장하는 그런 단순한 사이클의 생물에 불과하다. 전지한 시점을 얻는 대가로 그들은 인간성, 개체성 뭐 그런 거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잃고 단순히 신적인 능력을 가진 살코기로 거듭나는 것이다.(어디까지나 자율성의 시점에서 보자면 말이다.) 생물의 씨앗을 뿌린 뒤 그냥 방관하고 있는 것도 어떤 개체 자율성을 존중한다기 보단 그냥 생물의 물리적인 속성에 관심이 없을 확률이 크다. 이 경우에 한 지성체의 자유의지는 되려 미성숙의 표상이다.
케리건이 정수를 넘겨받을때 아몬의 대사 중 잘 기억은 안나는데 "나도 승천을 경험했다. 니 그게 뭔지는 알고 하려는거냐?" 하고 되묻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단순히 혼란시키려는 게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대사였다면 아몬은 전지함을 얻는 대신 자신이 일반 생물이었던 시절 간직했던 야만의 흔적(개체성과 자아, 우주를 불확정적이라 인지하던 시절 가졌던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이 거세당한 사실에 대해 분노하는 캐릭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해법은 동족 다 말살시키고 순환도 끝내고 괴상한 혼종을 만들어 우주를 영원히 지배하에 놓겠다는 다크사이드한 망상으로 발전해버렸고 그런 혼탁한 동족혐오와 사이코스러운 자가당착을 느낀 알라라크는 동정심을 느끼고, 로하나도 혐오감을 느낀 것이다...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아몬과 오로스 두 개체의 싸움은 자기 자신의 고등함을 견뎌낼 수 없어서 미쳐버린 젤나가와 순환에 그냥 순응한 평범한 젤나가의 싸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케리건이 불사조 됐을때 스킬들이나 대사가 양자광선이니 뭐니 하는 거 보면 블리자드는 확실히 젤나가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인지하는 생물이라는 '테이스트' 를 주고 싶었던 건 확실하다.
쨌든 이렇게 보면, 그럼 자유의지는 결국 다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말았던가! 사실 그 답은 살짝 실존주의적인 방관이 될 수도 있겠다. 한낱 미물들의 고통스러운 선택과 노력은 사실 전체 흐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고 사악한 범우주적 음모를 막아낸 것이 실은 인지의 지평선을 넘어선 통제적 의지였다는 결말 자체로 열등한 생물들의 지지부진한 가재걸음을 의미없다고 규정할 순 없다는 것이다. 왜냐믄 진짜 인간 인지의 지평을 넘은 세상에서는 애초에 합목적적인 방향성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을테고 생명의 의미라던지 하는 그런 것들은 다 구식의 개념일 뿐일테니깐
굳이 말하자면 뭐랄까 그래. "인생이란게 다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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